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부품업체 재고 쌓인 성서산단…근로자 1년새 2천여명 감소

  • 노인호,김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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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20 07:08  |  수정 2017-02-20 07:09  |  발행일 2017-02-20 제3면
구조조정 벼랑 끝에 선 대구경제
20170220
400개가 넘는 자동차 부품업체가 몰려있는 대구 성서산업단지 전경. 성서산단 연간 생산액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자동차 관련 제조업체들이 잔업과 특근을 줄이는 식으로 임금조정에 나섰지만, 구조조정의 폭풍을 피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영남일보 DB>

‘금리인상으로 주택담보대출을 포함한 가계대출 이자부담 증가→부동산 가격하락으로 인한 담보가치 하락→구조조정에 따른 가계수입 감소로 가계 대출 이자 부담 강화→가계 소비 지출 감소로 자영업 등 내수 부진 심화→또다시 구조조정.’

구조조정 바람이 불기 시작한 대구경제에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다. 이런 예상시나리오가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은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자동차와 기계부품업체, 그리고 연이은 악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해운·조선업계는 언제든 구조조정에 나설 수 있는 상황이다.

성서산단 車부품업체 400여곳
산단 연간 생산액의 31% 차지
잔업 줄어 근로자 수입 30% 감소
장기불황 땐 인력 감축 불가피

금리인상·부동산가격 하락 등
대구경제 ‘퍼펙트 스톰’ 우려


◆구조조정, 안전핀 뽑힐까

당장 구조조정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잔업과 특근이 줄어들면서 이미 근로자의 수입은 30%가량 줄어든 상태다.

지난해 12월 현대자동차가 일부 자동차 생산라인을 철수, 성서산업단지(이하 성서산단) 내 자동차 부품업체 상당수에서 잔업과 특근이 사라졌다. 사실상 납품 물량이 줄어든 상황이어서 정상근무만으로도 재고가 쌓이는 상황인 탓에, 잔업과 특근을 할 이유가 없는 것. 성서산단에는 400개가 넘는 차 부품업체가 몰려 있고, 이들은 성서산단 연간 생산액의 31%를 차지한다.

대구경북기계공업협동조합 한 관계자는 “정상근무만 해도 재고가 계속 쌓인다. 이런 상황이 더 길어지면 구조조정에 나서는 기업들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19일 동북지방통계청의 지난해 12월 대구의 재고는 전년동월 대비보다 5.9%, 전월보다는 0.1% 증가한 반면 경북의 재고는 전년보다 8.5%, 전월보다는 5.3% 감소했다.

성서산단뿐만 아니다.

선박구성부품을 생산하는 <주>유나인더스(대구 달성군 화원읍)는 현재 ‘직원 휴업제’로 구조조정을 미루고 있다. 직원 휴업을 하면 평균 임금의 70%를 주고, 보름 정도 일을 쉬는 식이다. 구조조정을 미루기 위한 것이지만, 지난해까지 직원이 30명이던 이 회사는 휴업제가 도입된 이후 현재는 7명만 일하고 있다.

유나인더스 관계자는 “휴업제를 하다 보니 생계를 위해 퇴사하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지만, 경기가 나아지는 것 말고는 해결책이 없다”고 말했다.

선박용 엔진부품을 생산하는 <주>금융기계(대구 북구 팔달로) 이무철 대표는 “인력구조조정을 아직 실시하진 않았지만 앞으로 준비해야 될 것 같다”며 “해외시장 개척 등 여러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고 그마저 안되면 마지막 수단으로 구조조정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런 탓에 2015년 3분기 5만9천704명까지 늘었던 성서산단 근로자는 지난해 4분기 5만7천640명으로 15개월 동안 2천64명이 감소했다. 지난해 4분기에는 공장 수가 늘어났음에도 인력수가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이런 탓에 2012년 이후 증가 추세를 이어가던 성서산단 근로자 수는 2015년 3분기 이후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유통업체와 치킨점 등 자영업자들은 구조조정은 물론 임시휴업에까지 나서고 있다.

지난해 말 팀장급을 시작으로 구조조정에 나선 대구백화점은 최근 두달 사이 서른명에 가까운 인력을 감축했다. 이 중 일부는 본사에서 퇴사한 뒤 외주업체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연봉이 적게는 15%, 많게는 25%가 줄었다. 더욱이 대구백화점의 구조조정은 팀장, 대리급에서 평사원까지 범위를 확대, 계속 진행되고 있다.

