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열의 우리문화 겹쳐보기] 대통령 관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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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17   |  발행일 2017-02-17 제22면   |  수정 2017-02-17
20170217
시인·경북대 명예교수

미국 대통령의 집무 공간
화장실 하나도 모두 공개
지근 거리엔 참모들의 방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외진 대통령 관저도 한몫


작년 12월에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 중 ‘세월호 7시간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자리에서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이 한 증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허탈감에 빠졌다. 그는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10시에 최초로 대통령에게 서면보고를 했다고 했다. 이때 우리가 놀란 것은 그가 그 보고를 할 당시 대통령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고, 더 놀란 것은 대통령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기에 보고서를 2부 만들어서 대통령 관저와 집무실 두 군데에 그의 보좌관을 보냈다는 것이다. 그때 이 보좌관은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경우도 있고, 그냥 뛰어가는 경우도 있고, 차로 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국가안보실장이 있는 비서동에서 본관 집무실이나 관저까지의 거리는 약 500m로 도보로는 5~10분 정도 걸린다고 하였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관저가 있었던가? 대통령 관저가 그런 외진 곳에 있었던가?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은 그 관저가 어떻게 생겼으며, 어떤 크기이며, 대통령 집무에 어느 정도로 효율적인 구조로 되어 있으며, 어떤 사람들이 거기서 보좌하고 있으며, 그곳의 대통령 집무실은 어떤 모습인지 모르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언론에 사진 한 장 나온 것이 없다. 정확히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국가적인 비밀로 분류되는 것 같고 꼭 알려고 들면 크게 의심 받을 것 같다.

국민은 국가 위기 상황을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위하여 5~10분 걸어가거나, 뛰어가거나, 자전거 타고 가거나, 차로 가서 보고한다는 이야기를 처음 듣고 모두 혀를 찼다. 조선시대 봉수대에서 봉화를 올려 위급한 상황을 알리던 방법과 별로 다르지 않다. 그때부터 국민의 의식 속에 관저는 멀고 먼 장소였고, 접근 불가능한 장소였고, 짙은 안개로 싸여 있는 미지의 장소였다. 그곳이 투명하지 않으니 굿을 했다는 소문도 퍼지고 밀애가 벌어졌다는 소문까지 퍼졌다. 대통령이 최순실과 570회 차명 폰으로 통화를 해도 의심받지 않는 치외법권의 장소였다.

미국 대통령이 사는 백악관은 우리 청와대의 본관, 비서동, 춘추관, 관저, 영빈관에 해당하는 공간이 다 연결되어 있다. 인터넷을 들춰보니 미국 대통령 관저는 백악관 2층에 있으며, 방이 16개, 화장실이 6개, 긴 복도가 있고, 링컨이 집무실로 썼다는 링컨 룸도 있다고 방마다 사진과 그 공간의 도면까지 상세하게 올려놓았다.

미국 대통령이 집무하는 공간은 더 상세하게 나와 있다. 그리고 그 공간은 연속극의 배경이 되니 미국 국민은 자기 안방처럼 다 잘 알고 있다. 그의 집무실은 백악관 건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진에는 잘 나타나지 않으나 백악관 건물에서 서쪽으로 회랑이 나 있는데 그 회랑 끝에 있는 서관(West Wing)이라는 건물에 있다. 이 서관은 2층 건물로 대통령 집무실, 즉 오벌 오피스(Oval Office)와 비서관과 보좌관들의 사무실과 회의실뿐이다. 대통령 집무실은 문이 네 개가 있는데, 동쪽 문으로 나가면 아름다운 정원 로즈 가든이 나오고, 서쪽 문으로 나가면 서재와 식당으로 연결되고, 북동쪽 문으로 나가면 비서실이 되고, 북서쪽 문으로 나가면 서관의 주 복도와 통한다. 크기는 23평(75.9㎡)쯤 된다. 서관의 1층에는 부통령실, 비서실장실을 비롯한 국무회의실, 회랑 뒤에는 기자회견실 및 언론담당관실 등이 있고 2층에는 인사 담당, 연설문 담당 등 비서관들의 방이 총총히 박혀 있다.

청와대에서는 대통령이 비서실의 누구라도 부르면 역시 한참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아니면 차로 가야 한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대통령을 일주일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했다고 하는 건 이해가 된다. 오늘날 발칵 뒤집힌 최순실 국정농단은 대통령 집무실이 미국처럼 비서실에 에워싸여 있었다면 과연 가능했을까? 관저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대포폰으로 최순실과 대화를 나누고 ‘주사아줌마’가 들락거려도 의심을 받지 않는 것은 그 관저를 지도에서, 또 국민의 관심에서 아예 지워 놓았기 때문이 아닐까? 시인·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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