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규홍의 시시콜콜 팝컬처] 또 하나의 도시, 공항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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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17   |  발행일 2017-02-17 제39면   |  수정 2017-02-17
20170217
TWA 비행센터 내부.
20170217

드라마 속 이별의 특별한 공간인 공항
그 나라·도시의 얼굴인 종합건축물로
당대의 기술·자본·심미안 결합된 경관

1960년대 作 JFK공항 TWA비행센터
새가 날개를 편 형상에 ‘도시의 축소판’
잠시 머무는 곳이나 다 갖춰 생활도 가능


다들 그럴 것 같기는 한데, 나만의 이정표가 있다. 그걸 지리적 좌표라고 불러도 되고, 랜드마크라 해도 상관없다. 집으로 돌아올 때 어떤 거리에 접어들거나 장소를 지날 때 비로소 우리 동네에 다 왔다는 안도감이 드는 그런 곳 말이다. 좀더 넓게 보면, 내가 사는 대구도 이것과 비슷한 관문이 있다. 사방으로 통한 길 가운데 경주·영천 방면에서 올 때엔 대구대 본관 빌딩이 내 시야에 잡힐 때가 그런 경우다. 안동·상주 쪽에서 국도로 오다 보면 대구예술대 알림판을 볼 때 그렇다. 창원·진주에서 올 때 논공지구를 지나 눈에 희미하게 들어오는 대구타워가, 밀양·청도 국도에서는 가창 미술창작스튜디오가 그런 이정표 구실을 한다. 대구~부산간 고속도로에서는 경산시의 아파트 단지도 마찬가지고, 성주 방면 국도에서 동쪽을 향하다보면 도시철도 2호선 차량기지도 있다. 가장 느닷없이 반갑기로는 경부고속도로에서 왜관을 지나 몇 개의 굽이진 고개를 지나면 나타나는 대구도시철도3호선 교각과 그 뒤편의 도시야경이 최고다.

어쩌면 동서남북으로 서 있는 나만의 도시 관문들 가운데 어느 하나가 다른 장소에 지위를 넘겨줄 것 같다. 대구권 신공항 때문이다. 뉴스를 접하면, 새로운 공항 후보지 가운데 영천은 가능성이 희박해졌고, 군위와 의성이 공항 건설 유치 혹은 반대 움직임으로 시끌벅적하다고 한다. 지금 있는 동촌비행장을 그대로 두자는 의견도 있는데, 뭐 이건 정치권에서 몇 걸음 떨어져 있는 내가 보더라도 여권 내 당파 간의 정략적인 셈법으로 밀고 당기는 포석이다. 아무튼 우리나라 사회를 움직여가는 제도는 정치 아닌가? 요런 분야가 원래 내 전공이라서 자신있게 말하는데, 근대 이전 역사는 종교 제도가 대부분의 사회를 이끌어갔다고 한다. 지금도 종교 율법의 힘이 강하게 드리워진 나라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가 더 많다. 대표적으로 미국 사회변동의 끌개는 교육 제도, 북유럽은 복지 제도, 프랑스는 예술 제도라고 본다. 우리나라는 정치가 경제나 법이나 예술의 위에서 그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스템이라서 대구·경북 공항도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될 게 뻔하다. 우리 신문은 새로운 공항에 관한 소식을 늘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내가 이 코너에서 쓰는 공항 이야기는 정치나 행정이나 경제에 엮이지 않는다. 이건 당연히 대중문화와 예술의 관점에서 시시콜콜하게 써내려가는 잡담이다.

잡담이 잡담답게 아무 드라마 이야기부터 끄집어내어 보자라고 쓰는데 한 작품을 콕 집어 말하기가 어렵다. 이런저런 드라마를 보면 첫 회 첫 장면 혹은 마지막 회 마무리되는 시점에 공항이 곧잘 등장한다. 이건 극 대본을 쓸 때 가급적 피해야 할 설정이다. 전개해 나간 이야기 구조를 개연성 있게 정리 못하는 쪽 대본류로 만들어지는 연속극에 공항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비행기는 우리 일상 속에서 느끼는 시간과 공간의 범위를 넘어서는 거의 유일한 교통이다(우주 비행체가 있지만). 물론 극적인 이별 장면을 손쉽게 만들 수 있는 공항 신의 클리셰 이전에는 배가 떠나는 항구가 있었다. 연애와 실연의 경험이 있는 남녀들은 알겠지만 현실 속 대부분의 사랑은 자동차 안 혹은 버스정류장에서, 더 지독한 현실은 휴대폰 메시지 한 줄로 끝이 나지, 공항은 아니다. 내 친구 가운데 1년의 절반을 세계 여기저기로 출장 다니는 무역업자가 있다. 이 친구마저도 입출국시 공항에 도착할 때엔 자기가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인 것 같은 기분을 매번 느낀다고 한다. 그만큼 공항은 특별한 공간이다.

