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선암사∼송광사 ‘천년 불심 길’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7-02-24   |  발행일 2017-02-24 제37면   |  수정 2017-02-24
한국판 ‘산티아고 순례길’…걸음마다 나를 돌아보다
20170224
응달의 눈위로 초봄의 새싹이 돋기 시작한 큰굴목재 가는 길.
20170224
선암사 승선교. 우리나라 최고 최미의 홍예문으로 다리사이로 홍예종석과 강선루가 보인다.(사진 왼쪽)천자암의 신비한 쌍향수 나무. 이 신목을 만지면 극락간다는 전설이 있다.
20170224
송광사 입구에 있는 침계루와 계곡 청류가 아름답다.
20170224
송광사 입구에 걸린 현판과 건축미가 감탄을 자아낸다.

선암사 가기 전에 만나는 계곡의 승선교, 즉 홍예문(무지개다리)은 돌을 사용한 걸작이다. 이 다리는 수려한 계곡 위에 무지개 모양으로 만든 아름다운 석교다. 홍예교 가운데는 홍예종석이 있다. 용머리 모양으로 조각한 돌이 계곡을 향하여 돌출되어 있다. 홍예교의 돌 재료가 이 홍예종석에 의해 무게중심이 지탱되고 균형이 이루어진다. 다리 아래로 홍예교의 반원이 물에 잠긴 그림자가 되어 위의 홍예교와 하나의 원을 이루어 그저 감탄스럽다. 여기 홍예교와 쌍벽을 이루는 또 하나 랜드마크 강선루를 보고, 선암사 입구에 도착한다.

조계산 자락 선암사∼송광사 잇는 고갯길
‘태고종 본산’ 선암사의 승선교 홍예문
물 속 그림자와 원 이룬 무지개다리 감탄

저승 문턱 사람도 되불러온다는 편백숲
굴목재 오름길서 허기 달랜 후 천자암
쌍향수 지나 승보사찰 조계총림 송광사


◆불교 근본 교의를 나타내는 삼인당을 지나며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삼인당(三印塘)이다. 여기서 삼인(三印)은 삼법인(三法印)이며, 영원한 세 가지 진리를 말한다. 첫째,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이다. 우주의 온갖 물질과 마음은 모두 나타나고 없어지고 하여 잠시도 쉬지 않고 변화하는데, 이 영원한 변화를 제행무상인이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든 현상을 항상 존재하는 것으로 그릇 생각한다. 둘째,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인(因)과 연(緣)에 의해 생긴 것으로, 실로 자아(自我)라는 실체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내가 있다는 그릇된 생각을 한다. 셋째, 열반적정인(涅般寂靜印)이다. 위의 두 가지 그릇된 생각에서 벗어나면 고통이 없는 적정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삼법인은 석가모니가 깨달은 불교의 근본 교의다. 연못을 지나 선암사로 들어간다.

◆태고종의 본찰 선암사를 탐방하며

조계산 동쪽 기슭에 자리한 선암사는 백제 성왕 7년(529) 아도화상이 창건한 고찰로 서쪽 기슭의 송광사와 쌍미를 이룬다. 사문에 태고총림 조계산(太古叢林 曹溪山) 선암사 현판이 걸려 있다. 태고는 태고종의 어원이고, 고려 말 대표적인 선승 보우의 법호다. 태고 보우는 당시 신학풍에 속하는 중국의 임제선을 우리나라에 알렸다. 임제선은 주로 화두(話頭)를 수행요체로 삼는다. 보우 스님은 조주 화상의 무(無)자 화두를 듣고 정진, 크게 깨달았다. 태고국사는 여든두 살 되던 해 섣달에 다음과 같은 임종게를 써 놓고 입적하셨다. “인생의 목숨이 물거품 같아서(人生命若水泡空)/ 80여년이 일장춘몽이로구나(八十餘年春夢中)/ 죽음길에 다달아 가죽주머니를 놓아버리니(臨路如放今皮袋)/ 한 바퀴 붉은 해가 서산에 걸리네(一輪紅日下西峯).” 이 임종게가 죽비 되어 나의 전신을 두들기니 모골이 송연하다. 나도 그 누구도 언젠가 가죽주머니를 놓아버리게 되는 날이 온다. 당신은 그날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섬짓하다.

일주문을 지나자 정념의 땅, 속세를 벗어나는 것 같다. 먼저 만세루 현판에 있는 육조고사(六朝古寺)를 본다. 여기서 육조(六朝)는 육조(六祖) 혜능을 말한다. 육조 혜능의 선풍을 이어 우리나라 선종의 아침을 여는 도량이란 의미다. 서포 김만중의 아버지 김익겸의 글씨다. 장경각을 지나 돌담 사이 유명한 선암매를 본다. 겨울임에도 미녀의 뒤태처럼 무언가 시선을 끌어 모으는 아름다움이 있다. 나오면서 와송과 뒷간을 보고, 천년 불심 길로 들어선다.

