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강원 동해 추암해변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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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10   |  발행일 2017-03-10 제38면   |  수정 2017-03-10
격렬한 바다에 바위들 세워 두고 뒷짐 진 정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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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암 해변의 해암정과 석회암 바위군락. 한명회는 이 일대를 능파대라 이름 지었다.

바위는 진시황의 병사처럼 기괴한 부동이다. 파도는 화난 짐승처럼 달려들지만 바위에 부딪혀 눈처럼 흩어진다. 거듭 부딪히고 또 흩어지는, 지난하고 처절한 전쟁이다. 심해처럼 아득하고 몸살처럼 버겁다. 저 바위들 세워 두고 정자 하나 앉아있다. 요요하게도 앉아 있다. 눈앞의 사투에도 눈 하나 깜짝 않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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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암 촛대바위. 애국가 영상에 등장하는 바위로 아름다운 일출로 이름나 있다.

◆남한산성의 정동, 추암 촛대바위

동해에 들자마자 거대한 산업단지 안쪽을 향해 난 추암 이정표를 본다. 너른 도로를 황량한 바람과 함께 달리며 정말 이 길이 바다에 닿을까 갸웃한다. 황망한 실패를 몇 번, 어쩐지 자신감 넘치는 승용차를 뒤쫓아 추암역을 발견한다. 승용차는 추암역 좁은 굴다리 속으로 쑥 사라졌다. 아슬아슬한 너비, 큰 차는 어림없겠다.

굴다리를 통과하면 곧바로 주차장과 모래사장과 바다와 바다로 난 좁은 물길과 프로방스풍의 가겟집들과 소나무 숲이 숱 적게 우거진 바위산이 한눈에 보인다. 모래사장 위에 길게 놓인 다리를 건너 바위산을 오른다. 2분도 채 안 돼 바닷바람이 강타해 오고 축축해진 속눈썹 속으로 형제바위가 들어온다. 전설이 있을 법도 한데 아무런 안내가 없다. 한발 한발 어렵게 나아가자 곧 정상. 전망대와 ‘추암(楸岩) 촛대바위가 남한산성의 정동쪽’이라는 표지석이 자리한다.

발아래는 죽창을 심어놓은 트랩 같은 바다다. 거기에 ET의 가늘고 긴 손가락 같은 추암 촛대바위가 서있다. 애국가 영상에 등장해 유명한 바위다. 1900년대까지는 바위 3개가 있었고, 그중 2개가 벼락에 부러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바위는 이 바닷가에 살던 남자였다 한다. 그는 정실을 두고 소실을 들였는데, 여인들의 투기에 노한 하늘이 벼락을 내려 남자 혼자만이 남았다 한다. 바위는 위태롭고 외롭다.

이 바위산은 원래 독립된 섬이었으나 점차 사빈이 발달해 육지와 연결되었다 한다. 산 위에는 용의 묘가 있다고 전해지며 가뭄이 들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고 한다. 지난 50여 년간은 군 경계 철책에 둘러져 있었다. 철책이 철거된 것은 지난해다. 울타리와 나무 데크도 새로 설치했다. 지금도 군사보호구역으로 일부 출입제한 구역이 있지만 구석구석 돌아보기에 모자람이 없다. 다만 너울이 심한 날이면 몸 가누기 어려워 발밑이 두렵다.


추암역 좁은 굴다리 지나면 바로 바다

모래사장 위 다리 건너 오르는 바위산

원래 섬이던 게 사빈 발달해 육지와 연결

50여 년 軍 철책 둘러져 있다 작년 철거

촛대바위는 흡사 죽창을 심어놓은 듯

석회암 돌숲 뒤 4면이 다 門인 해암정

시택·송강·우암이 쓴 정면 현판 셋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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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문인 해암정. 심지황, 송시열, 정철의 현판이 걸렸다.

◆바다와 바위의 정자 해암정

촛대바위에서 산책로를 따라 조금 내려가자 숨이 멎는다. 너울에 온몸이 젖도록 꼼짝을 못한다. 엄청난 바위들의 군집이다. 돌의 숲이다. 시립해 있는 장엄들이다. 으르릉대는 거친 파도의 진격에도 꼼짝 않고 경계선 병사들이다. 촛대바위에게는 미안하지만 사랑은 변한다.

