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예술가의 향기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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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16   |  발행일 2017-02-16 제31면   |  수정 2017-02-16
[영남타워] 예술가의 향기
김수영 주말섹션부장

꽤 오랫동안 맡았던 전시 분야를 얼마 전 떠나게 됐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일을 하게 되거나 새로운 장소를 가게 되면 무심히 봐오고 여겨왔던 예전의 일, 장소 등이 어느새 이런저런 치장을 한 아름다운 추억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몇 년을 몸담았던 문화부를 떠나 주말섹션부라는 새로운 자리로 온 뒤 나의 현재 느낌도 이러하다.

자랑 같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각종 미술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아 온 것이 수십 장에 이른다. 어머니가 “딸애 미술상장으로 방을 도배해도 되겠다”며 주위 분들에게 자랑하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그래서 당연히 화가가 되리라 생각했고 실제 화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 꿈은 꿈으로 끝났다. 고3이 되자 부모님은 미술대학에 가는 것을 완강히 반대하셨고 교사를 하라고 권유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었지만 그 당시 꿈으로 가득했던 나에게 교사라는 직업은 꿈꾸던 분야가 아니었다. 그래서 택한 것이 신문방송학과였고 운 좋게 졸업하자마자 전공을 살려 기자가 되었다. 남들이 보면 제대로 된 코스를 밟아 직장생활을 잘하고 있는 사람 같을 것이다. 게다가 기자생활을 하면서 꿈꾸어왔던 화가를 만나는 전시담당기자를 했으니 뒤늦게나마 내 꿈의 절반을 이룬 셈이 됐다. 그래서 일하는 동안 늘 행복했고 화가, 나아가 예술가를 만나는 시간이 무척이나 좋았다.

문화부를 떠났으니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문화부에 있을 때는 늘 그 일에 빠져 바삐 사느라 행복하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행복에 빠져있을 때는 그 행복을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 몸담고 있는 주말섹션부가 싫은 것은 아니다. 아직 새로운 환경에 적응은 덜 되었지만 이 역시 새롭고 또 다른 행복을 주리라 기대한다.

추억 속에 자리한 미술 분야에서의 일들을 생각하다 보니 가장 먼저 작가들의 작업실이 떠오른다. 그림, 조각 등 작품이 먼저 생각나야 하는데 작업실이 내 뇌리를 꽉 차지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어 작업실에 있는 연탄난로, 활활 타오르는 붉은빛의 연탄과 연탄난로 위 은박지에 똘똘 말려있는 군고구마가 생각난다.

최근 들어 도심에서 연탄난로는 찾아보기 힘들다. 연료비가 부담스러운 식당에서 간혹 보긴 했는데 그 연탄난로를 아직도 작가들의 작업실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어렸을 적 보았던 희고 푸른 빛이 도는 이글거리는 빨간 연탄을 미술을 담당하면서 참으로 오랜만에 만날 수 있었다. 꿈이었던 화가의 작업실에서 어렸을 적 향수를 자극하는 연탄불을 만난 느낌은 마치 고향을 찾은 것처럼 따스하고 푸근했다.

이런 훈훈한 곳에서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다 보면 은박지에 싸여 난로 위에 얹힌 고구마는 어느새 감미로운 향기를 내며 노랗게 익어버린다. 작가가 직접 내려준 커피에 군고구마를 먹는 맛, 여기에 간혹 작가의 부모가 만들어준 김장 김치를 더해 먹는 맛은 맛보지 않은 이들은 모른다. 음식은 단지 혀끝의 맛이 아니라 같이 먹는 사람, 장소와 잘 섞여야 제대로 맛이 난다는 말을 이 순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나에게 예술가의 향기는 연탄의 독특한 냄새와 군고구마 향기로 기억된다. 냄새와 향기의 차이는 맡는 이가 느끼는 바에 달렸다. 남들이 그리 좋아하지 않는 냄새가 달콤한 향기가 될 수도 있고 향기가 때로는 역겨운 냄새로 둔갑할 수도 있다. 작가의 작업실은 연탄난로, 고구마, 물감 냄새 등 모든 냄새를 향기로 바꿔놓는 힘이 있다. 그것이 바로 예술가와 예술의 힘이다. 문화부에 있으며 오랫동안 그 힘을 받으며 많이 성숙했고 많이 행복했다.

주말섹션부에서도 이런 좋은 추억이 또 다른 동력이 될 것이다. ‘위클리 포 유’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독자들을 위한 좋은 주간지가 나올 수 있게 하는 데 그동안 문화부에서 일했던 기억, 일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이 좋은 영양제가 될 것이라 믿는다. 더불어 그동안 좋은 기운을 팍팍 불어넣어주고 기자생활을 풍요롭게 해주었던 지역예술인에게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예술의 향기, 사람의 향기가 나는 ‘위클리 포 유’가 될 수 있도록 따뜻한 관심을 바란다.
김수영 주말섹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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