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유미의 가족 INSIDE] 40대 부부의 공감 싸움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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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16 07:58  |  수정 2017-02-16 08:59  |  발행일 2017-02-16 제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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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공감이 부족한 어느 40대 부부, 아내 김미정씨(가명)와 남편 박진수씨(가명)의 이야기다. 상담을 하면서 어린 시절 자신을 버린 어머니로부터의 상처도 드러나고, 자신의 받아들이기 힘든 감정들을 없애기 위한 투사적 동일시 등의 원시적 방어기제도 드러난다.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아내
남편이 집 떠날 때마다 불평·폭언
남편은 부모의 간섭 떠올라 아내 외면
서로의 생각 공감 못하고 갈등만 키워


아내: 진수씨는 요사이 부쩍 출장이 잦아요.

남편: 사업상 자주 갈 수밖에 없는 데다, 이번에는 친구 아버지 장례식에 가야 한다고요.

아내: 어쨌든! 당신은 못 가! 애들도 아직 어린데 나 혼자 어떻게 다 해?

남편: 당신은 늘 이런 식이야. 어떨 때 보면 꼭 편집증 환자 같아.

상담가: 내가 보기에는 남편과의 분리에 대한 불안 때문인 거 같은데 어떠세요?

아내: 엄마는 늘 나를 혼자 남겨 두고 떠났어요. 특히 의붓아버지가 학대할 때면 이웃이나 친척들에게 나를 맡겨놓고는 한참 만에 돌아오곤 했어요.

상담가: 바로 그거예요. 그 일 때문에 남편이 집을 떠나 멀리 가는 것을 용납하기 힘든 겁니다. 진수씨가 집을 떠날 때면 당신은 어릴 적 엄마가 홀로 남겨두어 버려진 아이 신세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혼자 있을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 남편에게 말하는 대신, 엄마에게 했듯이 남편에게도 비난하고 통제하려 드는 겁니다.

아내: 그런데 제가 그럴 때면 남편은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아요.

남편: 제게 필요한 것은 아내이지 환자가 아니예요. 하루 종일 앉아서 아내의 응석을 받아줄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요?

아내: 여보, 응석을 받아달라는 말이 아니잖아. 당신은 정말 인색한 사람이야. 아이가 어려 당신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라고. 내 형편과 처지를 알아주었으면 하는 거라고.

상담가: 미정씨, 당신 말에 공감해요. 이제야 진짜 무엇을 원하는지 말하는군요!

남편: 전 아내에게 줄 만한 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아요.

아내: 선생님, 이제 제 말을 이해하시겠죠? 남편의 관심과 도움이 없으면 부부로 살 필요가 없는 거 아닌가요?

상담가: 미정씨, 지난 몇 번의 상담 동안 이 자리에서 당신이 남편에게 퍼붓는 불평과 폭언을 들었어요. 나도 당신 남편이 어딘가로 떠나기 전에 당신과 충분히 상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당신은 남편의 처지나 생각에 공감해준 적이 있나요? 공감을 받고 싶다면서 당신 자신은 남편에게 조금도 공감해주지 않았어요.

남편: 맞아, 당신은 내게 공감해줄 수는 없어? 난 더 이상 당신에게 회사나 나와 관련된 이야기를 할 수가 없어. 왜 그런지 알아? 당신이 나를 깔아뭉개고 또 비난만 쏟아내거든. 그럴 때면 불쾌해 미치겠어.

아내는 남편이 자신과 상의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은 나쁜 짓이고 그런 일을 하면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남편은 아내가 공감을 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내는 자신을 오랫동안 기다리게 했던 어머니와 학대했던 의붓아버지의 역할을 남편이 하도록 무의식적으로 조종하고 있었다. 반면에 남편은 놀기에 한창인 소년을 숨을 쉴 수 없게 했던 부모와 같은 역할을 아내가 하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어느 가정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사례다. 연인이나 부부 관계에서 나타나는 원시적 방어기제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들 부부에게 특히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은 누구의 욕구가 큰지 작은지가 아니다. 부부 모두 어릴 적 자신들이 거부하고 싶었던 부모의 모습을 상대방이 재연하도록 조종 및 유도하고 있음을 알게 해 주어야 한다. <대구사이버대학교 교수 songyoume@dc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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