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유령진동증후군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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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21   |  발행일 2017-02-21 제31면   |  수정 2017-02-21

인간이 가장 싫어하는 심리상태 중 하나가 불안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개 하루에도 몇 번씩 불안감에 휩싸이기 마련인데 그 이유도 명확히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를 두고 어떤 철학자는 인간의 삶 자체가 불안을 떨쳐내고, 새로운 불안을 맞아들이고, 또다시 그것을 떨쳐내는 과정의 연속이라고 규정했다. 즉 불안은 인간의 숙명이라는 것이다. 이는 과학적으로도 그럴듯하게 설명되기도 하는데, 즉 인간이 느끼는 불안은 천적이 나타났을 때 재빨리 도망치거나 맞서 싸우는 데 필요한 일종의 생존 장치라는 것이다.

이처럼 원시인류 때부터 장착돼 온 ‘불안 DNA’ 자체는 나쁜 게 아니지만, 문제는 불필요하게 오작동을 일으키는 경우도 많다는 점이다. 물론 이런 쓸데없는 불안감은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을 괴롭혀왔는데, 여기에서 벗어나기란 여간 쉽지가 않다. 불가에서도 이와 관련된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데, 달마대사와 제자 혜가스님 간의 ‘안심문답’이다. 혜가가 달마를 찾아 마음이 너무 불안해서 괴롭다고 하소연했는데, 달마가 그 마음을 찾아오라고 해서 불안의 실체가 없음을 깨우쳐줬다는 내용이다. 달마에 이어 중국 선종의 2대 조사에 오른 혜가조차 한때 불안증에 시달렸으니, 평범한 사람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발달할수록 불안해질 일이 많은데, 최근에는 휴대폰과 관련된 불안증세도 심해지고 있다. 휴대폰이 잠시라도 없으면 안절부절못하거나 심지어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는 사람도 많다. 또 휴대전화 벨소리가 들리거나 진동을 느낀 것 같은 착각을 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를 유령 진동 증후군(Phantom Vibration Syndrome)이라고 한다. 이 증후군은 절단된 팔이나 발끝에서 가려움을 느끼는 ‘환영사지증후군’과 비슷한데, 휴대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여기는 일종의 불안증인 셈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현대인의 절반 이상이 이 증후군을 앓고 있으며, 특히 휴대폰 의존성이 강한 젊은 층일수록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미국 대학생의 90% 이상이 이 증후군을 겪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사람과 휴대폰의 관계가 주객전도되는 현실이 씁쓸하다. 허석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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