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부산 중구 40계단과 인쇄골목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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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10   |  발행일 2017-02-10 제36면   |  수정 2017-02-10
좁은 골목 묵은 건물 벽마다 자리잡은 옛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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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중구 동광동 인쇄골목. 침체된 거리에 활기를 주기 위해 2012년 벽화골목을 조성했다.

부산역에서 중앙대로를 따라 서쪽으로 걷는다. 번잡스러운 역세권을 벗어나자 길은 너무 넓고 건물은 너무 높고 인적은 드물어 꼭 버려진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러다 중부경찰서 앞에서 오붓한 길 하나가 대로에서 갈라진다. 위압적이지 않은 오래된 건물들, 플라타너스와 은행나무 가로수들, 그리고 간간이 스치는 사람들의 길이다. 설탕을 아껴 묻힌 꽈배기 도넛 향이랄까, 은근히 데운 정종 맛이랄까 하는 녹진한 풍정이 있다. 그렇게 500m가량 이어지는 이 길을 부산 사람들은 ‘중앙동 뒷길’이라 부르고 언젠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었다는 것은 다녀온 후에야 알았다.

100여년 前 바다였던 40계단 아래 땅
40계단 문화거리 곳곳 근대 모습 재연
철길 건널목·나무전봇대·조형물 눈길

계단 오르면 전국 최대 인쇄골목 동광동
복병산 고개 天·인쇄골목 紙·그 사이 人
미로처럼 이어진 천지인 거리‘벽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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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계단 문화관광테마 거리. 1950~60년대를 테마로 조성되어 있다.

◆중앙동 40계단

연륜 있는 가게들과 근래에 생겨난 예쁜 카페, 여관, 목공소, 목욕탕, 빵집 등 각종 상점이 낡고 묵은 건물들 속에 뒤섞여 있다. 400m쯤 걸었을까, 어디선가 본 듯한 계단을 만난다. 저절로 ‘비지스’의 ‘홀리데이’가 대뇌에서 흘러나온다. 이명세 감독의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 등장했던 바로 그 계단이다. 계단의 중앙에는 아코디언을 켜는 거리의 악사 조형물이 앉아 있고, 아래에는 ‘40계단기념비’가 서있다. 계단의 양쪽에는 이발소와 카페 따위의 작은 가게가 세트처럼 자리한다.

‘40계단’은 6·25전쟁 당시 10만명이 넘는 피란민들에게 가장 친근한 장소였다고 한다. 주변으로 판잣집들이 들어섰고, 사람들은 헤어진 가족들을 찾기 위해, 구호물자를 사고팔기 위해, 일자리를 찾기 위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1951년에는 박재홍이 부른 대중가요 ‘경상도 아가씨’가 크게 유행했다. 노래는 이렇게 시작된다. ‘사십계단 층층대에/ 앉아우는 나그네/ 울지말고 속시원히/ 말 좀 하세요.’ ‘40계단’이라는 이름은 이 노래에서 비롯된 건지도 모르겠다. 나그네가 앉아 울던 때, 이 계단에서는 바다와 영도다리가 보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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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계단과 계단 중앙 ‘거리의 악사’ 조형물.

한 세기 전만 해도 이 계단 아래 땅은 바다였다. 나지막한 복병산 자락이 바다에 닿았고 그 해안에 몇 채의 건물이 옹기종기 들어서 있었다. 20세기 초 산 일부를 깎고 바다를 메워 만든 땅이 중앙동이다.

40계단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산 쪽의 동광동과 새로운 중앙동을 연결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20~30년대의 중앙동은 부산 최고의 번화가였다. 거리에는 르네상스식 건물들이 빼곡했고 전차와 자동차와 사람들이 뒤섞여 다녔으며 부산역과 부산항이 눈앞이었다. 부산역은 50년대의 대화재로 인해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고, 70년대 이후 급격한 경제성장은 중앙동 일대의 풍경들을 바꾸어 놓았다.

