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안동 지나 청량산에 들다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7-02-27 07:45  |  수정 2017-02-27 07:45  |  발행일 2017-02-27 제15면
[행복한 교육] 안동 지나 청량산에 들다

대구 대동초등 통폐합이 시의회에서 통과되는 중요한 순간을 남겨두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가족을 위해 고속도로를 달려 차를 몰았다. 남안동을 빠져나오면 맨 먼저 조탑마을 도토리 예배당 종탑이 보이고 그 너머 빌벵이 언덕 아래 아주 작은 빨간 지붕이 보인다. 강아지똥 권정생 선생이 평생을 작고 가난한 생명들을 사랑하며 작고 가난한 이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평화를 꿈꾸며 살던 마을이다. 한티고개를 넘어 한국정신문화수도 대문을 지나면 그 옛날의 낙동강이 아니어서 아쉽지만 안동대교를 건넌다. 안동을 들어가면 안동소주, 안동찜닭 간판만 봐도 침이 꼴깍 넘어간다. 시내를 지나면 목성동성당을 만난다. 잠시 기쁘고 떳떳하게 살아라 말씀하시는 유쾌통쾌상쾌한 두봉 주교를 생각한다. 안동 지역에 와서 60년을 가톨릭 사제로 살면서 유림들과도 올바름과 정직으로 화이부동 하셨던 대단한 어른이다.

제비원 부처님을 보고 봉화 쪽으로 새로 닦인 길가에 작은 역동 우탁 선생의 유허 비각이 있다. 우탁 선생은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 했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라는 탄로가를 쓰신 분이다. 고려 말 충선왕 때 도끼상소를 했던 기개와 절개의 학자이다. 퇴계 이황이 가장 존경한 분이었다고 한다. 내가 사는 마을에는 임란 의병장 우배선 선생이 있고, 3·1만세운동 뒤 심산 김창숙 선생이 주도했던 파리장서사건에도 적극 동참했던 단양우씨 집성촌이 있다. 왜 우병우는 이런 조상들의 기개를 배우지 못했을까?

좁아진 길로 들어서면 넓은 안동호를 따라 도산서원을 만나고 이내 퇴계종택에 들어선다. 낮은 산모퉁이에 평범한 안동의 정신적 지주인 이황 선생이 누워계신다. 참 소박하게 사셨구나 생각하는 사이 이육사 선생이 나타난다. 늘 이상화, 이육사가 혼돈되었던 어린 시절 읊었던 시가 떠오른다. 광야에서 기다렸던 초인은 지금 촛불혁명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여러 고택들을 지나면 차는 이제 그만 강에 닿고 이제야 유려하게 흐르는 낙동강의 자연미를 만난다. 왕모산을 보며 공민왕의 개혁을 떠올린다. 강둑을 따라가면 더는 차가 갈 수 없는 예던길을 만난다. “고인(古人)도 날 보고 나도 고인 뵈 고인을 뵈도 녀던 길 알페 잇네 녀던 길 알페 잇거든 아니 녀고 엇뎔고.” 퇴계 선생이 청량산을 오가며 생각을 다듬었던 그 옛길 멀리 퇴계의 벗 농암 이현보 선생이 계신다.

다시 길을 돌아 나오면 좁아진 낙동강의 상류가 나타난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청량산이 비구름에 쌓여 무릉이 되어 나타난다. 식당에 앉아 청량산을 바라보며 간고등어와 산나물로 밥 한 공기 뚝딱 해치우니 이제 배도 부르고 지친 심신에 한 숟갈 기운이 담긴다. 돌아오는 길 국학진흥원에 들러 이 땅 지식인들의 정신을 채웠던 ‘사람의 길’을 다시 생각하며 비우고 배워본다. 측은, 수오, 사양, 시비지심이 어떻게 인의예지로 열매 맺게 할지 새겨본다. 왜 산과 강의 멋이 어우러져 비로소 사람의 길이 되는지 그 이치를 생각해본다. 태어나 자라고 혼인하고 자식 낳고 세상을 개혁하러 나가고 그러다 상처를 입고 밀려나고, 이젠 늙음을 걱정하는 삶의 한살이를 되돌아본다. 대구에서 안동을 지나 청량산 가는 길에서 나는 그렇게 나를 새롭게 곧추세운다.

지난 한 달 넘게 우리는 작은 학교를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지만 다시 실패했다. 다행히 바위에 계란 치기 같았던 상황도 공정한 언론의 보도로 알려졌고, 시의회는 토론을 통해 결론을 내는 의회사의 변곡점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어린 학생들에게는 상처가 남았다. 아이들은 사라질 학교 운동장에 커다란 상처를 새겨두었다고 한다. 이제 다시 새 학기가 시작된다. 대동초등 아이들의 눈물과 상처가 다 씻어지기를 기도한다. 빛은 어둠을 이기고, 진실은 거짓을 이기고, 우리는 결코 지지 않는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