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달천 올뱅이와 아욱의 환상 조합…“술꾼 치고 이 집서 속풀이 안한 이 없어”

  • 이춘호
  • |
  • 입력 2017-03-10   |  발행일 2017-03-10 제35면   |  수정 2017-03-10
해장국식 올뱅이국 원조 김숙제 사장
고수의 절묘한 ‘속간’으로 39년 전통
맑은 달천 올뱅이와 아욱의 환상 조합…“술꾼 치고 이 집서 속풀이 안한 이 없어”
들깻가루가 들어간 대구식 고디탕과 확연히 다른 맛을 보이는 충주식 올뱅이국.

충주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운정식당’의 올뱅이국의 맛은 대구에서 출발할 때부터 기대됐다. 평소 대구식 고디탕에 대한 추억 때문이다. 충주 올뱅이국은 대구의 따로국밥이나 진배없었다.

충주농협 주차장 옆에 있는 그 식당 벽은 이명박 전 대통령 등 전국 명사들의 기념촬영 사진으로 도배된 상태. 친정어머니(황간난이)로부터 요리를 배운 김숙제 사장은 78년 백반집으로 출발했다.

2년 뒤 주당 단골의 강력한 권유로 충주에서 맨 먼저 해장국식 올뱅이국을 선보인다. 충주 해장국의 신지평이었다. 충주 술꾼 치고 이 집에서 속풀이를 안 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운정식당 때문에 식당 근처가 ‘해장국촌’으로 변한다. 한창때는 금오·금자·전원·자연태현식당 등이 운집해 있었지만 지금은 운정식당밖에 없다.

한 그릇을 시켜 먹어봤다. 순식간에 국물까지 말끔히 비웠다.

앞서 여러 식당을 돌아 배가 부른 상태인데도 이 집 올뱅이국은 또 다른 식욕을 발동시킨다. 맑은 토장에 매운탕의 기운이 스며들고, 시래깃국과 일본식 미소시루의 맛이 합쳐져 있었다. 재료와 육수 그리고 간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뤘다. 그게 절정의 맛을 향해 한 소리를 낸다. 형언할 수 없는 국물의 ‘간’. 매운맛과 짠맛을 이렇게 잘 다스리긴 어렵다. 대다수 ‘겉간’에서 그친다. 그건 대충 흉내낼 수 있다. 하지만 음악의 ‘그루브(Groove)’처럼 내면으로만 감지되는 ‘속간’, 이건 일반 요리술로 터득될 수 없다. 식당이 천직이라 여기는 어떤 고집쟁이 오너셰프만이 획득할 수 있는 경지랄까.

들깻가루가 흥건한 대구식 고디탕은 명함을 내밀기 힘들다. 나도 모르게 여든의 주인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김씨가 응사한다.

“여러 조각으로 부서진 올뱅이가 있을 거야. 그건 100% 냉동 중국산이야. 공장에서 만든 된장을 사용하는데 그럼 끓고 난 뒤 떫은맛이 생겨 못 먹어. 평범한 채소 국처럼 보여도 평생을 걸어야 제대로 된 맛을 낼 수 있는 거지.”

대구에선 부추를 많이 넣는데 이 집은 오직 아욱만을 고집한다. 별도 육수는 없다. 오직 올뱅이 삶은 물을 육수로 사용한다. 그 물에 2년 숙성시킨 수제 된장·고추장을 적당량 섞어 끓인다. ‘적당량’은 비법이 아니다. 직감이고 육감이다. 터득이지 배워서 되는 건 아니다. 어릴 적 친정어머니가 달천에서 잡아 온 올뱅이로 끓여 주시던 그 방식대로다. 늦가을이 되면 다음 동절기를 대비해 삶은 올뱅이를 냉동보관해 놓고 사용한다. 지금은 딸 정은옥씨와 함께 식당을 꾸려간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