지금 40계단 주변은 문화거리로 조성되어 있다. 나무 전봇대가 서있고, 옛 부산역을 기억하는 철길이 놓여 있다. 물동이 진 아이, 갓난아기를 업은 엄마 등 우리 근대의 모습이 곳곳에 재연되어 있다. 또한 상업방송의 전파가 최초로 발송되었던 자리를 알려주는 표지석, 부산항을 상징하여 만들었다는 소라계단, 피란시절 사용했던 작은 등불을 상징하는 조형물 등도 있다.

사실 현재의 ‘40계단’은 원래의 ‘40계단’이 아니다. 가까운 곳에 있는 원래의 계단은 건물들에 잠식되어 찾기 어렵다. 그러나 허탈하지 않다. 오늘의 ‘40계단’은 한국 근대사 100년의 객석이자 무대이고 유효한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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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거리 뒤편으로 복병산 올라가는 길. 천지인 벽화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동광동 인쇄 골목

‘40계단’을 오르면 동광동이다. 제법 너른 길이 복병산 아래 복대처럼 척 걸쳐져 있다. 너르다고는 하지만 3~4층 규모의 건물들이 마주섰을 때 햇빛이 들지 않는 너비의 아스팔트길이다. 건물들은 9할이 인쇄 관련 업소다. 가게 앞마다 서있는 오토바이들이 거래물량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이곳은 한때 전국 최대 규모의 인쇄 골목이었다. 60년대 초반에 몇몇 인쇄소가 이곳에 자리를 잡았고, 70년대 초부터 관련 업체들이 밀집했다. 그리고 90년대 이후 침체되기 시작했다.

지금도 300여m의 너른 길과 그로부터 자라난 골목들마다 크고 작은 인쇄소와 지역 출판사들, 기획, 제단, 지업사 등이 자리하고 있다. 문인들이 단골로 드나들었다는 술집과 찻집이 드문드문 숨어 있고,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군데군데 포진해 있으며, 기분 좋게 수상한 가겟집도 이따금 발견된다. 한적한 골목은 규칙적인 기계음에 준동한다. 거기에는 향긋한 잉크와 종이 냄새가 난다.

인쇄골목 곳곳에는 다양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뒤편의 복병산 올라가는 골목길에도 벽화가 한 가득이다. 미로처럼 이어지는 골목은 6·25전쟁 때의 판자촌을 떠올리게 하고 번듯한 일본식 가옥은 일제 강점기, 이 일대에서 주인 노릇하던 이들을 생각하게 한다. 이곳 벽화 골목 전체를 ‘천지인 거리’라 한다. 천(天)거리는 복병산 마루에 있는 부산기상청으로 이어지는 고갯길이다. 지(紙)거리는 인쇄골목을 뜻한다. 그 사이에 인(人)거리가 있다. 조성한 지 몇 년이 흘러 그림은 흐려지고, 길의 구분도 명확하지 않지만 문득 마주치는 재치 있는 그림들은 웃음을 준다.

동광동에는 너무 많은 골목이 있다. 너무 좁은 골목이 있다. 마지막 남은 뼈 같은 길이다. 그래도 아름다운 한줌 햇살이 고여 있다. 걷다 보면 같은 곳을 빙빙 돌고 있음을 깨닫기도 한다. 그러다 길은 문득 끊어진다. 안도감과 곤혹감으로 조용히 놀라며 돌아 나온다. 골목에서는 누구도 만나지 못했다. 어디선가 컹컹 개가 짖을 때마다 고함을 지르는 남자의 의성어만이 쩌렁쩌렁 울린다. 한낮의 빈 골목길이 두려워져 큰 길에 선다. 늙은 나무의 나이테를 가로지르는 개미처럼 큰길을 걷는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부산 중구 중앙동 일대는 부산역과 가까워 기차를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부산역에서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로 지하철 1호선 중앙역에 내려 9번이나 11번 출구로 나오면 40계단 문화관광테마 거리 표지판이 보인다. 부산역에서 걸어가도 무리 없다. 40계단을 오르면 양쪽으로 길게 인쇄골목이 자리하고, 맞은편 돌고래 그림이 있는 계단을 오르면 복병산 가는 골목이 시작된다. 40계단 위 오른쪽 길 100m 거리에 40계단 문화관이 있다. 40계단과 6·25전쟁을 주제로 하는 부산 중구의 역사가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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