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가족 갈등·불화 해결을 위한 대화

  • 최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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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20 08:00  |  수정 2017-02-20 08:00  |  발행일 2017-02-20 제18면
“버스를 함께 타고 가는 것만으로도 대화의 문은 열려요”
20170220
일러스트=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어미 연어는 알을 낳고 부화된 새끼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아직 먹이를 찾을 줄 모르는 새끼들이 굶어죽을지 몰라 극심한 고통을 참으면서까지 새끼들이 자신의 살을 뜯어먹도록 내버려둡니다. 가물치는 알을 낳은 후 바로 실명하게 되고 스스로 먹이를 찾을 수 없게 됩니다. 부화된 수천 마리의 새끼들은 천부적으로 이를 깨닫고 어미가 굶어죽는 걸 볼 수 없어 한 마리씩 어미 입으로 들어가 어미의 굶주린 배를 채워줍니다.

최근 ‘연어와 가물치의 교훈’이라는 이야기가 SNS를 통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진실 여부를 떠나 이야기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자녀로서 부모로서 나의 모습은 어떤지 되돌아보게 합니다. 하지만 저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만이 가족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서식하는 레드우드라는 나무는 키가 90m 이상 자라는 현존하는 나무 중 가장 큰 나무입니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높이 자라는 레드우드를 지탱해주는 뿌리는 3m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큰 나무가 3m 뿌리로 지탱할 수 있는 이유는 군락을 이룬 뿌리들이 서로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뿌리와 뿌리가 서로를 잡아주어 강한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고 꿋꿋이 서 있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다 자란 나무는 자신의 가지를 꺾어 어린 나무들이 자랄 수 있도록 자리를 터주고 양분을 공급하기까지 합니다.


부모의 야근·아이의 학습 탓에 소통부족
짧은 대화시간이 부적절한 표현 낳아
자녀는 진심으로 이해하는 대화 원해


가족은 사전적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하여 그로부터 생겨난 아들, 딸, 손자, 손녀 등 가까운 혈육들로 이루어지는 집단’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유전적인 혈육 관계, 일방적인 희생보다 레드우드처럼 서로 지탱하는 가족이 진정한 가족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가족의 형태가 변화하면서 가족의 갈등과 불화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특히 청소년기 자녀와 부모의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다양화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갈등의 원인은 부모와 자녀의 서로 다른 가치관, 기대, 요구 등 동상이몽(同床異夢)에서 시작됩니다. 이러한 동상이몽은 부모와 자녀의 대화를 통해 서로를 좁혀줄 수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의 오해와 갈등은 대화의 시간 부족 또는 부적절한 대화에서 비롯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삶의 질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 부모와 자녀가 함께 보내는 시간은 하루 48분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 3시간31분, OECD 평균 2시간31분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치입니다. 직장인의 잦은 야근, 입시 경쟁체제는 가족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부족한 원인이자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하지만 그 짧은 대화 시간에도 불구하고 부모와 자녀의 부적절한 대화로 인해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질 수 있습니다. ‘빨리 와서 밥 먹어!’(명령 지시형), ‘자꾸 그러면 용돈 안 준다’(경고 위협형), ‘어른한테 그러면 안 돼!’(설교 훈계형), ‘그것밖에 못하니?’(모욕 비난형), ‘누구네 애들은 잘한다던데’(비교 분석형) 등의 말은 자녀에게 상처를 주고, 그런 자녀는 부모를 간섭의 대상으로 여겨 피하게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혈육으로 마음으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말을 안 해도 나를 이해해 주겠지? 이렇게 말해도 받아주겠지? 등 대화를 피하거나 지나친 감정으로 이야기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상처 받기가 더 쉽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통로는 대화입니다. 자녀들이 원하는 대화는 진심으로 이해해주고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지하철을 타고 출근한 한 달 전, 학원에서 딸을 데려와 달라는 아내의 전화가 왔습니다. 퇴근 후 지하철을 타고 학원 앞으로 갔습니다. 학원 입구에서 만난 딸은 ‘아빠! 차는요?’ ‘오늘은 차 없이 왔지’ ‘그럼 어떻게 가요?’ ‘버스 타고 가면 되지’ 이렇게 아빠와 딸의 버스데이트가 시작되었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매서운 겨울바람에 딸은 아빠한테 껌 딱지처럼 찰싹 붙었고,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도 아빠 팔을 잡고 나란히 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버스에서 내린 후 집으로 가는 길에 떡볶이 냄새에 이끌려 군것질도 하고, 새로 생긴 가게 구경도 하면서 그렇게 1시간이 걸려 집에 도착하였습니다. 추운 날씨에 편안하게 집에 데려다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딸은 의외로 다음에도 아빠랑 버스 타고 집에 왔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평소 학원에서 집까지 오는 10분 동안 딸은 뒷자리에 앉아 조용히 스마트폰만 보고 있어 대화를 나눌 시간이 적었습니다. 차가 없어 춥고 불편했지만 오히려 버스데이트로 딸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이후에도 가끔씩 버스데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오늘 하루 자녀와의 버스데이트, 어떠신가요?

신민식<대구학생문화센터 교육연구사·교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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