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의 TV가이드] MBC ‘나 혼자 산다’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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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24   |  발행일 2017-02-24 제40면   |  수정 2017-02-24
어쩔 수 없이 ‘나 혼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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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적 재능이 탁월한 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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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버보드를 타며 청소하는 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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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가 트렌드가 된 시대에 MBC ‘나 혼자 산다’는 연예계 싱글족들의 일상을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촬영해 허심탄회하게 보여준다.

◆대한민국 1인 가구 520만 시대

‘헐 얼어주글 대선방송ㅠ’ ‘이거 보는 낙으로 일주일 기다리는데ㅠㅠ’ ‘대선주자들 머한다고 아 싫다’ ‘ㅠㅠㅠ 너무해’ ‘결방 슬퍼요 자취생인데 이거 보면 일주일이 힘이 나는데 ㅠㅠㅠ 너무해’ ‘대선방송은 골든 시간대에 피해주세요 힐링 프로그램에 피해주지 말고요.’

아니나 다를까. 포털사이트 TALK방에서는 ‘나 혼자 산다 MBC 매주 금 밤 11:00’ 결방으로 난리가 났다. 속상하기는 H도 마찬가지였다. 아르바이트 때문에 한동안 본방사수를 못했는데 오늘밤은 일을 일찍 마쳐서 잔뜩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치에는 관심도 없다. 어차피 그들만의 리그이고 선거를 앞두고 하는 듣기 좋은 소리는 다 거기서 거기다. 국민들의 마음, 아니 적어도 H같이 10년 넘게 원룸에서 혼자 사는 청년들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즐거움을 주는 건 정치인이 아니라 연예인이다. 그러니 대통령이 누가 된들 무슨 차이가 있으랴. H도 분노의 댓글을 달려다가 마음을 바꿨다. ‘차라리 기분 좋게 다시보기를 선택하자.’

통계청이 발표한 ‘2015 인구주택 총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전체 가구 수는 1천911만. 그 중 1인 가구가 520만으로 전체의 27.2%에 달한다. 그러니 당연히 ‘혼밥, 혼술, 혼놀’이 유행이 될 수밖에 없다. 연예계 역시 대충 3분의 1은 1인 가구란다. 기러기아빠, 주말부부, 독신남녀 등 각기 다른 이유로 싱글족이 된 스타들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 ‘나 혼자 산다’의 기획의도다. 굳이 오락프로그램에 다큐멘터리 기법 촬영(사실 이런 촬영구분도 없다)이니 싱글라이프에 대한 지혜와 혼자 사는 삶에 대한 철학 운운하는 것은 과하다. H가 이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이유는 별다른 것이 아니다. 연예인들도 나와 같이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구나. 그리고 사는 방식도 비슷하구나 하는 동질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다시보기를 했더니 전에는 안보이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네 집 가운데 한 집 ‘나홀로’ 1인 가구
10여년 원룸서 혼자사는 30대 중반 H
연예계 싱글족 삶 ‘나 혼자 산다’ 시청
혼밥·혼술·혼놀 유행 속 또다른 재미

최근 한 가수의 ‘格’이 다른 일상 공개
‘그도 나처럼 외롭구나’ 동병상련보다
넘볼 수 없는 근본적 차이 깨닫고 좌절
‘대통령을 잘 뽑아야 뭐라도 바뀌겠지…’



헨리도 H와 마찬가지로 원룸에 산다. 그런데 평수가 다르다. H의 원룸은 6평(19.8㎡)이고 헨리는 강남 가로수길 주택을 사서 리모델링을 했다. 인테리어 콘셉트가 뉴욕의 로프트(Loft, 창고를 개조한 작업실) 스타일이라고 한다. 실제로 공간 전체를 통으로 터서 주방과 침실, 거실, 작업실이 함께 꾸며진 공간이다. 괜찮다. H는 무한긍정으로 똘똘 뭉친 청년이다. 그 정도로 기가 죽진 않는다. H도 원룸을 그냥 두지는 않았다. 지난 가을 오래된 꽃무늬 벽지 위에 회색 페인트를 칠하고 친구에게 얻은 브루노 마스 브로마이드도 붙여 나름 느낌이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봄이 되면 조금 더 큰 원룸으로 옮길 생각이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멋지게 꾸밀 것이다.