치킨집과 소규모 배달업체는 인력구조조정을 넘어 아예 임시 휴업에 나서고 있다.

치킨 단무지를 생산하는 A업체 대표는 “2월 들면서 임시휴업을 하는 거래 업체가 늘어나 전체 중 20%가량을 차지하고 있고, 이중 대형 프랜차이즈의 체인점도 적지 않다"면서 “거래업체가 휴업하다 보니 회사 매출도 감소하고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악순환 시작되나

인력 구조조정 자체도 문제지만 그 후폭풍이 더 큰 문제다. 인력구조조정으로 가계 수입이 감소한 상황에서 금리가 오르면 가계대출이자도 증가해 지출을 줄이게 되고, 이는 내수침체 악화를 불러올 수 있다. 내수가 침체되면 기업은 또다시 구조조정에 나서게 되는 식이다.

여기다 빚을 내 집을 산 경우 구조조정으로 가계 수입이 급감, 연체에다 집값 하락으로 담보가치까지 떨어지면 대구 경제에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퍼펙트 스톰은 개별적으로는 크지 않은 태풍이 다른 자연현상과 동시에 발생, 엄청난 파괴력을 갖게 되는 현상으로 구조조정, 금리인상, 경기침체, 부동산가격 하락이 동시에 일어날 경우 경제 전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우려가 현실로 이어질 가능성을 예고하는 지표들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행의 ‘2016년 12월 중 금융기관 가중평균금리’에 따르면,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금리는 연 3.29%로 2015년 2월(3.48%) 이후 1년10개월 만에 가장 높았고,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3.13%로 2015년 2월(3.24%)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의 가계 신용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현재 1천295조7천531억원의 가계부채 중 은행권 고정금리 대출비중이 41%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700조~800조원은 변동금리형으로 추정된다. 즉 대출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가계 이자 부담도 연간 7조~8조원 늘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대구의 가계대출액 증가는 전국 최고 수준이다.

지난해 9월 대구지역 가계 대출액은 59조7천억원으로 2013년부터 15.8%의 연평균 증가율을 기록해 제주(20.1%)를 제외하고는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이런 탓에 전국에서 유일하게 가계대출 규모가 지역내총생산(이하 GRDP)을 웃도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4년간 대구지역 가계대출 중 가계대출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다중채무자(3개 이상의 금융기관으로부터 돈을 빌린 사람)의 대출규모는 18조4천억원(지난해 9월말)으로 가계대출의 30.7%를 차지했고, 저소득층(연소득 3천만원 이하) 가계대출에서 다중채무자가 차지하는 비중도 32.1%로 같은 기간 8.2%포인트 올랐다.

같은 기간 주택담보대출 연평균 증가율은 19.9%로, 전국 평균(9.7%)보다 2배 이상 높아 가계대출 중 주택담보대출 비율이 57.5%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9월 대구지역 주택매매가격은 전국에서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고, 거래 감소량도 전국 최고 수준이다.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가 한국감정원과 국토교통부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이 기간 대구의 주택매매가격은 지난해 12월보다 1.7% 하락한 반면 전국은 물론 부산, 울산 등 광역시의 주택매매가격은 오히려 0.3% 상승했다. 주택매매거래량 감소폭도 더 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7% 줄어든 반면, 지방 광역시는 대구의 절반 수준인 26.5%, 전국 평균은 16.5%에 그쳤다.

임규채 대구경북연구원 경제통향분석팀장은 “제조업 경기를 살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중국, 미국 등으로 한정된 수출시장을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 등으로 다변화시키는 동시에 정부는 기업들이 국내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며 “이런 노력으로 제조업이 다시 활기를 찾으면 내수가 개선되고, 이는 구조조정으로 인한 악순환을 없애거나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진우 부동산자산관리연구소장은 “과도한 대출로 이뤄진 부동산 투자는 부채 다이어트를 통해 자신에게 일어날 변수 안에서 통제가능하도록 조정하고, 추가로 빚을 내 투자에 나서는 것은 삼가야 한다”면서 “지금은 일부 손해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전체를 잃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노인호기자 sun@yeongnam.com

김미지기자 miji469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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