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혁의 남자의 취미] 팬클럽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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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1-20   |  발행일 2017-01-20 제40면   |  수정 2017-01-20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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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훈을 처음 만난 날. 직접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 불러주는 자상한 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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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클럽 창단식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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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훈의 집에 초대받은 날.

스물 무렵부터 내 삶의 순간 함께한 그
상금에 혹해 응모한 記事의 주인공도 그
그 뒤‘내가 사랑한 배우, 박중훈’의 연락

첫 만남서 ‘호형호제’ 인간적 매력에 푹
‘함께 늙어가며 서로 격려·응원해주고파’
팬클럽 만들어‘인생의 벗’거듭나는 중

‘건축학개론’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를 통해 수지는 ‘국민 첫사랑’ 자리에 등극했고, ‘납뜩이’ 조정석은 스타의 반열에 오르는 주춧돌을 마련했다. ‘기억의 습작’이라는 노래가 삽입되어 차트를 역주행했고, 제주도의 서연네 집은 관광객으로 들끓었다. 무엇보다 건축학개론 하면 떠오르는 것은 포스터에 적힌 문구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이 한 줄만으로 가슴이 먹먹해지고, 다리에 힘이 풀리며, 콧잔등이 시큰해지는 걸 느낀다면 당신의 감성은 아직 살아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지는 않는다. ‘모태 솔로’라는 것이 엄연히 존재하므로. 당신을 콕 집어 얘기하는 건 아니므로 너무 기죽을 필요는 없다. 혹시 모를 누군가를 위해 한 단어만 바꾸어보자.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팬이었다.’ 이제 당신은 우리의 범주 안에 들어오게 된다. 안심이 되는가?

남자의 취미. 이번 주제는 팬클럽이다. 그 흔한 사랑 한번 못 해본 사람도 어떤 특정인을 마음에 품어본 적은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때 책받침 단골 배우 소피 마르소를 시작으로, 중학교 때 밤잠을 설치게 했던 최진실 누나를 거쳐, 고등학교 때 눈을 뜨게 된 가객 김광석까지. 우리 모두는 분명히 누군가의 팬이었다. 그런 경험이 없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무척이나 무미건조한 것이다.

누군가의 첫사랑이었을 게 확실한 필자도 당연히 누군가의 팬이었다. 걸그룹 좋아하는 삼촌팬 이야기를 꺼내려고 법석을 부리는 건 아니다. 솔직히 소녀시대가 몇 명인지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다. 하물며 그 이후야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것이다. 내가 스무 살 무렵부터 좋아했던 그는 영화배우다.

박중훈. 90년대 한국 영화계의 전설 같은 존재. 스무 살에 영화 ‘깜보’로 데뷔해 30년 넘게 한국 영화계를 지켜오며 주옥같은 명작들을 남긴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 나는 그의 팬이었다. “그까짓 게 뭐가 대수냐? 나도 전지현 팬이다!”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그렇다. 나 또한 평범한 팬이었다. 적어도 몇 개월 전까지는 말이다.

작년 여름이었다. 모 인터넷 신문에서 기사공모를 했다. 보통 때보다 많은 상금이 걸렸고, 그 당시 나는 새로운 기타가 필요했기에 상금에 혹했다. 주제는 내가 사랑한 연예인이었다. 공모 글을 보는 순간부터 머리에 떠오르는 배우가 있었기에 비교적 순조롭게 글을 써내려 갔다. 내가 사랑한 배우, 박중훈. 그를 20년 넘게 추종하던 내 인생 이야기가 담담하게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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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라디오 진행을 맡은 박중훈을 위해 매일 한 통씩 보내는 엽서들.

기사가 나가고 며칠 뒤 박중훈의 매니저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박중훈, 그가 우연히 기사를 읽고 나서 나랑 통화를 하고 싶어 한단다. 그때의 살 떨리던 상황을 모두 지면에 옮길 수 없는 점 양해를 구한다. 과정은 생략하고 여하튼 나는 박중훈과 통화를 했고 그로부터 두 달 후 그를 직접 만나게 된다.

