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전영잡감) 2.0] 영화 ‘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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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10   |  발행일 2017-02-10 제43면   |  수정 2017-02-24
‘베테랑’ 제작사, 첫 여성영화로 화두를 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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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여교사’ 포스터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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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작사 ‘외유내강’은 2005년에 설립되었다. 이후 ‘짝패’(2006),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2008), ‘부당거래’(2010), ‘베를린’(2012), ‘베테랑’(2015), 그리고 올여름 개봉을 앞두고 있는 ‘군함도’(2017)까지 주로 류승완 감독의 작품을 제작해왔다. 그사이 권혁재 감독의 ‘해결사’(2010)를 제작하기도 했지만, 권 감독 역시 류승완 감독의 영화 조감독 출신이다. 까닭은 ‘외유내강’의 강혜정 대표가 류승완 감독의 아내이기 때문이다. 제작사의 이름도 바깥사람은 유씨 ‘류승완’, 안사람은 강씨(강혜정)를 의미한다. 열거한 작품의 면면을 살펴보면 주로 남성 캐릭터가 전면에 등장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선이 굵은 영화가 대부분이었다. 2017년 첫 문을 연 ‘여교사’는 그런 외유내강이 제작한 ‘첫 여성영화’여서 흥미로웠다.

또 한 가지 눈길을 끈 건 주연을 맡은 배우 김하늘이었다. 사실 김하늘은 “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야”라는 대사를 국민유행어로 만든 드라마 ‘로망스’(2002)에서 선생으로 분한 이후 김경형 감독의 ‘동갑내기 과외하기’(2003)에서 과외교사까지 맡으며 발랄한 여선생 역에 최적화된 연기로 관객들에게 깊이 각인된 배우였다. 그랬던 김하늘이 삶에 지쳐 어둡고 쓸쓸해진 내면부터 조금씩 생기를 되찾다 마지막 파국으로 치닫는 여교사를 연기한다고 하니 궁금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먼저 극장에서 영화로 본 지인은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서 배우 김혜자의 ‘잊을 수 없는’ 표정 연기와 맞먹는 연기를 김하늘이 보이더라고도 했다.


주로 남성 캐릭터 중심 선 굵은 영화 제작
2005년 설립 ‘외유내강’ 흥미로운 행보
김하늘 주연 ‘여교사’로 새해 첫문 활짝

국내 최연소 ‘칸’ 입성 김태용 감독 연출
강렬한 스토리·심리묘사에 현실반영까지
김하늘 절정의 열연 등 여러모로 문제작


마지막으로 ‘여교사’를 늦게나마 보기로 했던 이유는 이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 김태용(‘가족의 탄생’을 연출하고 배우 탕웨이와 결혼한 김태용 감독과는 동명이인이다)이었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세종대학교 영화예술학과를 졸업하고 단편영화 ‘얼어붙은 땅’(2010)으로 일찌감치 제63회 칸 국제 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 초청되면서 국내 최연소 칸 영화제 진출로 화제를 모았던 바 있다. 이듬해 제10회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단편영화 ‘복무태만’(2011)으로 ‘비정성시’ 작품상을 받았다. 이때 심사위원장으로 있던 류승완 감독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이후 외유내강 제작으로 배우 고경표와 함께 ‘인생은 새옹지마’(2013)라는 단편영화를 연출하기도 하고, ‘신촌좀비만화’(2014)라는 옴니버스영화에서 류승완이 연출한 ‘유령’의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나뿐 아니라 관객들에게 김 감독을 주목하게 만든 건 ‘거인’(2014)이었다. 세상에 대한 분노를 동력 삼아 20대를 살아왔으나 서른이 되기 전 영화를 통해 유년시절을 위로하고 스스로를 극복해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이 장편영화 데뷔작으로 김 감독은 제35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감독상, 제36회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하며 단숨에 주목받는 감독이 되었다.

클로즈업 위주로 인물의 정서를 묘사하되 냉정하고 객관적인 거리감을 잃지 않는 원숙한 ‘거인’의 연출은 당시 ‘자전거 탄 소년’을 만든 다르덴 형제를 떠올리게 하며, 많은 이들에게 28세에 불과했던 젊은 영화감독의 차기작은 과연 어떤 이야기일까 내내 궁금하게 했다. 차기작 ‘여교사’는 계약직 여교사 효주가 자기 차례인 정교사 자리를 치고 들어온 이사장 딸 혜영과 자신이 눈여겨보던 무용특기생 재하의 관계를 알게 되고, 처음으로 이길 수 있는 패를 쥐었다는 생각에 다 가진 혜영에게서 단 하나를 뺏으려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단순히 여교사와 여교사, 여교사와 남학생이라는 일차원적 관계에 주목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효주라는 인물 안에 깊이 숨겨져 있는 내면의 심리와 타인으로 인해 인간이 어디까지 흔들릴 수 있는가에 대해 입체적으로 주목한다. 먼저 질투와 모멸감, 열등감을 넘어선 효주의 예민한 감정은 세밀한 심리 묘사를 통해 긴장과 불안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일련의 심리적 상처, 그 파편들이 두 여교사와 제자 사이에서 위태롭게 요동치며 파격적인 전개로 펼쳐진다.

치정극으로 포장이 되었지만 그 속에는 흙수저·금수저 혹은 정규직·비정규직 문제같이 지금 여기에서 가장 뜨거운 사회문제가 담겨 있다. 거듭된 역전과 반격 이후 결국 마음 깊숙한 곳을 파고들고 마는 결말에 이르기까지 흡인력 있는 연출력과 강렬한 열연을 통해 전달되는 ‘여교사’의 날선 긴장감과 내밀한 파문은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이다. 영화는 그야말로 강렬한 스토리, 절정의 열연, 압도하는 긴장감, 여기에 인간의 심리에 대한 감독의 예리한 통찰과 현실의 반영을 통해 문제작 그 이상의 완성도를 선보인다. 여러모로 문제작이다.

무엇보다 배우 김하늘의 히스테릭한 연기는 놀라웠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간 그이가 배우로 데뷔한 지 18년이 된 베테랑인 걸 너무 간과했었다. 그러면서 이미 10년도 더 전에 김태경 감독의 호러물 ‘령’으로 공포연기에 도전한 바 있는 용기있는 배우임을 잊었다. 반성한다. 반면 배우 유인영은 극 중 캐릭터 탓도 있겠지만 다소 스테레오 타입화된 연기가 아쉬웠다. ‘베테랑’에 이어 외유내강과는 두 번째 작업이다. 이후를 기약한다. 배우 이원근의 발견도 기뻤다. 어딘가 모르게 어린 허지웅을 연상시키는 그이는 이미 작년 초 ‘씨네21’에서 ‘라이징 스타’로 선정된 바 있다. 차기작을 기다린다. 끝으로 이렇게 ‘작은 영화’에 관심 가져준 외유내강에 고맙다. ‘군함도’도 한껏 기대 중이지만 블록버스터 말고 중간 규모의 영화에도 계속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

“관객에게 논쟁할 만한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관객이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다른 이야기들을 꺼낼 수 있도록 화두를 던지는 영화다.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는 계급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한다”는 김 감독의 인터뷰처럼 이런 ‘문제작’을 이대로 흘려보낼 수는 없다. 지금 바로 확인하시라. 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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