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시발비용

  • 남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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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20   |  발행일 2017-02-20 제31면   |  수정 2017-02-20

SNS의 발달과 젊은 세대의 불확실성 확대로 신조어가 끝없이 탄생하면서 이들 신조어를 모르면 금세 ‘아재’ 세대로 치부되는 작금이다. 초기 젊은이들 사이에 떠돌던 ‘헐’ ‘대박’ ‘꿀잼’ ‘지름신’ 등은 이미 신조어가 아닐 만큼 신구세대를 막론하고 일상화됐다. 최근 젊은 층에서 크게 공감을 받으며 유행하는 신조어가 나왔다. ‘시발비용’이 주인공으로, 홧김에 저지른 소비행태를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언뜻 들으면 비속어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이 말은 흔히 실제 쓰는 비속어와 비용을 합친 신조어다. 기성세대의 정상적 사고로는 이 단어가 귀에 거슬리는 게 당연할 만큼 저속함이 느껴진다.

몇 년 전부터 학생들에게 일상적으로 사용되던 ‘많다’는 의미의 ‘졸라’나 ‘존나’도 마찬가지다. 신조어로 받아들이기에는 욕설에 가까운 것이어서 기성세대는 당연히 거부감을 느끼고 학생들이 사용하지 못하게 나무라는 모습을 보여왔다. 특히 한글파괴라는 측면에서 외국어와 혼용해 만들어진 신조어는 매국행위에 가깝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장인턴’처럼 정규직이 되지 못한 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인턴생활만 반복해 부장급 경험을 쌓은 인턴을 비유한 신조어는 시대의 아픔을 담고 있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흙수저·금수저·혼밥·혼술 등도 시대를 풍자한 뜻을 갖고 있다.

‘홧김에 서방질한다’는 속담처럼 울분을 참지못해 차마 못할 짓을 저지르기보다는 ‘시발비용’처럼 스트레스 해소 차원에서 사소한 물건 사재기나 돈 쓰기가 훨씬 낫기는 하다. 하지만 신조어 형태가 갈수록 극단적이거나 자극적이라는 것이 문제다. 무한경쟁을 요구하는 글로벌시대에 아무리 노력해도, 좋은 스펙을 갖고 있어도 취업이 되지 않는 어두운 현실을 살고 있는 청년세대들의 심리적 불안감이 이러한 신조어 탄생과 확산의 저변에 깔려 있다. 하지만 젊은 층이 그렇게 비관적이거나 저속함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신조어 가운데도 ‘있어 보인다’와 ‘Ability(능력)’를 합친 ‘있어빌리티’처럼 자신있게 스스로를 표현하는 단어도 많다. 신조어에서 보듯 분명한 것은 젊은 세대들의 삶이 기성세대보다 훨씬 다양하고 개성있게 발전할 것이란 점이다.

남정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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