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영의 즐거운 글쓰기] 멀고도 험한 길을 갈 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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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06 07:42  |  수정 2017-02-06 07:44  |  발행일 2017-02-06 제18면
20170206
<시인·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의사나 정치인이 되는 것은 하나의 ‘진로결정’이지만, 작가가 되는 것은 다르다. 그것은 선택하는 것이기보다 선택되는 것이다. 글쓰는 것 말고는 어떤 일도 자기한테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평생 동안 멀고도 험한 길을 걸어갈 각오를 해야 한다. …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에 나는 손대는 일마다 실패하는 참담한 시기를 겪었다. 결혼은 이혼으로 끝났고 글쓰는 일은 수렁에 빠졌으며, 특히 돈 문제에 짓눌려 허덕였다. … 영혼까지 더럽히는 이 궁핍 때문에 나는 끝없는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다. … 이제 와서 그때를 돌이켜 보면, 그 많은 책을 어떻게 다 읽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벌컥벌컥 술잔을 비우듯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어냈고, 책의 나라와 대륙을 모조리 섭렵했으며, 아무리 읽어도 늘 책에 허기져 있었다. … 나는 상당히 많은 글을 썼다. 노력에 비해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그래서 걸핏하면 좌절감에 빠졌고, 인생의 낙오자라는 생각이 늘상 따라다녔다. 그래도 완전히 낙담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폴 오스터 ‘빵 굽는 타자기’ 중에서)

‘… 조그만 재난이 하마터면 나를 익사시킬 뻔했다. 내가 하루 식사로 냄비에 넣어 삶으려던 달걀 두 개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와 바닥에 떨어져 깨진 것이었다. … 달걀은 떨어지자마자 그대로 박살이 났다. 나는 그것들이 마루바닥 위로 번지는 동안 겁에 질려 서 있던 내 모습을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샛노랗고 반투명한 달걀의 내용물이 마루 틈으로 스며들면서 순식간에 질퍽한 점액과 깨진 껍질이 사방으로 번졌다. 노른자 한 개는 기적적으로 떨어져 내린 충격을 견뎌냈지만 내가 몸을 굽혀 그것을 떠 올리려고 하자 스푼에서 미끄러져 깨지고 말았다. 나는 마치 별이 폭발할 것 같은, 거대한 태양이 막 사라져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노른자가 흰자위로 번지더니 다음에는 거대한 성운·성간(星間) 가스의 잔해로 바뀌면서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내게는 그 노른자가 너무 엄청난 것,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마지막 지푸라기였기에 그 일이 일어나자 나는 그만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고 말았다.’ (폴 오스터 ‘달의 궁전’ 중에서)

폴 오스터는 어느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글 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능력자’라 했답니다. 가슴이 찡했습니다. 누군가의 노래처럼 콧날도 시큰했지요. 오스터처럼 글쓰기에 매달려 ‘영혼까지 더럽히는 궁핍’에 함몰된 이들에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현재 오스터리안(Austerian)이라고 칭하는 그의 독자들이 세계 곳곳에 포진해 있다는 것입니다. 폴 오스터 글의 힘을 믿는 저도 그중의 한 명이랍니다. <시인·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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