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적전분열의 대한민국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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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10   |  발행일 2017-03-10 제23면   |  수정 2017-03-10
[조정래 칼럼] 적전분열의 대한민국
논설실장

탄핵 이후가 두렵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인용되든 기각되든, 촛불과 태극기로 대표되는 탄핵 찬반 세력들의 시위가 더욱 격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레짐작이고 기우라면 천만다행이겠지만, 촛불과 태극기 사이 갈등의 골이 건너뛸 수 없을 만큼 넓고 깊다. 나라가 두 동강 나고, 종국에는 결딴이 나지 않을까 겁난다. 우국지사들은 한목소리로 승복을 말하고 있지만, 그 가능성은 낮고 백약 무효의 속수무책인 난국이다. 갈등과 분열의 징조는 숙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폭발의 임계치를 향해 치달린다. 공멸의 치킨 게임을 멈추게 할 신의 한 수가 아쉽다.

나라를 둘러싼 국제정세, 특히 동북아는 미·중·일·러 등 세계 열강들의 각축장이 된 지 오래다. 저마다 아시아의 질서 재편 과정에서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패권다툼을 하느라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는 게 확연한데 우리만 한가하게 집안싸움으로 날밤이 모자랄 지경이다. 외환(外患)이 닥치면 내우(內憂)는 중단하거나 덮는 게 당연한데, 이런 상식마저 작동되지 않으니 망조가 들지 않고서야 이게 어디 나라냐는 한탄이 나올 수밖에 없다. 장삼이사에서부터 대권주자에 이르기까지 지위고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정신줄을 놓고 진영논리에 미쳐 돌아가니 이런 적전분열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

작금의 지리멸렬은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의 그것과 너무나 흡사하다. 병자호란, 국가 존망의 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사대부 관료들의 무능과 무사안일을 보라. 후금의 남한산성 공략이 중국의 사드 보복과 다를 게 무언가. 외교·안보가 바람 앞의 등불인데 국권확립보다 정권쟁취욕에 눈이 어두우니 삼전도의 굴욕을 되풀이하지 않을 도리가 하늘에서 떨어지기라도 한단 말인가. 김훈은 소설 들머리 주석을 통해 역사적 인물과 사건 등이 소설로 읽히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독자들이 보기에는 너무나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고,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의 위정자들의 실제 모습들보다 더 사실적이다. 그들의 탁상공론에 던지는 비분강개는 욕지기가 안성맞춤이다. 개애~X X들.

롯데백화점 광주점 앞에서 사드 반대시위를 벌인 사람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인가. 중국인들이 아니고 매국노들이 아니라면 이 무슨 황당한 시츄에이션인 것인가. ‘롯데는 사드 부지 제공을 철회하라’는 구호를 보며 촛불민심의 왜곡과 변질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롯데는 사드 배치의 최대 피해자로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보상을 받아야 할 기업이다. ‘이게 나라냐’는 분노가 천만 촛불을 켜게 했는데, 이제 ‘이게 국민이냐’는 자탄이 저절로 나온다. 이러려고 대한민국 국민이 됐나.

역사는 되풀이되고, 과거의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했다. 임진왜란의 참화가 있은 지 채 40년도 지나지 않아 오랑캐의 말발굽에 국토를 유린당한 건 반성과 성찰, 그리고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고 백성들이 당한 고통을 망각했기에 자초한 국란이었다. 작금 대한민국의 내우외환은 촛불과 태극기로 나뉜 두 진영 중 어느 일방의 승리로 귀결될 수 없다. 두 진영 간의 대접전을 통한 대타협이 필요한데, 딱히 그럴 만한 여유도 시간도 부족하다. 일본을 몰아내기 위한 중국의 국공합작이나 노예제 찬반을 둘러싼 이데올로기 통일을 위한 미국의 남북전쟁 등과 같은, 남북통일에 앞선 남남통일이 더 급선무로 보인다면 너무 앞서 나간 것일까. 우리의 분열과 갈등이 새로운 질서를 태동시키기 위해 치러야 하는 기회비용이라면 얼마나 다행스러울까.

탄핵 이후 국민행동이 중요하다. 탄핵을 전후한 첫 한 주는 국가의 운명을 가를 분수령이 될 터이고, 이 중차대한 시국에 국민 행동지침은 촛불과 태극기 둘 다를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한다. 서로 다름과 차이를 용인하지 못하는 것은 공감능력의 부족 탓이 틀림없다. 언제까지 종북 등의 철 지난 이념 싸움으로 날을 지새우고 국가의 시간을 좀먹을 것인가. 어린 시절 들었던 ‘미국 믿지말고, 소련에 속지마라, 일본 일어난다’는 거리의 동요가 지금도 맞춤하다. 중국까지 호시탐탐 가세하니, 국익 우선의 민족적 자강불식(自强不息)이 역사적 교훈이자 소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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