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촛불 끄고, 태극기 내려라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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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17   |  발행일 2017-02-17 제23면   |  수정 2017-02-17
[조정래 칼럼] 촛불 끄고, 태극기 내려라
논설실장

“연정이 성공하면 독재와 타도, 불신과 대결로 점철되어온 우리 정치에 신뢰와 협력, 대화와 타협이라는 새로운 정치가 시작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정치가 투쟁의 민주주의 시대에서 관용의 민주주의 시대로 한 단계 성숙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우리는 비타협의 선명성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열고 연정에 대한 논의를 진지하게 수용해야 할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5년 7월28일 ‘당원동지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통해 연정의 취지와 의의를 이렇게 밝혔다. 당시 편 가르기와 ‘반대를 위한 반대’에 지칠 대로 지친 노 전 대통령이 내놓은 처방은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최근 제시한 대연정과 그대로 오버랩되며, ‘지금, 여기에’ 유효하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촛불과 태극기의 대연대는 어떤가. 노 전 대통령이 다시 현신한다면, 최소한 지금의 대권주자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정국수습책을 내놓을 게 틀림없다. 적어도 촛불이든 태극기든, 그 실체 자체마저 부정하진 않았을 것이고, 보혁의 두 진영을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을 요청하며 정면돌파를 시도했을 것이다. 백번 양보하더라도 촛불시위와 태극기집회 현장에 나타나 불을 지펴대는 반쪽짜리 대권주자들의 모습을 연출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다. 언제부터인지 촛불민심과 태극기물결의 변곡과 왜곡을 우려하는 소리가 많아지고, 그 근저에는 이들을 바라보는 외눈박이 시선이 똬리를 틀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탄력을 받고 있다.

특검과 언론의 칼춤에 이은 침소봉대는 우리의 감성을 현란의 도가니에 빠뜨려 정신과 이성을 마비시킬 뿐이었다. 최순실 게이트와 탄핵 및 촛불시위에 대한 사팔뜨기 시각은 경마식 광풍 뉴스에 기인했음을, 그 보도 당사자들은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반성해야 한다. 국정농단 사태의 근본적인 쟁점과 촛불·태극기의 분노의 실체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프로포폴 주사, 피부관리 등 가십거리들이 선정적으로 앞자리를 차지했음도. 특검에 불려나온 이들은 악한 또는 무능력자로 무차별 내몰린, 소위 마녀사냥은 법치의 옷을 입은 불법과 ‘법치폭력’ 아니었던가. 머잖아 사실로 드러날 특검과 언론부역의 역사 아닐까 두렵다.

광장으로 나간 정치인들, 특히 대권주자들의 촛불·태극기 편승과 부추김은 자가당착이자 모순이다. 그들 모두 탄핵감이다. 기존 정권과 차별성을 부각한답시고, 억지 선명성을 드러낼 심산으로 집회 참여를 독려하는 것은 대의정치를 스스로 포기하는 발상이다. 촛불과 태극기로 쪼개지는 대권주자가 반쪽의 민심 이상을 끌어안을 수 있겠는가. 촛불과 태극기의 대선도구화이고, 외발 행보다. 유권자의 절반 이하 혹은 3분의 1이나마 감지덕지인 양 당선 가능 표 계산에만 열을 올리는 대권주자들이 난립했으니, 촛불민심은 실종된 채 편 갈림만 세를 얻는다.

촛불과 태극기는 둘 다 강건하고 투명한 국가건설이라는 대의명분을 공통으로 지향한다. 우리 사회의 기층에 오래 잠복해 온 이념·세대 간 대결이 이처럼 격화되는 게 애써 외면하고 봉합해 두는 것보다 차라리 낫다. 좌와 우, 보수와 진보의 대접전을 거치지 않고서는 새로운 기운이 창신되고 재편의 종착역을 향해 달려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념대결의 대혼전과 혼란은 창조의 육묘상자이기도 하니, 나라가 결딴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지 말라. 촛불·태극기의 노도에 무너져내릴 정도로 대한민국의 기초가 허약하지 않고, 국민은 또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도 않다. 영리하고도 근면하다. 보수골통으로 지칭되는 50·60대 역시 직선제를 외쳤던 민주화 세대 출신이다. 하지만 촛불·태극기의 위세를 악용하는 무리들은 멀리해야 한다. 촛불을 끄게 하고 태극기를 내리게 하는 역량을 발휘 못하면 국가적 지도자로 자격이 없다.

촛불·태극기 집회는 그냥 둬도 헌재 결정일이 임박할수록 더욱더 과격해지고 탄핵·대선 이후까지 이어질 수 있다. 문제는 바로 이러한 좌우 대격돌이 국운융성의 새로운 기운을 만들어 내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두 세력을 하나의 용광로에 넣어 ‘대한 국민’으로 녹여낼 지도력이 절실하다. 국민통합의 리더십을 가진 대권주자가 아쉽다.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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