◆천년불심길 트레킹

저승문턱까지 간 사람도 그 피톤치드의 치유력으로, 다시 이승으로 불러온다는 편백나무 숲을 지난다. 그리고 굴목재로 가는 오름길을 걷는다. 나는 어디에 다다르기 위해 오르고 있는가. 숨을 헐떡거리며 가파른 발걸음 디딜 때마다 나는 나의 존재감을 느낀다. 드디어 굴목재 넘어 아래 보리밥집에 도착한다. 걸어온 길이 힘들었던 만큼 보리밥은 목으로 꿀떡꿀떡 잘도 넘어간다. 식후에는 가마솥에서 끓인 구수한 숭늉 한 사발로 여로를 달랜다. 봇짐을 메고 다시 걷는다. 얼마간 걸어 배도사 대피소를 지난다. 잠시 서서 사방을 둘러본다. 내가 걸어왔던 길에도 나는 없고, 앞으로 걸어갈 길에도 나는 없다. 내가 보이지 않는 저 공간에서 나는 나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다. 겨울 햇살이 샘물처럼, 아이의 눈빛처럼 싱그럽다. 산은 나목으로 꽉 차 있다. 인간은 나무와도 같다. 비록 인간은 움직이고 나무는 정지해 있으나, 생명의 본질은 둘이 아니다. 나무의 물관이 나의 핏줄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안다면 여기서 영원을 맛 볼 수 있다. 좌측으로 길을 잡아 그 산줄기 낙엽 깔린 오솔길 걸어 천자암에 도착한다.

◆천자암과 신목 쌍향수에서 영성을 깨닫고

천자암 뒤쪽에는 그 명성이 자자한 쌍향수가 있다. 처음 그 쌍향수 앞에 섰을 때, 나는 그 신비한 모습과 오후의 햇살이 방광처럼 번지는 그 기이한 현상에 망연자실했다. 나무가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인기척을 듣고 천자암에서 43년간 수도하고 계신다는 가법 주지 스님이 나오셔서 썅향수에 대해 말씀하신다. 1천100년의 나이테를 가졌다는 곱향나무인 두 그루 쌍향수는 신목이라는 것이다. 고려시대 보조국사와 담당국사가 중국 금나라에서 돌아올 때 짚고 온 곱향나무 지팡이를 이곳에 나란히 꽂은 것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 쌍향수가 되었다고 한다. 비가 오는 날이면 마치 용이 용트림하며 하늘로 올라가는 듯하고, 때론 멧돼지 형상으로, 향불의 불꽃으로, 어머니가 자식을 어여삐 여기는 자비의 형상으로 보이기도 한다는 이 쌍향수는 부처님의 후광처럼 경이롭다. 이 나무를 만지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전설도 있다. 이 두 나무는 그만큼 거룩하고 신비스럽게 보여 그 사실을 믿고 싶다. 이제 송광사로 걷는다.

◆승보 사찰 16국사를 배출한 송광사 유적답사

송광사 입구에 흐르는 계곡물 위에 우화각이 있다. 여기서 우화(羽化)는 번데기가 날개 있는 벌레로 바뀌는 것이고, 사람은 날개가 돋아서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된다는 뜻이다. 사람은 자각으로 자신을 바꾸어야 한다. 누에가 성충이 되기까지 세 번의 변신과 네 번의 허물을 벗어야 하듯이. 사람도 깨달음으로 자신의 허울을 벗고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러면 마음은 깃처럼 가벼워지고, 더 진화하면 빛이 되어 하늘을 오를 수 있다. 우화각을 받치고 있는 무지개 돌다리는 ‘능허교’다. ‘모든 것을 비우고 허공을 건너가는 다리’라고 하니, 이 역시 마음을 비운 깨달음으로 건너는 다리다. 송광사 건물의 백미인 우화각과 능허교가 거울같이 맑은 담수에 투영되는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한다. 사문을 지나 절 마당으로 들어간다. 송광사는 고려 말 보조 지눌이 정혜쌍수를 주장하며, 불교의 새로운 기풍을 불러일으킨 역사적인 절이다. 국사가 이곳에 머물 때 휘종이 즉위하면서 절 뒤 송광산을 조계산으로 고쳐 부르게 하고, 선종을 조계종이라 칭하게 되었다. 이 절에는 국보와 보물이 십수 점이나 되며, 열여섯 분의 국사를 배출한 승보사찰이다. 사우를 둘러보고 동구로 나온다. 흘러 들어오는 물에 있는 고기를 승어(僧魚)라 한다. 이것은 보조국사가 죽은 고기를 잡수시고 뒤로는 산 고기를 배설하여 계류에 방생한 것으로, 그 후부터 이 계류에 사는 고기를 승어(僧魚), 즉 중고기라 부른다. 이럭저럭 해가 기울고 산골의 연못에는 초저녁달이 자맥질하고 있다. 그 그림 같은 경치에 찬탄한다. 그러나 물속의 저 달이 저토록 황홀하게 보여도 하늘의 달이 물속으로 온 것이 아니며, 물이 흐리다고 달이 물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다. 하늘의 달이 영원하듯이 내 마음의 달도 영원하다. 마음이 맑고 비면 달이 나타나고 마음이 흐리고 무거우면 달이 사라진다. 그러나 달, 즉 부처는 언제나 내 안에 있다. 이제 주차장까지 가면서 나는 조금 전 연못에 서 본 나의 달을 놓치지 않으려고 이마에 힘줄을 세우고 눈을 부릅뜬다.

글=김찬일<시인·대구힐링트레킹 회장>

사진=김석<대구힐링트레킹 사무국장>

☞ 여행정보

▶트레킹코스: 선암사주차장 - 승선교 - 선암사 - 편백나무 숲- 큰굴목재- 아래 보리밥집 - 배도사 대피소- 천자암- 송광사- 주차장

▶내비게이션 주소: 전남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450

▶주위 볼거리: 낙안읍성, 순천만 갈대밭, 보성 고인돌공원, 서재필 생가지, 벌교 조정래 문학관, 대원사

▶문의: 선암사 (061)754-6250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