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누가 이름을 함부로 짓는가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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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10   |  발행일 2017-02-10 제23면   |  수정 2017-02-10
[조정래 칼럼] 누가 이름을 함부로 짓는가

새누리당이 ‘자유한국당’으로 간판을 바꿔 단다. 당명 개정은 인적 청산에 이은 당 쇄신책의 하나라고 한다. 정치권의 이합집산에 따른 ‘개명’과 옷 갈아입기는 이제 더 이상 새삼스럽지 않다. 공화당,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등 우리의 보수 정당사는 정당명 변천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정권과 부침을 함께 해왔다. 개명과 신당의 창당이 이처럼 잦았던 것은 그 덕에 대선이나 총선에서 ‘재미를 좀 봤기’ 때문일 터. 이러한 재미는 새 당명을 앞세운 신당들에도 이어질까. 그들의 변신이 진정성을 인정받을지, 혁신 코스프레로 읽혀 식상함을 줄지, 다음 선거 결과가 궁금하다.

이름으로 본 우리의 정당사는 한마디로 누더기다. 정치적 위기 때마다, 이합집산 과정에서 여소야대를 타개하거나 전직 대통령과 결별하기 위해 수시로 이름은 헌신짝처럼 폐기됐다 살아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길지 않은 민주공화정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수많은 정당명 보유 국가로 기록되고 있는 중이다. 지금까지 명멸했던 정당 이름들, 정치와 일선을 마주하는 기자들도 웬만한 머리로는 다 헤아리기 힘들고, 그들 사이의 차별성을 짚어내기도 어렵다. ‘그 나물에 그 밥’이었고, 우리는 기꺼이 또는 울며 겨자 먹기로 그들에게 표를 던져왔다.

‘누가 이름을 함부로 짓는가’라는 저서는 작명에 대한 관심을 크게 높인 계기가 됐다. 우람 이이정이 1992년 출간한 이 베스트셀러는 소리 에너지의 발산과 그 어울림을 기본으로 하는 ‘파동성명학’을 본격 소개하며 개명 바람을 일으켜 왔다. 이름이 행·불행과 유관하다는, 대중적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최순실 일가의 집단 개명도 이러한 우주의 좋은 기운을 받기 위해서라는 호사가들의 분석이 비릿한 침을 튀긴다. 글쎄, 길흉화복이 이름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면 누군들 이름 바꾸지 않을 사람 있겠나. 하지만 작명 전문가들의 조언에 의하지 않더라도 개악(改惡)이기 십상이고, 스스로 쌓아 온 정체성 부정과 혼란만 부르지 싶다.

정부조직도 정권과 생사를 같이하기는 마찬가지다. 인수위가 끝나자마자 새 간판을 거는 부처와 간판을 내리는 부처로 희비가 엇갈린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부처가 생겨나고 전 정권의 흔적 지우기가 되풀이되는 바람에 공무원 사회는 추풍낙엽으로 흔들리고야 만다. 정권적 철학과 시대적 과제를 담아내자면 정부조직 개편은 일정 부분 불가피하다. 하지만 그것이 정파적이고 정략적이라면 단명은 숙명일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 초·재선 의원들의 모임인 ‘더좋은미래’의 싱크탱크 ‘더미래연구소’는 교육부를 없애는 대신 국가교육위원회를 신설하는 등을 골자로 한 정부조직 개편안을 선보였다. 정권교체를 하기도 전에 김칫국을 마시긴가, 아니면 또다시 정부조직을 누더기로 만들 셈인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개명이고, 어떤 대의명분과 실리가 있는 개편인가. 정부조직 제발 그냥 둬라. 시부모 못 찾아오게 아파트 이름 영어로 길게 어렵게 지었다는 우스개처럼, 정부 부처 이름 자주 그리고 어렵게 바꿔 서민들 바보 만들 요량이 아니라면. 공화당-민주당, 내무부-문화부 등 옛 정당명과 지난 부처의 이름이 얼마나 간결하고 알기 쉽나. 대간(大幹)은 그대로 두고 줄기만 조정하면 충분하다. 부처 이름 개정이 무슨 놈의 정권의 전리품이 아닐진대, 왜 그리 함부로 이름을 바꾸는가. 기자인 나도 이게 어느 정권 부처명인지 아리송하다. 쓸데없이 국민을 불편하게 하지 말라.

‘새 술은 새 부대에’란 기치는 쇄신의 일성으로 유효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초심이 작심삼일로 끝나고, 태산명동 서일필이고, 용두사미로 흐르면 외화내빈으로 끝난다. 공자가 정치의 첫걸음으로 ‘정명(正名)’을 역설했다. 정명, 즉 이름을 바르게 한다는 것은 ‘다움’, 즉 명실상부를 지칭한 개념일 터이다. 우리 정당 개명사와 정부조직 개편안은 한마디로 뒷걸음질과 개악의 역사다. 무엇보다 너무 어렵고 복잡해 지하에 계신 세종대왕께서 화내실까 두렵다. 입만 열면 국민을 위한다는 정권과 공무원이라면 다시는 국민을 헷갈리게 하는 개명·개편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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