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칼럼] 오늘도 영수학원을 가는 우리 아이들과 4차 산업혁명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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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21   |  발행일 2017-02-21 제30면   |  수정 2017-02-21
20170221
이수희 (변호사)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비
입시 위주 교육으로 될까?
‘좋은 대학 가려면 학원에…’
끊임없이 오는 유혹의 문자
언제까지 이겨낼 수 있을까


중학교 입학을 앞둔 딸이 영어 학원을 그만둔 지 한 달이 넘어가고 있다. 그사이 아이는 짜증도 없어졌고, 일찍 잠자리에 들고 있다. 한 달 전쯤 자다 깨서 보니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에 애가 책상 앞에서 뭔가를 지웠다가 말다가 하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보는 애 얼굴이 눈물범벅이었다. 놀라서 책상 위를 보니 영어 학원 숙제를 하고 있었다. “스마트폰 볼 시간에 미리미리 숙제를 했어야지.” 잔소리부터 하고 문제지를 보다 말문이 막혔다. 문법, 듣기 등등 숙제 양이 너무 많았고, 과제 방식이 30년 전과 같았기 때문이다. 인칭대명사와 인칭에 맞춘 동사 변화를 익히는 똑같은 유형의 문제를 다섯 장이나 풀고 있었다. 문법을 이해하고 있는데도 일률적으로 다섯 장을 풀어야 되는 상황을 딸애는 못 견뎌하고 있었다. 학원의 의도는 간단하다. 똑같은 유형의 문제를 수십 번 반복해서 풀면 나중에 시험에서 실수를 줄일 수 있다는 의도다. 순전히 내신관리와 입시를 위한 공부인 거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는데 너무 무용한 짓이란 생각이 들어 학원을 그만두게 했다.

상황은 수학 학원도 마찬가지다. 문제 난도는 훨씬 어려워졌지만, 수학을 흡사 암기 과목처럼 익히는 건 예나 지금이나 같다. 선행학습이니 뭐니 해서 갖가지 유형의 문제들을 대입시험 직전까지 반복해서 풀게 함으로써 문제를 외우게 만드는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수의 세계와 우주, 물리학 등에 재미로 접근하게 된 건 대학에 입학한 이후였다. 중·고등학교 시절 모든 과목은 암기 과목이었다. 심지어 수학과 철학까지도. 30년이 지난 지금도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는 셈이다.

요즘 서점에는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책이 즐비하다. 증기기관이 등장하면서 시작된 1차 산업혁명, 전기와 석유로 생산력이 급증한 2차 산업혁명, 그리고 정보통신 기술로 이전에 없던 산업이 생성된 3차 산업혁명에 이어 기계가 인간의 머리를 대신하는 4차 산업혁명이 이미 시작되었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 덕분에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이 어떤 건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세기의 바둑 대결 이후 인공지능이 인류를 다스릴 수도 있다는 공상 과학 같은 논의부터, 인공지능 때문에 대량 실업 사태가 날 거라는 비관적인 전망까지 다양한 예견들이 나왔다. 의사·변호사와 같은 전문직은 사양 직업이 될 것이고, 대신 컴퓨터와 관련한 새로운 직업이 각광받을 거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 아이들의 장래 희망에는 여전히 의사·판사·검사처럼 전통적으로 선호하는 직업이 우세하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입시 경쟁을 위해 영수학원을 보내야 하는 건지 학부모로서 갈등이 너무 크다. 요즘 기술의 발전 속도는 어제와 오늘이 다를 정도로 빠르다. 3월에 중학교 입학을 하는 딸이 대학에 들어가는 6년 후에는 산업 환경이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내 능력으로는 가늠이 안 된다.

장래 산업 환경의 변화와 그에 따른 교육 방안은 개인이 아닌 국가가 마련해야 한다. 국가의 이런 책무는 특히 저소득층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서 더 절실하다. 학력과 소득이 높은 계층의 부모들은 선진국의 변화 상황을 접할 기회가 많고 고급 정보도 더 많이 알기 때문에 자녀의 미래 대비를 알아서 할 수 있다. 경제 양극화가 곧 교육 양극화가 된 현실에서 4차 산업혁명에 맞춘 직업 교육이 공교육 현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공교육에서 직업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경제 양극화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학원에서는 계속 문자가 오고 있다. ‘중학교 입학을 앞둔 지금 힘들더라도 학원의 진도를 따라와야 좋은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는 그런 내용이다. 코딩 학원을 가지 않겠냐고 꾀어 보고는 있지만, 영어 학원을 안 보내고 있는 이 결심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자신이 없다. 이수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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