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만 40여년…대가의 눈으로 압축한 中미술의 세계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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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11   |  발행일 2017-02-11 제16면   |  수정 2017-02-11
중국미술사
대만고궁박물원 연구원 출신
40여년 경험·자료 녹여 쓴 글
수천년 통달, 590점 쉽게 설명
역작 한글판 30년 만에 나와
연구만 40여년…대가의 눈으로 압축한 中미술의 세계
제백석(1864~1957) 작 ‘삼여도(三餘圖)’. 삼여도는 팔대산인의 물고기 그림을 본받아 그린 것인데, 화제는 ‘그림은 목공 솜씨의 여분이고, 시는 잠의 여분이며, 수명은 영겁의 여분이다. 이것이 제백석의 세 가지 여분이다’라는 의미다. <다빈치 제공>

수천 년 이어져온 중국 미술의 장구한 역사를 590여점의 작품 사진과 함께 담아낸 책이다.

“나는 최선을 다해 과학과 예술을 하나로 녹이는 것을 목표로 할 뜻이 있다. 바로 예술사가인 내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이다. 나에게는 유리함이 있다. 고궁박물원에서 일을 하므로 언제나 그림을 볼 수 있고, 이 보물창고에서 많은 보물을 발굴해 중국 문화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엮고 논리적으로 새로 배열해 세계에 선양할 수 있다. 중국 회화사를 외국 사람이 쓰게 하는 것은 중국인의 치욕이다. 게다가 그들은 이 일을 제대로 해내기 어렵다. 이 일의 관건은 문자로 된 기록인데, 중국 미술사는 처녀지나 다름없어 발굴해야 할 자료와 노력해야 할 것이 무척이나 많다. 그렇기에 이 길에서 나는 아주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나에게 30년의 시간을 준다면 기쁜 마음으로 이 길을 달려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갈 것이다.”

연구만 40여년…대가의 눈으로 압축한 中미술의 세계
이림찬 지음/ 장인용 옮김/ 다빈치/ 632쪽/ 15만원

1957년 12월25일,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의 이림찬(李霖燦) 연구원은 44세가 된 생일날 일기에 이렇게 자신에 대한 약속을 적었다. 그는 1984년 국립고궁박물원의 부원장직을 마지막으로 40여 년간의 박물관 근무를 마쳤고, 이후 3년의 시간을 들여 평생의 연구 자료와 강의 경험, 박물관 근무 경력을 한데 녹여 책 한 권으로 정리했다. 1987년 세상에 선보인 ‘중국미술사’로 그는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30년 만에 지킨 것이다.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2017년에 이 역작의 한국어판이 나오게 되었다.

책을 번역한 장인용은 국립대만대학에서 공부하던 시절에 이림찬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로, 수십 년 전 그의 열정적인 수업의 기억을 되살리며 번역을 해나갔다. 원고 분량이 많은 것에 더해 방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독자들의 이해를 도와줄 주석을 꼼꼼히 달며 정성을 기울이느라 2011년에 시작된 번역은 3년의 시간이 흐른 2014년에야 비로소 끝이 났다. 그리고 원고가 편집자와 디자이너의 손을 거치며 다듬어지고 책의 형태로 만들어지기까지 또다시 3년에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다.

저자는 회화를 전공한 미술학도로서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에서 평생을 바쳐 일했다. 거의 매일같이 중국 최고의 보물들을 직접 보고 느끼고 연구한 저자의 미술사 강의는 미술 전공자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늘 커다란 호응을 얻었다. 그의 강의를 고스란히 담아놓은 이 책은 시대순으로 분류하고 형식적으로 나열해 정리한, 건조하고 딱딱한 미술사 책이 아니다. 건축을 제외한 회화, 조각, 도기, 옥기, 서예 등 중국 미술의 핵심을 추려 다루는 데 있어 70대 중반에 이른 저자는 능수능란하게 하해와 같은 중국 미술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연구만 40여년…대가의 눈으로 압축한 中미술의 세계
동기창(1555~1636) 작 ‘방범관계산행려도’. 작품 제목은 ‘범관의 계산행려도를 흉내 내다’라는 의미다.

옛 문헌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시·서·화를 넘나드는 그의 설명은 결코 지루하지 않다. 중국 미술 전체를 관통해 볼 수 있는 눈과 경험을 갖추었기에 수천 년 중국 미술의 역사를 이 한 권에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단순한 압축 요약본을 넘어서는 탄탄함과 깊이를 갖추고 있다. 그러면서 설명이 쉽고 친절하기에 일반인들이 교양서로 보기에도 큰 어려움이 없다. 이는 역자의 노고가 반영된 덕분이기도 한데, 우리나라 독자들을 중국 미술에 가깝게 다가가게 하고자 작품 제목, 인명, 지명의 표기에서부터 수많은 역주까지 세심히 살피며 보충했다.

신석기시대 인면상(人面像)에서부터 20세기 중후반의 회화 작품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중국 미술의 역사를 한자리에 모아놓았다. 이 책에 소개된 590여 점에 이르는 작품 하나하나가 오래되어 낡고 퇴색해버린 것이 아닌,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은 울림을 발하는 것이기에 보물 같은 작품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큰 즐거움을 느낄 만하다. 수록된 작품의 대부분은 세계 4대 박물관의 하나로 손꼽히는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의 주요 컬렉션이고, 그 외에 베이징 고궁박물원과 영국·미국·일본의 주요 미술관을 대표하는 작품도 포함돼 있다.

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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