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들의 사랑이야기 .13] 역루의 봄밤이 추운 줄도 몰랐네- 강혼과 은대선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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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09   |  발행일 2017-02-09 제22면   |  수정 2017-02-09
밤비에 새잎나거든
이불도 없이 역관서 하룻밤…
나그네와 기생은 ‘十二巫山(십이무산·남녀간의 정사)’을 쌓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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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혼은 점필재 김종직의 제자로, 시문에 뛰어나 김일손에 버금갈 정도로 당대에 이름을 떨쳤다. 강혼 부부 묘(진주시 진성면 동산리).

‘부상 역관에서 하룻밤 즐기는데/ 나그네는 이불도 없고 촛불은 다 타가네/ 십이무산(十二巫山) 새벽꿈에 어른거리고/ 역루의 봄밤이 추운 줄도 몰랐네.’

목계(木溪) 강혼(1464~1519)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점필재 김종직(1431~1492)의 제자이다. 시문(詩文)에 뛰어났다. 이 시는 강혼의 시로, 자신이 사랑한 기생 은대선(銀臺仙)을 노래한 작품 중 한 대목이다. 강혼은 성산(星山: 성주 옛이름)에 머물 때 그곳 기생 은대선을 사랑하게 되었다. 어숙권(魚叔權)의 ‘패관잡기(稗官雜記)’에 실려 전하는 내용을 토대로 강혼과 은대선의 사랑 이야기를 살펴본다.

◆이불도 없이 나눈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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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혼 부부 묘 앞의 강혼 신도비.

강혼은 일찍이 성산 기생 은대선을 사랑했다. 돌아올 때 부상역(扶桑驛)에 이르러 숙박을 해야 했다. 김천시 남면 부상리에 있었던 부상역은 성주에서 김천 가는 길 금오산 자락에 있었다. 교통 요충지에 위치한 부상역은 관리들이 부임지를 오가거나 순시하면서 들러 많은 일화와 시를 남긴 곳이다.


강혼, 詩文 뛰어난 조선의 문신
성주 머물때 관기 은대선과 사랑
이별詩 지어주고 편지까지 전해
은대선은 병풍으로 만들어 간직

강혼, 진주 관기와도 깊은 사랑
그녀 소매에 詩 써 수청 막기도



그런데 앞선 일행이 이미 침구를 가지고 지나가 버렸다. 그래서 강혼은 기생과 함께 이불도 없이 역사에서 하룻밤을 자게 되었다. 그때 강혼은 기생에게 시 ‘정성주기(呈星州妓)’를 지어 주었다.

‘부상 역관에서 하룻밤 즐기는데(扶桑館裏一場驩)/ 나그네는 이불도 없고 촛불은 다 타가네(宿客無衾燭燼殘)/ 십이무산 새벽꿈에 어른거리고(十二巫山迷曉夢)/ 역루의 봄밤이 추운 줄도 몰랐네(驛樓春夜不知寒)// 천상의 선녀 자태에 옥설 같은 살결(姑射仙姿玉雪肌)/ 이른 새벽 금거울 앞에 앉아 눈썹을 그리네(曉窓金鏡畵蛾眉)/ 아침 술에 반쯤 취한 발그레한 얼굴에(卯酒半紅入面)/ 봄바람 솔솔 불어 검은 머리 흩날리네(東風吹綠參差)// 헝클어진 머리 빗고 다락에 기대어(雲梳罷倚高樓)/ 피리 부는 손가락 옥 같이 부드럽네(鐵笛橫吹玉指柔)/ 만리타향 외롭게 뜬 달 바라보니(萬里關山一輪月)/ 두어 줄기 눈물이 이주에 떨어지네(數行淸淚落伊州).’

여기서 ‘십이무산(十二巫山)’은 남녀 간의 정사를 의미하며, ‘이주(伊州)’는 고사가 있는 말이다. 당나라 범중윤이 이천(伊川)의 영(令)으로 있으면서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자 그 아내가 가사를 지어 보냈는데, 그것을 ‘이주령(伊州令)’이라 불렀다. 나중에 이주(伊州)란 말은 멀리 떠난 남정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뜻하는 의미로 사용되게 되었다.

강혼은 그후 상주에 이르러 사랑하는 은대선과 헤어졌다. 강혼은 문경 새재(鳥嶺)를 넘어 잠시 쉬다가, 한양 도성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呂)씨 성을 가진 성산(성주) 서생을 만났다. 강혼이 서생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은대선 생각이 다시 간절해지자 필묵을 들었다.

