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에 돈 맡겨라”…눈앞서 건넨 전재산

  • 박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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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24   |  발행일 2017-02-24 제6면   |  수정 2017-02-24 07:43
[사건 속으로!] 대면형 보이스피싱 유행

“○○○씨죠? 서울중앙지검 △△△수사관입니다.”

대구에 사는 직장인 A씨(여·27)는 설 연휴를 앞둔 지난달 25일 아침, 한 통의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검찰 직원이란 남성이 자신의 통장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사용됐다고 알려왔기 때문이다. 처음엔 뭔가 미심쩍었지만 상대방과 계속 전화통화를 하면서 의심의 벽은 점점 허물어졌다. 그 남성은 자신의 이름과 주소는 물론 가족관계 등 개인 정보까지 상세히 알고 있었다.

통화가 끝날 무렵 남성은 “무죄를 입증하려면 예금을 찾아 금융감독원에 맡겨야 한다. 금감원 직원이 근처로 찾아갈테니 그에게 돈을 맡겨라”고 A씨에게 지시했다.


“몇시간 뒤 은행서 돈 찾아가라”
찾아간 은행은 이미 영업 끝나
중국총책 지시 받은 6명 붙잡혀



A씨는 뭔가에 홀린 듯 통장에 든 2천500만원을 모두 현금으로 인출했다. 그간 직장생활을 하며 모은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돈이었다. 몇 시간 뒤 A씨는 수성구의 한 커피숍 앞에서 금감원 직원이라는 한 남성을 만났다. 정장 차림에 서류가방을 든 이 남성은 금감원 신분증을 목에 걸고 있었다. 그는 A씨에게 돈을 건네받으면서 금감원 로고가 찍힌 현금보관증까지 줬다. 몇 시간 뒤 이 남성은 달서구의 한 은행을 알려주며 돈을 다시 찾아가라고 했다. 한 시간여 걸려 해당 은행을 찾았지만 영업시간은 이미 끝난 뒤였다. 순간 아차하는 생각이 든 A씨는 걸려온 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없는 번호’란 멘트만 나왔다. 최근 유행하는 ‘대면형 보이스피싱’ 범죄에 당한 것이다.

대구 수성경찰서는 23일 금감원 직원을 사칭해 돈을 뜯어낸 혐의로 국내 총책 백모씨(46)와 조직원 박모씨(26) 등 4명을 구속하고, 김모씨(35) 등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백씨 등은 최근까지 4회에 걸쳐 A씨 등 20~30대 여성 4명에게 같은 수법으로 모두 8천860만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 결과 이들은 중국에 있는 총책의 지시를 받아 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기정 수성서 수사과장은 “금융감독원이나 검찰청, 공공기관은 어떠한 경우라도 전화로 계좌이체나 현금을 맡길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며 “이런 전화가 걸려올 경우 100% 보이스피싱 범죄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박광일기자 park8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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