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특검

  • 이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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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18   |  발행일 2017-02-18 제23면   |  수정 2017-02-18

‘가스터빈, 제트엔진 생산에 관한 사업계획서를 제출함에 있어 본인은 이 사업이 고도공업입국의 기반구축이 되며 과학한국의 초석이 될 중차대한 항공공업사업임을 명심하고 본인과 본인이 경영하고 있는 삼성그룹의 총력을 집중하여 기필코 조기에 성취시켜 국민경제발전과 자주국방에 헌신할 것을 결의합니다.’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1978년 9월 삼성정밀 설립 계획서를 정부에 제출하면서 작성한 결의서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낸 일종의 맹세문이다. 새로운 분야의 사업에 진출하려는 이 회장의 의지와 각오를 읽을 수 있는 문건이다. 삼성정밀은 후에 삼성항공, 삼성테크윈으로 변신하면서 그의 결의대로 고도공업과 방위산업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15년에는 한화그룹이 인수, 한화테크윈으로 이름을 바꿨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11월30일 박영수 변호사를 특별검사로 임명했다. 당시 야권은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을 파헤칠 특검 후보자로 검사 출신의 박영수·조승식 변호사를 추천했다. 조 변호사는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을 비롯해 부산 칠성파, 영도파 등 폭력조직원들을 검거한 것으로 유명하다. 29년의 검사생활 가운데 20년 동안 폭력배와 싸웠다. 조폭 잡는 검사였다. 박영수 특검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론스타 사건을 수사했다. SK의 분식회계 사건을 수사해 최태원 회장을, 현대자동차의 비자금을 파헤쳐 정몽구 회장을 구속했다. 이 때문에 대기업 저격수, 대기업 저승사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박 대통령은 무슨 이유에선지 대기업 범죄 전문인 박 변호사를 택했다. 일각에서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과의 친분관계를 거론하기도 했다.

특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박상진 사장 등을 상대로 피의자 재소환조사를 거쳐 14일 구속영장을 재청구하자 박 특검의 경력을 아는 이들은 영장발부 성공(?)을 점쳤다. 결국 삼성은 창업 79년 만에 총수가 처음 구속되는 사태에 직면했다. 탄핵심판대에 있는 박 대통령에게는 불리한 조건이 하나 더 생겼다. ‘국민경제발전과 자주국방에 헌신할 것을 결의’하는 정신이 그대로 전승됐다면 이런 사태가 일어났을지. 국민경제발전보다는 자사 그룹의 몸 불리기에 더 치중한 때문은 아닌지. 그나저나 박 대통령이 조승식 변호사를 택했다면 수사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됐을까? 이하수 중부지역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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