아침에 일어난 헨리가 샤워기를 틀다가 갑자기 나온 뜨거운 물에 깜짝 놀란다. H도 샤워할 때마다 깜짝 놀란다. 더운 물이 나오다가 갑자기 찬물이 나와서 감기가 걸린 적도 있지만 그것도 괜찮다. 군대 있을 때는 한겨울에 찬물샤워를 한 적도 있는데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샤워를 하고 난 헨리가 집안에 있는 큰 식물에 물을 준다. 품종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저 정도 크기면 실내 공기 정화나 습도 조절에 충분할 것 같았다. H의 방에도 5천원짜리 선인장이 있다. 자주 물을 주고 신경 쓰지 못하기 때문에 H에겐 조그만 다육식물이 안성맞춤이다. 저렇게 커봐야 키우지도 못한다. 헨리가 밥을 먹으러 식당엘 간다. 혼자 먹는데 삼계탕과 가자미구이, 제육볶음을 시켜서 다 먹는다. 식성이 좋아서 저걸 다 먹는다고 한다. H의 식성도 만만치 않지만 한 끼 먹는데 저렇게 큰돈을 쓸 수는 없다. 김치찌개에 그냥 공깃밥 추가로 해결하면 된다. 여기까지는 진짜 괜찮았다.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다.

◆어쩔 수 없이 ‘나 혼자 산다’

헨리의 음악적 재능은 탁월했다. 혼자 피아노치고 노래하고 화음을 넣고 바이올린 연주를 했다. 이른바 ‘루프 스테이션’이라고 반복 재생되는 구간에 소리를 쌓아 곡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브루노 마스가 마크 론슨과 함께 부른 ‘Uptown Funk’가 헨리만의 느낌으로 편곡됐다. H도 실용음악과에 가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기타를 잘 쳐서 교내 행사에서는 빠지지 않고 연주했다. 그러나 음악으로는 밥 못 먹고 산다는 부모님의 완고함으로 경영학과를 졸업했는데 경영학으로도 밥 못 먹기는 마찬가지가 됐다. 취업은 점점 어려워지고 H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패스트푸드 체인점이나 커피전문점 아르바이트뿐이었다. 8시간씩 하루도 빠짐없이 일을 해도 한 달 월급은 120만원 수준이다. 월세, 세금, 교통비, 식비 빼면 남는 돈은 거의 없다. H의 나이가 벌써 30대 중반으로 접어드는 데도 결혼을 생각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헨리도 혼자 살아서 외롭다고 한다. 그래서 친구와 영상통화를 자주한단다. 처음 방송을 볼 때는 연예인들도 외롭기는 마찬가지구나 하고 동병상련을 느꼈지만 H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삑삑삑삑, 띠리릭, 갑자기 현관문이 열렸다. “아이고 총각 미안해. 방 좀 구경하자는 분이 계셔서.” 그제야 H는 집주인 아주머니에게 방 비밀번호를 알려줬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H가 일하러 나간 동안 방 구경을 시켜줄 수 없기 때문에 한사코 번호가 있어야 한다고 해 알려줬는데 이 늦은 시각에 이건 아니다 싶었다. “밤 12시가 다 되어가는데….” 그 말에 대꾸도 않은 채 주인 아주머니가 밝은 표정으로 방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아가씨 대학생이랬지? 방은 따뜻해. 뜨거운 물 잘 나오고, 벽지도 깨끗해.” 뜨거운 물 가끔 끊기고 벽지는 H가 칠했고 외풍이 심해서 창문에 ‘방한뽁뽁이’도 발랐는데 얼굴색도 안 바꾸고 저런 말을 하다니. “방이 좀 좁은 거 같아요.” “아이고 학생, 월 30만원에 이런 방 못 구해.” 원룸 구석구석 살펴보던 여학생이 이번에는 H를 흘끔 쳐다봤다. 그 나이 먹도록 아직 이런 방에 살고 있냐는 듯이.

불청객들이 머물다간 10분이 H에겐 10년만큼이나 길게 느껴졌다. 허기가 졌다. 생각해보니 아직 저녁도 먹지 못했다. 컵라면에 끓는 물을 부었다. 꺼진 텔레비전 모니터에 허겁지겁 설익은 라면을 먹는 H가 비쳤다. 그 모습이 너무 가여웠다. 울컥 설움이 터졌다. 김치도 없이 먹는데 컵라면이 짜다. 대체 H는 무슨 잘못을 했을까? 남들 만큼 공부하고 남들 만큼 노력했는 데도 삶은 H에게 너무 어렵다. 이건 혹시 내 잘못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잘못이 아닐까? 무한긍정청년 H는 그날 밤 처음으로 기성세대와 정치인을 원망했다. 차근차근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를 치워버린 사회에서 H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가 다시 컴퓨터 앞에 앉은 H는 포털사이트 TALK방에 댓글을 쓰기 시작했다. ‘결방은 슬프지만 원룸생활은 더 슬픕니다. 대통령을 잘 뽑아야 이 사회가 뭐라도 바뀌지 않을까요?’ 방송PD 8tardi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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