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깻가루가 들어간 대구식 고디탕과 확연히 다른 맛을 보이는 충주식 올뱅이국. |
충주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운정식당’의 올뱅이국의 맛은 대구에서 출발할 때부터 기대됐다. 평소 대구식 고디탕에 대한 추억 때문이다. 충주 올뱅이국은 대구의 따로국밥이나 진배없었다.
충주농협 주차장 옆에 있는 그 식당 벽은 이명박 전 대통령 등 전국 명사들의 기념촬영 사진으로 도배된 상태. 친정어머니(황간난이)로부터 요리를 배운 김숙제 사장은 78년 백반집으로 출발했다.
2년 뒤 주당 단골의 강력한 권유로 충주에서 맨 먼저 해장국식 올뱅이국을 선보인다. 충주 해장국의 신지평이었다. 충주 술꾼 치고 이 집에서 속풀이를 안 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운정식당 때문에 식당 근처가 ‘해장국촌’으로 변한다. 한창때는 금오·금자·전원·자연태현식당 등이 운집해 있었지만 지금은 운정식당밖에 없다.
한 그릇을 시켜 먹어봤다. 순식간에 국물까지 말끔히 비웠다.
앞서 여러 식당을 돌아 배가 부른 상태인데도 이 집 올뱅이국은 또 다른 식욕을 발동시킨다. 맑은 토장에 매운탕의 기운이 스며들고, 시래깃국과 일본식 미소시루의 맛이 합쳐져 있었다. 재료와 육수 그리고 간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뤘다. 그게 절정의 맛을 향해 한 소리를 낸다. 형언할 수 없는 국물의 ‘간’. 매운맛과 짠맛을 이렇게 잘 다스리긴 어렵다. 대다수 ‘겉간’에서 그친다. 그건 대충 흉내낼 수 있다. 하지만 음악의 ‘그루브(Groove)’처럼 내면으로만 감지되는 ‘속간’, 이건 일반 요리술로 터득될 수 없다. 식당이 천직이라 여기는 어떤 고집쟁이 오너셰프만이 획득할 수 있는 경지랄까.
들깻가루가 흥건한 대구식 고디탕은 명함을 내밀기 힘들다. 나도 모르게 여든의 주인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김씨가 응사한다.
“여러 조각으로 부서진 올뱅이가 있을 거야. 그건 100% 냉동 중국산이야. 공장에서 만든 된장을 사용하는데 그럼 끓고 난 뒤 떫은맛이 생겨 못 먹어. 평범한 채소 국처럼 보여도 평생을 걸어야 제대로 된 맛을 낼 수 있는 거지.”
대구에선 부추를 많이 넣는데 이 집은 오직 아욱만을 고집한다. 별도 육수는 없다. 오직 올뱅이 삶은 물을 육수로 사용한다. 그 물에 2년 숙성시킨 수제 된장·고추장을 적당량 섞어 끓인다. ‘적당량’은 비법이 아니다. 직감이고 육감이다. 터득이지 배워서 되는 건 아니다. 어릴 적 친정어머니가 달천에서 잡아 온 올뱅이로 끓여 주시던 그 방식대로다. 늦가을이 되면 다음 동절기를 대비해 삶은 올뱅이를 냉동보관해 놓고 사용한다. 지금은 딸 정은옥씨와 함께 식당을 꾸려간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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