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관계 다이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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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13 07:37  |  수정 2017-02-13 07:37  |  발행일 2017-02-13 제15면
[행복한 교육] 관계 다이어트
장성보 <대구 성서중 교감>

인사이동으로 짐을 뺀 선생님들의 책상 위가 휑하다. 빈 책상은 본래의 모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낯설기까지 하다. 혹시 나중에 쓰일지, 어쩌면 다음에 쓸 수도 있겠지 하면서 버리지 않고 남겨놓아 봤지만, 이미 마음과 눈이 떠나버려 결국 존재조차 희미해진 물건들로 주변은 가득 차 있다. 이렇게 미련 한 귀퉁이를 잡고 쌓아둔 것에 비해 버릴 때는 일말의 재고도 없이 매몰차게 버린다. 물건과의 관계에 ‘필요함’과 ‘필요 없음’, ‘가짐’과 ‘버려짐’의 극단적인 선택만 남겨진다.

친정에는 오래된 숟가락이 하나 있다. 형제들이 밥 먹는 것을 처음 배운 숟가락이다. 요즘처럼 세련되고 예쁜 게 아니고, 스테인리스 재질에 어른들 숟가락에 비해 작은 거 말고는 손잡이도 긴, 그냥 그렇고 그런 숟가락이다. 워낙 형제 많은 집에서 많은 아이들이 사용하다 보니 가장자리 부근이 닳아 둥글둥글 뭉툭해진 보통 숟가락이다. 근데 이것만 가지고도 하루를 꼬박 말해도 모자랄 정도로 얽힌 이야기가 많다. 숟가락만이랴! 예전에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물건이 집집마다 몇 개씩은 있었다. 없이 살던 시절이어서 물건 귀한 줄도 알았고, 그러다 보니 물건과의 관계도 추억이 담겨 있다. 가득 차 있기보다 비워진 공간이 더 많다 보니 사람도 보이고 물건도 보였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모든 게 귀했지만 이젠 거꾸로 모든 게 넘쳐나는 과잉의 시대다. 요즘은 어디를 봐도 물건에 가려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컴퓨터에 가려져 동료의 얼굴이 보이지 않고, 휴대폰 보느라 고개 숙인 사람들의 정수리만 보인다. 이렇게 몇 년을 함께, 심지어 화장실에 갈 때도 가지고 간 휴대폰이지만 더 좋은 기종이 나오면 가차 없이 버려진다. 몰입한 시간과 관계없이 더 이상 필요 없기 때문이리라.

물건뿐만이 아니다. 사람과도 넘쳐나게 관계를 맺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주로 온라인에서 맺어진다는 것이다. 인터넷진흥원의 2015년 인터넷 이용실태에 따르면, 만 6세 이상 SNS 이용자의 77.2%가 친교나 교제를 위해서, 48.9%가 개인적 관심사를 공유하기 위해서 SNS를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렇게 인터넷상의 SNS로 맺어진 관계가 수백 명이 넘고 있다. 모두 ‘내 친구’로 맺어져 있다. 모두 ‘내 친구’인가?

수백 명의 ‘내 친구’들에게 적당한 선에서 적당한 관심만 드러내면 되는 형식적인 관계 맺음이 습관처럼 될까 걱정스럽다. 쌓여 있는 물건들이 필요 없어지면 버려지듯이 인간관계도 물건처럼 될까 두렵다. 모두에게 친절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모든 사람에게 같은 질량으로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에 의문이 든다. 가까운 사람에게 정성을 다하는, 양에서 질로 관계 다이어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물질적인 것이 어느 정도 충족되면 경험과 체험을 중시하는 소비 흐름으로 변화한다고 한다. 내가 알게 모르게 저장한 연락처를 정리하면서 단순한 버림을 넘어 소중한 사람들로 다시 채우고 싶다. 장성보 <대구 성서중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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