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제3회 밥상머리교육 우수사례 공모전 - 동상 원현숙씨 가족 수기

  • 손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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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06 07:57  |  수정 2017-03-06 07:58  |  발행일 2017-03-06 제18면
“온 식구가 함께 아침밥 먹으며 건강지키고 인성키워요”
20170306
원현숙씨 가족이 지난달 28일 오전 밥상머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원현숙씨 가족은 온 식구가 함께 아침밥을 먹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밥상머리에서 아이들은 학교 생활 이야기를 주고받고, 엄마·아빠는 평소 해주고 싶은 말이나 부탁을 자연스레 합니다. 아침 식사는 가족의 건강을 지켜주는 것은 물론, 인성교육을 하는 가장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가족간 정서를 공유하는 시간
아이들과 수시로 눈맞춤 하면서
평소 하고 싶은 이야기 나눠


#1. 저희 집엔 아이가 넷입니다. 넷이라서 네 배의 행복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하나보다는 둘이 낫고, 둘보다는 셋이 균형감 있고, 셋보다는 넷이 풍성하답니다.

첫째는 스무 살, 둘째는 열아홉 살, 셋째는 열여섯 살, 그리고 막내는 열 살입니다. 네 아이를 키우면서 웃을 일도 많았고 몰래 눈물 훔칠 때도 많았지요. 무엇보다 사춘기 아이 셋을 겪으면서 허공을 향해 한숨지었던 수많은 날들이 있었지요. 그래도 저희 아이들은 사춘기 시절을 잘 보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길러온 성품 훈련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아이들이 자기 고집이 생기고 자립심이 생겨날 즈음에 저는 아이들을 늘 데리고 다녔습니다. 시장을 갈 때나 마트를 갈 때, 집 앞 슈퍼를 갈 때도 늘 셋을 데리고 다녔지요. 그럴때마다 작은 우유를 아이들 손에 하나씩 쥐어주었습니다.

“엄마, 우유 샀어요, 큰 거요. 그런데 이건 왜 사요?” 큰아이가 제법 컸다고 자기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응, 사용할 곳이 있지.” 저는 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셋째를 업고 골목으로 걸어갑니다. “얘들아, 집에 가는 길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시면 너희들이 들고 있는 우유를 드려라.”

우리는 돌아오는 골목에서 리어카를 세워두고 종이상자를 정리하는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큰아이가 쭈뼛쭈뼛 쉽게 다가서지 못하고 있을 때 둘째가 쪼르르 달려가 불쑥 우유를 내밉니다. “할아버지, 이거 드세요. 우리 엄마가 드리래요.” 갑작스러운 일에 할아버지가 당황하실 것은 분명합니다. “할아버지, 일하다가 목마르면 우유 드시라고 샀습니더.” “아이고, 이거 받아도 될란가?”

지켜보던 첫째도 놀이터에 앉아 계시는 할머니를 발견하고는 용기 내 걸어가 인사를 하며 우유를 내밀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희 아이들은 슈퍼에 갈 때마다 우유를 하나씩 더 사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대학생이 된 큰애는 아직도 자기 물품을 사고, 꼭 우유나 빵 하나를 더 사서 옵니다. 신기한 것은 그것을 한 번도 집으로 가져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유와 빵의 주인은 꼭 앉아 계셨지요. 나눔과 섬김이 아이들 삶 속에 배어나도록 어릴 때부터 기회를 마련해 준 것은 지금도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3. 막내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됩니다. 하루는 함께 공원 벤치에 앉아 놀고 있는데, 아이들 무리 중에서 한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를 제법 세게 발로 차고 도망갑니다. 남자아이는 달려가려다 포기하고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막내는 그 아이가 마음에 걸렸는지 노는 것을 멈추고 다가갑니다. 맞은 아이의 허벅지를 만져 주었습니다.

“야, 괜찮아? 아프겠다. 요즘 여자아이들은 너무 세단 말이야. 그치?” 남자아이가 놀란 눈치로 저희 막내를 쳐다봤습니다. “너, 나 알아?” 이에 아들 녀석은 “아니, 모르는데. 너는 이름이 뭐야? 난 3학년이고 이름이 OO야. 우리 같이 놀래?” 처음 만난 두 녀석은 금세 같이 놀기 시작했습니다. 흙놀이도 하고, 주운 솔방울들을 모아 게임을 즐깁니다.

#4. 저희 가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규칙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예의 바른 생활하기. 둘째는 아침밥 꼭 먹고 학교 가기. 첫째 규칙을 지키지 못했을 때 회초리를 듭니다. 하지만 회초리는 그리 오래가지 않아 골동품이 됐습니다.

그리고 둘째 규칙을 지키지 못하면 학교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너무 심하다 싶은 생각이 들긴 했지만 몸의 건강도 중요하기 때문에 아침밥을 꼭 먹이려고 했습니다. 아이들마다 지각을 한 번씩 하고 불이익을 경험하고 나서부터 아침을 꼭 먹고 학교로 향하게 됐습니다. 아침밥을 꼭 먹이는 여러 가지 이유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할머니, 아빠, 동생들과 함께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집에 오는 시간이 다 달라서 저녁 먹는 시간도 띄엄띄엄 다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아침만큼은 온 식구가 모여서 먹는 습관을 들였습니다. 그 대신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은 한 가지씩 꼭 넣어서 아침밥상을 차렸습니다.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당부도 하고 부탁사항도 전달하는 짧지만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아침밥상은 몸의 양식을 채우는 것일 뿐만 아니라 성숙해져 가야 할 정서를 공유하는 소중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아침밥 하는 것이 귀찮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과 눈맞춤 하고 엄마·아빠가 살아온 이야기도 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을 놓치기 싫어 이른 새벽을 깨웁니다. 칙칙칙~~ 압력밥솥 돌아가는 소리에 아이들이 하나둘씩 깨어납니다. 오늘 하루도 축제입니다. 기쁨과 슬픔이 함께하는 축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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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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