‘나와 낭자는 본래 모르는 사이지만 신의 도움으로 천리 밖에서 사귀었으니, 어쩌면 오래된 인연이 있다고 하겠구나. 상산(商山: 상주의 옛 이름)에서 이별한 뒤에 땅거미 질 무렵에 깊은 골짜기에 다다르니, 빈 집은 고요하고 쓸쓸하며 낙숫물 소리는 처량도 했다. 등잔불을 돋우고 홀로 앉아 있으니 외로운 그림자가 이리저리 흔들리는데, 이때의 심정이야말로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었도다. 이튿날 아침에 재를 넘는데 시냇물은 졸졸 흐르고 산새들은 지저귀니 애간장이 녹아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구나. 낭자의 피리 소리 듣고 싶건만 들을 수가 있겠는가.’

이런 내용의 편지를 써서 서생 편으로 은대선에게 전했다. 은대선은 강혼의 시와 이 편지를 가지고 병풍을 만들었다. 강혼은 글씨를 잘 썼으므로 취중에 쓴 글씨가 자획이 조화를 이루면서 마치 기세가 용과 뱀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성주를 지나가는 선비들 중 그 병풍을 구경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 한다.

강혼이 세상을 떠난 후 퇴계 이황의 제자인 송계(松溪) 권응인이 훗날 은대선을 한번 만났다. 그때 은대선은 이미 여든이 넘었다. 은대선이 말하기를 “‘검은 머리 흩날리다’가 이제는 ‘흰머리 흩날리네’로 변했습니다”고 하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강혼이 자기에게 써준 시를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린 것이다.

◆진주 기생과의 사랑이야기도 남겨

호방한 기질에다 시문에 능했던 강혼은 진주 관기와의 사랑이야기도 남기고 있다.

강혼은 젊은 시절 한때 아리따운 관기와 깊은 사랑을 불태운 일이 있다. 강혼이 기생과의 사랑에 빠져 있을 때 공교롭게도 진주 목사가 부임해 왔다. 새로 온 목사가 기생들을 일일이 점고하는데, 강혼의 연인인 기생이 목사의 눈에 들어 수청을 들게 되었다. 강혼은 사랑하는 기생을 속절없이 빼앗기게 되었다. 관기였기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강혼은 북받쳐 오르는 분함과 연정을 주체할 수 없어 수청을 들러 가는 기생의 소맷자락을 부여잡고 한 수의 시를 소매에 써주었다. 강혼의 행동에 놀란 기생은 저고리를 갈아입을 생각마저 잊어버리고 엉겁결에 신관 목사의 방으로 들어갔다.

쫓기듯 들어서는 기생의 소맷자락에 쓰인 시를 발견한 목사는 그 연유를 물었다. 시를 써 준 사람이 누구냐고 다그쳐 묻는 말에 기생은 밝히지 않을 수 없었고, 목사는 급기야 강혼을 잡아들이라 명령했다.

강혼이 붙들려 왔다. 수청 기생은 말할 것도 없고 아전들은 큰 변이 일어났다며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그런데 목사는 뜻밖의 언행을 보였다. 주안상을 준비하게 한 뒤 백면서생 강혼을 따뜻하게 맞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목사는 기생의 소맷자락에 쓰인 시를 보고 그의 글재주와 호기에 마음이 끌려 한 잔 술을 나누고 싶었고, 또 어쩔 수 없이 수청을 들 뻔한 기생도 되돌려 주려는 생각에서 불렀던 것이다.

이와 관련한 기록이 그의 문집에도 있다. 강혼의 후손이 쓴 가장(家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그 후 목사가 진주에 부임을 해서 좋아하는 기생에게 수청을 들라 하니 장난삼아 시 한편을 기생의 옷에 써주었다. 목사가 보고 크게 놀라 실용적인 학문을 권하였다(其後方伯入本州以所眄妓薦枕卽戱題一絶於妓 方伯見之大異遂勖以實學).’

강혼이 이때 기생의 소매에 써준 시 역시 ‘증주기(贈州妓)’라는 제목으로 문집에 실려 있다.

‘목사는 삼군을 통솔하는 장군 같은데(高牙大纛三軍帥)/ 나는 한낱 글 읽는 선비에 불과하네(黃卷靑燈一布衣)/ 마음속에는 좋고 싫음이 분명할 텐데(方寸分明涇渭在)/ 몸단장은 진정 누구를 위해 할까(不知丹粉爲誰施).’

강혼은 사랑하는 기생이 마음속으로는 자기를 좋아하지만 목사의 권세에 못이겨 억지로 수청 들러 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이 시를 기생의 소매에 써 준 것이다.

이 시에는 ‘진양지에 이르기를, 판서 강혼이 젊은 시절 관기를 좋아했는데 방백이 부임하여 수청을 들게 하니 공이 시 한 수를 지어 기생의 소매에 써주었다. 방백이 보고 누가 지었는지 물었다. 기생이 공이 지었다고 대답하자, 불러 보고 크게 칭찬하고 과거공부를 권하였으며, 마침내 문장으로 이름이 드러났다’라는 주(註)를 달아놓았다.

글·사진=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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