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전영잡감) 2.0] 영화배급사 ‘시네마달’과 김기춘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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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24   |  발행일 2017-02-24 제43면   |  수정 2017-02-24
세월호 참사에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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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의 다큐멘터리 전문 배급사인 시네마달이 배급한 안해룡 감독의 세월호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김진열 감독의 ‘나쁜 나라’, 김동빈 감독의 ‘업사이드 다운’(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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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의 다큐 전문배급사 시네마달
다이빙벨·나쁜 나라·업사이드 다운 등
세월호 관련 다큐 잇단 배급후 불이익

김기춘의 내사 지시 실제 정황 드러나
조윤선 前 장관은 ‘노쇼’수법 관람 방해
블랙리스트 탄압 직격탄에 폐업위기
각계서 ‘시네마달 구하기’ 펀딩 한창


지난 7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의해 전격 기소되었다. 지난달 21일 두 사람이 구속된 지 18일 만이다. 이 둘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명단을 만들어 이들에 대해 정부 보조금이 지급되지 않도록 담당 직원들의 업무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리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등으로 하여금 문화단체에 보조금이 지급되지 않도록 강요한 혐의 또한 받고 있다. 많은 국민이 분노한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위증한 혐의도 받고 있다. 특히 김기춘 전 실장은 최규학 기획조정실장을 포함한 문체부 실장급 3명에게 사직을 강요했다는 직권남용 및 강요 혐의가 적용됐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2014년 청와대가 진보성향 인사들과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인사들 1만여명의 명단을 작성해 이들에 대한 지원 등을 배제하는 불이익을 줬다는 것이다. 특검은 블랙리스트를 가리켜 “우리 헌법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한 중대범죄”로 규정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22조는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 가운데 단연 나의 이목을 끈 것은 바로 김기춘 전 실장이 한 영화배급사를 직접 지목해 몰래 조사를 지시했다는 기록이 나왔다는 것이다. 바로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와 다큐멘터리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의 안해룡 감독이 연출한 최초의 세월호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을 배급한 시네마달이다.

시네마달은 다큐멘터리 작품을 국내외로 배급하는 국내 유일의 다큐멘터리 전문 배급사이다. 2008년 여름 설립된 후 현재까지 국내외 작품을 통틀어 250편이 넘는 작품을 배급하고 있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작품은 물론 지난 20여년간 국내에서 만들어진 독립다큐멘터리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하여 한국 독립다큐멘터리의 역사와 전통을 세우는 데 일조하고 있다. 멀티플렉스들의 소모적인 블록버스터 개봉 경쟁과 헛것 같은 천만 영화 신화 속에서 흥행 여부와는 무관하게 독립영화와 예술영화 같은 다양성 영화의 존재 이유에 대해 뼛속 깊이 인식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거의 유일한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세상에 알리고 관련자들의 혐의를 입증하는 결정적인 단서가 된 고(故)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일지에는 ‘다이빙벨’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2014년 10월 ‘長(장), 다이빙벨 상영-대관료 등 자금원 추적-실체 폭로’ ‘시네마달 內査(내사)-다이빙벨 관련’이란 메모가 적혀있었다. ‘장’은 김기춘 전 실장을 의미한다. 이후 시네마달이 ‘다이빙벨’에 이어 김진열 감독의 ‘나쁜 나라’, 김동빈 감독의 ‘업사이드 다운’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세월호 다큐멘터리들을 배급하자 국정원과 검찰, 경찰이 시네마달 직원들의 통신자료를 조회하고 세무조사까지 실시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같은 기간 시네마달이 배급한 다큐멘터리들을 개봉 지원작에서 철저히 배제했다. 상업영화에 비해 늘 어려운 환경 속에서 개봉하고 배급하는 독립영화·예술영화들의 상황을 볼 때, 영화진흥위원회가 공모하는 ‘다양성 영화 개봉 지원’에서 시네마달 배급 영화가 지속적으로 탈락하는 상황은 큰 타격일 수밖에 없었다.

최근 특검은 지난달 30일 구속기소한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서병수 부산시장에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이빙벨’이 상영되지 못하도록 해 달라”고 요구했다는 사실과 문체부 관계자에게 “김기춘 전 실장이 부산국제영화제 예산을 삭감하라고 지시했다”는 진술을 추가로 확보했다.

실제 ‘다이빙벨’ 상영 다음해인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 예산이 14억6천만원에서 8억원으로 삭감됐다.

이와 함께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이던 조윤선 전 장관이 ‘다이빙벨’ 상영관의 전 좌석 관람권을 일괄 매입해 일반 관객이 관람하지 못하도록 지시도 했다고 한다. 헌정 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 탄핵 결정을 이끌어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드러난 것처럼, 결과적으로 시네마달이 현 정부의 역린(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을 지속적으로 건드린 셈이었다.

그들의 의도대로 시네마달은 폐업 위기에 빠졌다. 하지만 실의에 빠져만 있을 순 없다. 한국독립영화협회를 비롯한 독립영화단체,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감독들이 ‘시네마달 지키기 공동연대’를 결성했다. 이들은 지난 10일 1억원을 목표로 ‘블랙리스트 배급사 시네마달을 구하라’ 펀딩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펀딩을 통해 모인 후원금은 아직 개봉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는 시네마달 2017년 배급작들의 개봉 비용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나 역시 그런 이들 가운데 하나다. 이명박정부가 들어서면서 휴지기를 갖고 있는 대구평화영화제를 비롯해 이런저런 지역의 작은 영화제나 공동체 상영회를 기획할 때마다 시네마달의 도움을 받았다. 엄선된 시네마들의 배급작들은 늘 주요 상영작으로 선정되었다. 그만큼 좋은 작품들이 많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유신 시절 이른바 대중가요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 김민기의 ‘아침이슬’, 신중현의 ‘미인’, 송창식의 ‘왜 불러’ 같은 곡들이 말도 되지 않는 이런저런 이유로 방송과 공연에서 금지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블랙리스트 근원을 찾는다면 그 어디쯤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웃긴 게 박근혜정부의 4대 국정기조 가운데 하나가 ‘문화융성’이라는 거다. 블랙리스트가 존재하는 한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임은 자명하다.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이렇게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지만 시네마달이 사라진다는 건 그런 그들이 이겼다는 게 되는 것이다. 이대로 시네마달이 속절없이 문을 닫는 걸 무력하게 지켜만 본다면 오래 부끄러울 것이다. 그런 부끄러운 역사를 남기고 싶지 않다.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의 동참을 바란다. 블랙리스트 영화사 시네마달 구하기 펀딩 참여(http://storyfunding.daum.net/project/13011)는 4월25일까지라고 한다.

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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