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영의 즐거운 글쓰기] 샴쌍둥이와 같은 예술의 영역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7-03-06 07:55  |  수정 2017-03-06 07:55  |  발행일 2017-03-06 제18면
[박미영의 즐거운 글쓰기] 샴쌍둥이와 같은 예술의 영역

‘소녀는 왼쪽 어깨 너머로 당신을 바라본다. 옷은 국적을 알 수 없고, 머리에는 귀부인도 하녀도 아닌 여자들이 그랬듯이 천을 두르고 있다. 그녀는 누구일까? 소녀를 휘도는 모든 빛을 그러모아 매듭짓는 저 진주 귀고리는 어디에서 났을까? 보이지 않는 귀에도 진주는 걸려 있을까? 지금 그녀는 웃으려는 것일까 아니면 눈물을 삼키고 있는 것일까?

베일에 싸인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그림 속 소녀는 대답하지 않는다. 소녀는 어떤 가설의 그물에도 걸리지 않고 수많은 감정의 틈바구니에서 기적적인 균형을 유지하며 미소짓는 데에 성공한다.

이미지는 자기를 해명하지 않는다. 변명도 소명도 하지 않는다. ‘진주 귀고리 소녀’를 쓴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그 일을 문학의 몫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예술가의 영혼을 지닌 어린 하녀와 화가 사이의 드라마를 말없이 남겨진 초상화의 세부로부터 거꾸로 추리했다. 놀라운 시도는 아니다. 언제나 왼쪽 창에서 스며드는 백포도주 같은 햇빛과 문설주가 그리는 테두리 안에 들어앉아 명상 같은 노동에 몰입해 있는 베르메르의 여인들은 우리를 조바심치게 만든다(베르메르의 초상화에 기초한 연작 단막극이 기획된다 해도 그럴 법하다).

1664년 델프트의 소녀 그리트는 아버지가 사고로 눈이 멀자 하녀로 나선다. 그녀가 모실 주인은 최고의 화가 베르메르. 사위의 그림을 거간하는 여장부 마리아 틴스와 히스테리컬한 안주인 카타리나, 여섯 아이와 자부심 강한 하녀 타네커가 소녀를 맞이한다.

식구들에게 성역과 같은 베르메르의 화실 청소를 맡은 그리트는 바다가 달에 끌리듯 예술의 아름다움에 눈뜬다(원작에서 베르메르는, 눈먼 아버지의 물건을 제자리에 두는 버릇과 색의 조화를 의식하며 야채를 써는 색감이 마음에 들어 그리트를 선택한다).

베르메르도 그리트 안의 작은 화가를 알아본다. 안주인이 질투로 고통받을 무렵 화가의 부유한 후원자이자 호색한인 반 라이번이 그리트에게 흑심을 품고, 그녀와 여생을 함께하려는 푸줏간 집 아들 피터는 그리트에게 딴 세상을 꿈꾸지 말라고 충고한다.’ (-김혜리, ‘상상으로 복원된 17세기 초상화 속 소녀의 목소리. 예술과 사랑의 비밀을 누설하다’ 일부)

밝히건대 저는 수많은 영화와 그림과 음악 그리고 신문기사, 타인의 글들을 보고 읽고 들으며 글을 씁니다. 아니, 글을 쓰기 위해 그 많은 시간들을 보냅니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모든 예술행위가 이미 융합·통섭이란 말이 인구에 회자되기 전부터 등이 붙은 샴쌍둥이임을 직관하고 있을 겁니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