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산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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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1-23 08:14  |  수정 2017-01-23 08:14  |  발행일 2017-01-23 제26면
[문화산책] 산책길
신문광 <화가>

콜레스테롤 수치를 줄이라는 의사의 처방으로 집 근처 공원을 하루 30분 이상 걷기로 작심한 지가 1년이 넘었다. 예전에는 할 일 없는 사람들만 산책하는 줄로 생각하였는데 그게 아니었다. 겨우 30분 남짓 걷는 일이 그렇게 지루하고 힘든 건지 미처 몰랐다. 게다가 서너 달이 지나도 검사 수치는 그대로여서 실망이었다.

그런데 의사는 수치가 오르지 않은 것만도 신체가 좋아진 것이라고 하니 하는 수 없이 억지로 걷기를 계속하기로 하였다. 봄부터 여름까지 계절의 모습이 점차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습관이 되어 갈 즈음에는 집 근처의 공원 산책길이 조금씩 지루해져서 조금 더 멀리 나가 보기로 하였다. 30분 코스와 1시간 코스의 걷는 길을 따로 정해 놓고 마음속으로 시간을 재며 천천히 걷기와 빠르게 걷기를 반복하며 걸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머리가 맑아지고 잡생각이 다 사라져 시간도 잠시 잊고 마음이 아주 편안해졌다. 아, 이런 게 무념무상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고 산책길이 매일 좋은 건 아니었지만 잠시나마 느낀 맑은 에너지는 나에게 분명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빨리 포기했더라면 몰랐을 성취감은 생각보다 훨씬 기분 좋은 것이었다.

공원에 새의 종류가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조금만 걸어 나가면 금호강이 있고 덤불숲에 고라니가 걸어 다니는 게 보였다. 햇살과 바람에 따라 매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강변의 키 큰 나무도 봄, 여름 내내 까치집을 품고 있다가 겨울이 되니 그제야 모습이 보였다. 오늘 아침에도 나뭇가지 끝에 앉아 큰 소리를 내며 쉼 없이 혼자 수다를 떠는 까치 한 마리를 만났다.

이렇게 눈에 박힌 풍경들은 저절로 그림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짧은 듯 길게 이어지는 산책길의 모습은 녹색과 노란색이 섞인 밝은 에메랄드 색깔로 그려졌다. 새파란 풀잎도, 보라색의 작은 야생화도 모두 그림 속에 다시 피어나 색깔을 마구 섞으며 조용하게 마음을 흔들었다.

비가 내리는 날도 그 다음 날도 산책하기는 멈추지 않고 숙제처럼 해내었다. 이제는 콜레스테롤 수치도 생각 속에서 털어내고 온통 나만의 길이 된 산책을 나가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어떤 때는 햇살 속에 한참을 서서 무념무상의 세계에서 마음이 아주 편안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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