[송국건정치칼럼] 반기문의 ‘半半 행보’, 藥일까 毒일까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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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1-16   |  발행일 2017-01-16 제30면   |  수정 2017-01-16
20170116

半半화법 구사하던 潘
보수와 진보 넘나들며
대선도 양다리 걸치기
국가통합 의미 있지만
양쪽에서 외면할 수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반반(半半) 화법’을 자주 구사한다. 민감한 문제에 부딪혔을 때 이도저도 아닌 말로 궁지에서 벗어나곤 했다. 이 때문에 ‘기름바른 장어’라는 악평까지 듣는다. 대선행보에 나선 반기문의 말 가운데 가장 귀에 솔깃한 용어는 자신을 ‘진보적 보수주의자’라고 지칭한 대목이다. 좋게 새기면 이념을 초월한 통합 이미지를 강조한 걸로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매우 애매한 말이다. 대통령 탄핵정국에서 낭패감에 빠진 보수와 분노하는 진보를 모두 아우르겠다는 정치적 수사(修辭)로도 들리는 까닭이다. 반기문에게 꽃가마를 태워주려고 했던 새누리당 지지층을 고스란히 흡수하면서, 자신을 유엔 사무총장으로 만들어준 진보(노무현 정권)의 지지도 일정부분 기대하는 눈치다.

말뿐이 아니고 행동도 마찬가지다. 국립현충원을 찾은 자리서 이승만·박정희·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의 묘역을 모두 참배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이 있는 김해 봉하마을도 이번 주 방문한다. 이를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없다. 지금까지 선별적으로 전직 대통령 묘역에 참배한 다른 대선후보들이 오히려 옹졸하다. 반기문은 어제(15일) 경기도 평택의 해군 제2함대를 찾았다. 2010년 북한 잠수함의 공격으로 침몰해 장병 46명이 사망한 ‘천안함 피격 사건’ 희생자를 추모하는 공간이다. 앞으로 대구 서문시장, 부산 유엔공원, 진도 팽목항, 광주 5·18 민주묘지 방문도 예정돼 있다. 보수와 진보의 상징적인 땅을 두루 찾는 셈이다. 이 역시 ‘국가통합’과 ‘국민화합’을 기치로 내건 반기문식 국민과의 소통 방식이다. 그러나 이를 다른 각도에서 보면 대권 가도에서도 ‘반반 행보’를 하는 걸로 비칠 수 있다.

이런 행보는 ‘반기문 대권 로드맵’과 연결돼 있다. 캠프 사람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일단 ‘반기문 신당’ 창당은 접은 걸로 보인다. 반기문과 함께하기 위해 새누리당이나 바른정당을 뛰쳐나올 만한 현역 국회의원은 대부분 충청 출신이다. 그들과 당을 만들면 ‘지역당’이 돼 버린다. 반기문 캠프에선 대신 민심 청취→새누리당과 바른정당 안의 ‘친반(親潘)’ 규합→김종인·손학규·이재오·정의화 등과 ‘제3지대’ 결성→새누리당·바른정당과 연대→국민의당과 후보단일화 수순을 그리고 있다고 한다. 또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와 ‘개헌’을 고리로 연대해 민주당 내의 비문(非문재인) 국회의원들을 빼내는 구상도 곁들였다고 한다. 이 시나리오가 완성되면 문재인 전 대표는 완벽하게 고립된다. 그만큼 ‘반기문 정권’ 탄생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단계마다 엄청난 반작용이 일어날 게 뻔하다. 특히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국민의당과 함께하는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사드 배치, 개성공단 폐쇄 같은 안보에 대한 기본 인식부터 너무 다르다. 반기문의 구상대로라면 영호남과 충청까지 뭉쳐 ‘반(反)문재인’ 전선을 구축하겠지만 현실 정치는 그렇게 녹록지 않다. 더구나 지금은 탄핵정국에서 보수와 진보가 진영 경쟁을 벌이고 있다. 올해 대통령선거도 인물보다는 구도 싸움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태에선 보수와 진보에 양다리를 걸치기보다는 한쪽에 올인하는 게 대선 전략 차원에서 유리하다는 분석도 많다. 어정쩡한 자세로는 자칫 보수와 진보 모두에게서 공격 받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박근혜정부의 국정실패로 좌절감에 빠진 보수의 민심이 위기감으로 변하면 새로운 보수의 대안을 찾게 된다. 이 경우 반기문은 보수와 진보에서 모두 버림받을지 모른다. 양 진영에서 혹독한 검증에 나서면 대통령 꿈은 깨진다. 서울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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