첫 번째 만남에서, 그의 스타로서의 눈부심보다 한 사람으로서의 인간적 매력에 빠지게 된다. 상대를 배려하는 모습. 연예인 같지 않은 소박하고 진실한 모습. 우리는 그 자리에서 형님동생 사이가 된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팬클럽 활동이 시작되었다. 일방적으로 바라만 보던 팬의 입장에서 쌍방 교류가 가능한 팬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지인 몇 명과 함께 ‘박중훈과 친한 친구들’이라는 팬클럽을 결성했다. 그와의 두 번째 만남에서 팬클럽 창단식을 갖고 향후 운영계획에 대한 설명회를 진행했다. 오빠 부대를 만들기엔 그도 우리도 세월의 흔적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남은 인생 함께 늙어가며 서로를 격려해주고 응원해주는 친구 같은 모임이 팬클럽의 목적이다.

2017년 1월. 그가 27년 만에 라디오 DJ로 나섰다. 배우 겸 감독으로서 차기작을 준비 중이던 그에게 주변 지인들의 조언이 용기를 주었다고 했다. 40~50대 가장들에게 퇴근길에 즐거움을 주는 라디오 프로를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구상과 포부였다. 해당 연령층이 주를 이루는 팬클럽 회원들은 당연히 열성적 지지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고민했다. 팬클럽에 본방 사수는 기본이고 예의다.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무언가가 필요했다. 20~30년 전 새벽까지 라디오를 끌어안고 살던 그 시절을 회상하며 엽서를 쓰기로 했다. SNS와 문자메시지로 사연을 바로바로 올리는 세상도 좋지만, 우체통에 엽서를 넣고 언제쯤 방송에 나올지 귀를 쫑긋 세우고 라디오를 듣던 기다림의 미학을 떠올려보자는 거다.

팬클럽 회장으로서 모범을 보일 필요가 있었다. 매일 한 통의 엽서를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요즘 나의 가장 큰 취미는 엽서 꾸미기다. 짧게는 30분이고 길게는 두 시간이 걸린 것도 있다. 소녀 팬의 심정을 담아 예쁘게 엽서를 꾸미는 일이 어쩐지 적성에 맞는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적다 보면 청춘을 되찾은 기분이 든다.

매일 엽서를 보내기 위해서는 하루 종일 엽서 디자인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누군가를 위해 이렇게 공들인 적이 언제였던가. 아내는 옆에서 자기한테는 편지 한 줄 안 쓰면서 엽서에 빠져 산다고 불만이지만 어쩔 수 없다. 모든 일은 마음이 움직여야 되는 거니까.(부디 아내가 이 글을 안 읽기를…)

팬과 연예인으로 만났지만 인생의 선배로서 그는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다. 한때 세상을 다 가져보았을 그가 바라보는 인생은 겸손하고, 진지하고, 둥글다. 한 분야에서 고수가 된 인물을 멘토로 삼아 살아가는 삶. 열정보다는 중용의 미덕을 깨닫고 모나지 않게 살아가는 삶. 중년의 나이에 누군가의 팬으로 산다는 것은, 이런 맛이 아닐까.

끝으로, 그가 했던 말 중에 기억에 남는 말이 있어 옮겨 본다. “연기자가 연기하는 시간보다 일반인들이 연기하며 사는 시간이 더 길지 않을까?” 배우는 카메라 앞에서만 연기를 하면 되지만, 우리는 늘 주어진 역할을 위해 연기를 하며 사는 건 아닐까 하는 그의 화두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 스스로에게 얼마나 진실한 삶을 살고 있을까. 그의 팬이었다가 인생의 벗이 된 지금, 나는 배우 박중훈에게 많은 걸 배우고 있다. 칼럼니스트 junghyuk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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