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광장’으로 재진입한 ‘정치’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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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13   |  발행일 2017-02-13 제30면   |  수정 2017-02-13
20170213

촛불과 태극기 민심 충돌
현장 들어간 여야 정치인
탄핵결정 불복종 부추기나
광장은 시민에게 돌려주고
헌재결정 승복 선언할 때


정월대보름인 그제 주말, 서울과 대구를 비롯한 전국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찬성(촛불)과 반대(태극기)를 외치는 집회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 토요일마다 되풀이되는 장면이지만 그제는 열기가 더욱 뜨거웠다. 헌재가 ‘이정미 재판관 퇴임일(3월13일) 이전 탄핵 여부 결정’으로 가닥을 잡은 만큼 마지막 한 달 동안 양 진영이 총력 대응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헌정 중단 사태를 맞아 광장에서 민심이 충돌하는 일은 민주사회에서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제는 부자연스러운 일이 발생했다. 정치인들이 대거 광장으로 몰려나갔다. 새누리당에선 친박계 일부 국회의원들이 서울시청 앞과 청계광장에서 태극기를 흔들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아예 소속 의원 총동원령을 내렸다.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 이재명 성남시장이 앞장섰다. 민주당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는 광주 금남로에서 촛불을 켰다.

정치인들이 민심의 한복판에 들어가서 자기 편과 호흡을 맞추는 행위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야당 정치인들이 사태 초기에 광장으로 나갔을 때 그들을 나무라는 여론은 거의 없었다. 그들도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을 의결한 뒤 헌재의 본격적인 심리가 시작되면서 잠시 여의도 정치권을 지키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 헌재 결정이 임박하자 다시 광장으로 몰려 나갔다. 여당의 친박계 의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정치인들이 ‘헌재 결정 불복종 운동’을 부추기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데 있다. 문 전 대표는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려도) 나는 정치인으로서 승복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헌재가 민심과 동떨어진 결정을 하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뒷말이 무섭다. 초기에 “탄핵이 기각되면 혁명밖에 없다”고 했던 말이 진심이었던 걸까. 이재명 시장은 “탄핵이 기각되면 촛불이 아니라 횃불을 들고 헌재와 싸워야 한다”고 했다. 새누리당에서도 ‘신속 결정’을 강조했던 박한철 전 헌재소장을 겨냥해 “어미를 잡아먹고 태어난 살모사”(이노근 전 의원)라며 헌재를 부정하는 소리가 나왔다.

정치인들은 여의도발(發) 괴담을 만들어 광장에 퍼뜨리기도 한다. “일부 재판관들이 ‘기각’으로 입장이 돌아섰다” “이정미 재판관 퇴임 이후로 선고가 미뤄질 것이다” “3월에 온 나라가 촛불과 태극기로 갈려 대란이 일어난다”는 등의 루머가 광장에서 퍼지고 있다. 이런 발언과 괴담들은 헌재가 언제,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한 갈등이 일어날 것임을 예고한다. 헌재 결정 불복종운동은 탄핵이 인용되면 60일 안에 치러질 대선운동 기간 동안 온 나라를 뒤덮을 거다. 나아가 대선이 끝나더라도 또 ‘대선 불복종 운동’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끝없는 혼란의 연속이다. 정치인들이 그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하는 게 아님에도 대선에만 눈이 팔려 광장으로 다시 들어갔다. 어느 쪽이든 정권을 잡더라도 결국 그런 혼란의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되지만 당장의 정치적 이익에 함몰돼 있다.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 가운데 광장에 나가지 않은 사람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유일하다시피 하다. 안 전 대표는 “광장은 시민의 것이다. 정치인은 시민들께서 권한을 위임해준 만큼 제도권 안에서 노력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중도성향 유권자들에게 다가서려는 정치적 노림수가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 적절한 ‘사이다 발언’이라고 평가한다. 탄핵 이후, 대선 이후를 조금이라도 걱정하는 정치인이라면 지금이라도 광장에서 철수해야 한다.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의 ‘헌재 결정 승복 선언’에 여야가 동참해야 한다.
송국건기자 so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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