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조성진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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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11   |  발행일 2017-02-11 제23면   |  수정 2017-02-11
[토요단상] 조성진앓이
노병수 대구 동구문화재단 대표

흔히 신동(神童) 소리를 듣는 어린 연주자들에겐 마치 귀신에 씐 것 같은 묘한 분위기가 있다. 무당이 몰아(沒我) 상태에 빠져 굿을 하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느낌까지 받는다. 피아니스트 조성진도 예전에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 2013년 곽승이 지휘하는 대구시향과 협연을 하러 대구콘서트홀을 찾은 10대 소년 조성진은 앳된 얼굴이었지만, 연주는 이미 ‘비르투오소’의 경지였다. 신 들린 듯 현란한 카덴차, 그리고 루바토의 타이밍에 이르기까지 ‘어쩜 저럴 수가’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 조성진이 이태 전에 쇼팽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을 했다. 한국사람 최초였다. 덕분에 3만유로의 우승상금과 함께 ‘도이체 그라모폰’에서 음반도 냈다. 거장 카라얀이 첫 녹음을 했던 튤립 라벨의 바로 그 회사다. 충분히 예상된 우승이었지만, 소식은 세계 음악계를 풍미(風靡)했다. 쇼팽콩쿠르가 어떤 대회인가. 세계 3대 콩쿠르 가운데 단연 으뜸이다. 1927년에 창설되어 5년마다 개최한다. 특히 피아노에 관한 한, 다른 콩쿠르를 전부 우승해도 쇼팽콩쿠르 하나만 못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거저먹은 우승은 아니었다. 파리 출신 심사위원 앙트르몽이 끝까지 조성진을 물고 늘어졌다. 그는 1차에서는 조성진에게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주고 다음 라운드 진출에 ‘YES’를 부여했다. 그런데 갑자기 태도가 달라졌다. 2차와 3차에서 모두 ‘NO’를 부여했다. 문제는 결선. 그는 조성진에게 불과 1점만을 주었다. 그럼에도 조성진은 나머지 심사위원들의 압도적인 점수를 받아 넉넉하게 우승을 했다. 앙트르몽이 재직한 파리국립고등음악원은 조성진이 다니는 학교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지금도 수수께끼다.

우승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조성진은 “이제 콩쿠르는 안 나가도 되니, 진짜 신난다”며 활짝 웃었다. 그리고 금의환향(錦衣還鄕)했다.

작년 2월, 그는 예술의 전당에서 우승자 갈라콘서트를 개최했다. 하루 두 차례 각 2천500석의 티켓은 오픈 즉시 매진이 됐다. 금년 들어 롯데콘서트홀에서 이틀 동안 펼친 첫 리사이틀 역시 3천석의 티켓이 매진되는데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예전의 조성진이 아니었다.

당시 누리꾼 팬들의 댓글이 정말 재미있다. “‘쓰엉진쵸’가 건반에 손을 올리는 순간 3천 명이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이윽고 곡이 시작되자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이런 댓글은 약과다. “‘초초초초초집중’을 해서 듣다가, 슈베르트 4악장에서 넋을 완전히 놓아버렸다.” 이런 댓글도 있다. “상상도 못한 빠르기, 대망의 주먹 타건(打鍵), 나도 몰래 패딩을 벗어 던지고 미친 듯이 기립박수를 쳤다.” 하나만 더 보자. “연주 도중 갑자기 눈앞에 유럽 성당의 예쁜 스테인드글라스 이미지가 쫙 펼쳐지더라. ‘쓰엉진쵸’는 도깨비야.” 그 무렵 ‘쓰엉진쵸’가 무슨 말인지 몰라 헤맸던 기억이 새롭다. ‘쓰엉진쵸’는 유럽인들이 조성진의 영문이름을 부르는 소리다. 그것을 팬들이 애칭(愛稱)으로 쓴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오는 5월, 조성진이 대구에 온다. 올해 두 번만 귀국을 하겠다는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를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당연히 매진을 예상했지만 수성아트피아가 티켓을 오픈하자 반응은 그 이상이었다. 불과 50초 만에 전석이 매진되었다. 좌석을 고르고 어쩌고 할 겨를도 없었다. “양손으로 닥치는 대로 눌러, 겨우 2층에 한 장을 구했다” 그런 식이다. 그나마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당일 판매 예정인 시야제한석(席) 65매에 목을 매고 있다. ‘조성진앓이’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니다. 노병수 대구 동구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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