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불편하면 어때”…남다른 경험·가치를 산다

  • 김수영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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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17   |  발행일 2017-02-17 제33면   |  수정 2017-02-17
‘적당한 불편’의 매력
20170217
대구 동성로의 한 식당 앞에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있다. 제대로 된, 혹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데 이 정도의 불편은 감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치가 있는 일이라면 적당한 불편은 불편이라 여기지 않고 오히려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대구 이름난 맛집 앞에는 어김없이 긴 행렬
손님들 “제대로 된 맛 즐기려면 당연한 투자”
편리 추구하던 일상서 ‘가치있는 불편’ 선택
수십여분 기다림마저 색다른 경험으로 즐겨


대구백화점 본점 옆의 한 떡볶이집에는 식당 입구에 음식을 주문하려 기다리는 줄이 늘 10m 이상 된다. 주로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등 젊은 층이 많지만 간혹 중장년층의 모습도 눈에 띈다. 영하로 떨어지는 날씨에 바깥에서 최소 10분 이상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도 이들의 얼굴에서 힘겨움이 느껴지진 않는다. 물론 투정어린 말투도 찾기 힘들다. 연인, 친구, 가족끼리 이 떡볶이집을 찾은 이들은 기다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거나 식당 입구에서 연신 납작만두를 굽고 떡볶이를 만들어 접시에 담는 모습을 재미있는 드라마를 시청하듯 웃으며 바라보고 있다.

줄을 서 있는 한 대학생은 “서울에 사는데 방학이라 대구에 사는 친구집에 놀러왔다가 이곳이 대구의 맛집이라고 해서 꼭 먹어보고 싶어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기다리면서 떡볶이 만드는 것과 납작만두 굽는 것을 보니 신기하고 그 맛이 더욱 궁금해진다”고 말한다.

추운데 기다리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기다린 지 아직 30분도 안되었다. 서울에서는 그리 유명한 맛집이 아니더라도 30분 정도는 기다리는 곳이 많다”며 “대구를 대표하는 맛집인데 이 정도 줄을 서있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대구백화점 본점을 중심으로 한 동성로에는 이처럼 줄을 서야 음식맛을 볼 수 있는 곳들이 꽤나 많다. 최근에는 스시가 대중화되면서 스시집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좀 유명하다는 스시집마다 식당 앞에 10~20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최근 TV를 비롯한 인터넷방송에서 먹방이 인기를 끌면서 유명맛집은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린 뒤 먹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다.

이들 식당 중에는 진짜 음식맛이 뛰어나 손님이 많은 곳도 있고, 음식 맛 대비 가격이 싸기 때문에 중장년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머니가 얇은 젊은 층이 많이 찾는 곳도 있다. 이들은 10~20m 줄을 서서 몇십분씩 기다리는 것을 불편이라 여기지 않고 제대로 된 맛을 즐기기 위해 당연히 치러야 하는 투자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불만은 없다. 때로는 이런 기다림도 음식을 제대로 즐기는 과정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불편(不便)’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것을 사용하거나 이용하는 것이 거북하거나 괴로움’ ‘몸이나 마음이 편하지 아니하고 괴로움’ 등으로 요약된다. 당연히 불편은 사람들이 싫어하고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다. 그런데 최근 이런 불편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물론 큰 불편은 누구나 견디기 힘들다. 하지만 여기에 ‘적당한’이라는 단어가 붙어 적당히 참을 만하다면 불편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적당히 참을 만하다는 의미에는 참는다는 고통보다 이를 성취한 후의 기쁨이 크다는 자신만의 판단이 깔려 있고 이럴 경우 불편을 견디는 힘은 생겨나기 마련이다.

트렌드분석가인 김용섭 소장(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은 지난해 말 펴낸 ‘라이프 트렌드 2017-적당한 불편’에서 “참을 만한 고통은 쾌락이 되기도 하고 감수할 만한 불편은 편리함이 가져다주는 가치를 능가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적당한 불편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트렌드는 소비의 진화이자 소비자의 성숙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해석한다.

김 소장은 이 책에서 적당한 불편이 오히려 ‘매력이 되는 시대’가 됐다고 강조한다. 이런 추세는 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더 필러리’라는 슈퍼마켓의 사례를 든다. 이 슈퍼마켓은 포장된 제품이 없다. 직원이 포장을 해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 물건을 사려면 직접 포장용기를 가지고 오거나 이곳에서 제공하는 재활용 플라스틱용기에 담아가야 한다. 이곳은 2016년 킥 스타터(미국의 대표적인 크라우드 펀딩 서비스 기업)에서 모금을 시작한 후 한달 만에 1만7천달러의 후원금을 모았다. 불편한 슈퍼마켓에 후원금을 보낸 사람들은 쓰레기를 줄여 환경을 보전하자는 것뿐 아니라 이 아이디어의 사업적 가능성까지 내다본 것이다.

점점 더 편리함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적당한 불편이 주는 가치는 무엇일까. 물론 사람들은 편리한 것을 좋아한다. 가치없는 불편함에는 전혀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가치가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가치가 뒤따르는 적당한 불편은 편리함을 넘어선 매력이 있다는 것이다.

적당한 불편을 즐기는 이들은 우리 주변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홈패션, 자수, 뜨개질, 캘리그래피 등의 핸드메이드문화가 새롭게 인기를 끌고, 육식을 자제하고 채식 위주의 식생활을 하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밭을 마련해 농사를 짓는 도시농업이 점점 활성화되는 것도 이런 추세가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 W2면에 계속

글=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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