그렇다면 공항은 왜 그렇게 비일상적인 곳으로 여겨질까? 아마도 여기에 견줄 수 있는 도시 속 장소는 대규모 휴양지나 놀이동산이 있겠다. 스포츠 경기가 열리는 스타디움도 그렇다. 공항은 당대에 끌어 쓸 수 있는 기술과 자본과 심미안이 결합한 엄청난 경관이다. 공항이 들어서는 과정은 대단하다. 그것은 순전히 대도시를 위한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도시 안에 새로 지어지기 어렵다. 넓디넓은 공항은 땅값과 재난사고 문제 때문에 도시에서 떨어진 곳에 건설된다. 필요에 따라서 내륙 도시에서는 산을 깎아 없애고, 항만 도시에서는 바다에 흙을 메워 평탄한 섬을 만든다. 이런 기적 같은 일을 벌이는 것도 결국 사람들의 좀 더 편하고 빨리 가기 위한 욕망 때문이다. 그 욕망의 한 가닥은 아름다움을 구현하려는 쪽으로도 뻗어 있다. 공항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이 순탄하게 이루어지게끔 효율성과 안전성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다. 그런 기능은 동시에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이어진다. 거의 모든 민간 공항 설계자들은 자신이 구상하는 공간이 다른 공항들보다 훨씬 수려해야 된다는 압박감에 사로잡혀 있을 게 분명하다. 그 이유가 뭔가 하면, 공항은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수익 사업이자 그 나라나 도시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어떤 국제노선을 유치하고, 비행기 몇 대를 갖다 댈 수 있고, 편의 시설이 얼마나 잘 갖춰져 있는가 하는 실질적인 문제가 중요하지만, 하나의 종합 건축물인 공항은 미적인 바탕 위에 나머지 모든 사안을 준비한다. 그래서 공항이나 경기장 혹은 미술관 같은 건축물은 그 방면으로 특화된 전문 건축가와 건설사가 나설 수밖에 없다. 보통 도심에서 벌어지는 공공미술이 그러한데, 작가가 구조물의 디자인이나 그 개인만의 시그니처를 새겨 넣고, 건설사나 공장이 도면과 실물을 완성하는 방식이 공항에도 적용된다. 많이 안 다녀서 모르지만, 내 눈에는 뉴욕 JFK 공항의 TWA 비행센터가 정말 아름답고 편리해 보였다. 모더니즘 경향이 대세를 이루던 1960년대 건축 환경에서 핀란드 출신의 건축가(그렇다면 그야말로 스칸디나비안 디자인?)가 설계한 그 공간은 새가 날개를 펼친 형상을 자랑한다.

물론 그 공간 속에 있는 근무자나 탑승객들은 비행기를 타고 오르내리지 않는 이상 공항의 전체 모습이 새인지 물고기인지 알 수가 없다. 공간이 워낙 넓어 형태가 잘 가늠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돈을 벌고, 만남의 기쁨과 헤어짐의 슬픔을 겪는다. 공항은 도시의 축소판이다. 놀이동산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환상을 실재처럼 꾸며서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것과 반대로, 공항은 여행가방 속 물건들처럼 꼭 필요한 것만 가려서 그 안에 샘플처럼 준비해 놓은 기능적인 장소다. 공항엔 상점과 식당이 있고, 병원과 약국이 있고, 호텔과 경찰 파출소까지 없는 게 없다. 공항은 잠시 머무는 공간이지만 시간과 돈만 허락한다면 거기서 생활도 가능하다. 이런 점은 대학교 캠퍼스와 비슷한 점이 있다. 그곳은 이곳저곳에서 모인 사람들이 활기를 더한다. 영화 ‘스타워즈’나 ‘맨 인 블랙’에 등장하는 우주 공항 속 여러 생명체의 뒤섞임은 공항의 현실을 부풀려 보여준다. 이런 활기가 난장판이 되지 않기 위해 공항은 대학 캠퍼스가 그런 것처럼 나름의 규율을 가진다. 가장 중요한 건 장소 찾기다. 영화관은 시간에 늦더라도 중간이나 다음 회를 보면 그만이지만 비행기 시간은 그렇지 않다. 낭패를 막기 위해서 공항은 사람들이 쉽게 식별할 수 있는 기호를 만들어 질서를 부여한다. 세련된 약호와 여러 언어가 사용되는 공항의 의사소통은 확실히 거기가 위치한 농어촌의 삶과는 차이가 있다. 외지에 훌쩍 떨어져 나온 공항은 그 자체가 하나의 폐쇄된 도시이거나 아니면 원도심의 연장선 위에 있지, 그 지역에 밀착한 명소가 되긴 힘들다. 이런 점이 신공항 후보지에서 유치를 반대하는 근거가 아닐까.

P&B 아트센터 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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