추암 일대의 기반암은 동해안에서는 극히 드문 석회암이라 한다. 파도와 바람에 풍화층이 제거되면 기반암이 드러나는데, 그렇게 드러난 원추형의 석회암 기둥을 프랑스어로 ‘라피에’라 한다. 돌기둥들의 풍경이 공동묘지의 비석처럼 보여 ‘묘석지형’이라고도 불린다. 이곳의 라피에 지형은 특히 파도의 침식에 의한 것으로 한반도에서 유일하다고 한다.

돌 숲 뒤로 작은 정자가 이제야 보인다. 해암정(海巖亭)이다. 바위산을 내려가 정자 앞쪽으로 향한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작은 규모로 단정한 매무새다. 4면이 모두 문이다. 사방의 모든 풍광을 모조리 들이고 싶었던 것일 게다. 정면에 현판 세 개가 걸려 있다. 왼쪽에 전서체로 쓰인 ‘해암정’은 시택 심지황이, 오른쪽 초서체의 ‘석총람’은 송강 정철이, 가운데 해서체의 ‘해암정’은 우암 송시열이 썼다 한다. 우암이 이곳에 온 것은 2차 예송논쟁에서 패해 덕원으로 유배를 가던 중이었다. 그는 ‘풀은 구름과 아우르고 좁은 길은 비스듬히 돌아든다’는 시를 남겼다.

해암정은 삼척심씨의 시조 심동로(沈東老)가 고려 공민왕 10년인 1361년에 낙향해 건립한 정자다. 본명은 한(漢)이다. 고려 말 혼란의 시대에 그는 벼슬을 버리고 낙향했다. 왕은 그를 붙잡았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고 동로(東老)라는 이름을 내렸다. 노인이 동쪽으로 간다는 뜻이다. 이후 노인은 이곳 동쪽바다 해암정에서 후학을 키우고 풍월을 읊으며 살았다. 이후 왕은 그를 진주군(眞珠君)으로 봉하고 삼척부를 식읍(食邑)으로 하사했다. 왕은 동쪽으로 간 노인을 무척 아꼈던 모양이다. 해암정 속에는 바람도 파도 소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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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대바위 남쪽에 펼쳐져 있는 추암 해수욕장. 150m 정도의 아담한 모래사장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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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추암 주변에 둘러져 있던 군사경계용 철책을 철거하고 산책로와 울타리 등을 새로 정비했다.

◆한명회와 능파대

산책로는 해암정 북쪽 작은 바위산으로 이어진다. 바람은 거세고 데크는 젖어 있어 해암정의 고요가 거짓말 같다. 해암정과 석회암 돌숲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선다. 온몸을 바위처럼 세우고 펜스를 꽉 쥔다. 멋지다. 옛사람 이식은 “부딪치는 물결은 광류(狂流)처럼 쏟아지니/ 해붕(海鵬)이 목욕하는 듯한 광경 말로는 못하겠네”라 했고, 김득신은 “바다 위에 청산이 무수히 떠 있어/ 어느 것이 봉래인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계유정난의 일등공신 한명회도 강원도 체찰사 시절 이곳에 왔었다 한다. 그는 선언한다. “흡사 사람이 눕기도 하고 비스듬히 서 있기도 하는 것같이 또는 호랑이가 꿇어앉은 것 같기도 하고 용이 비틀거리는 것같이 천태만상을 이루었으며 소나무가 우거져서 그 사이로 비치니 참으로 조물주의 작품이라 하겠다. 강원도 경포대와 총석정과 그 경치가 비슷하며 기이한 점은 더 좋다 하겠다. 속되게 추암이라고 이름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고. 이제라도 자연에 대해 부끄럼이 없게 ‘능파대(凌波臺)’라 하고 그 이름을 고치노라.” 촛대바위의 맞은편 바위에는 능파대라는 한자가 새겨져 있다 한다.

‘능파’란 ‘파도를 가볍게 여긴다’는 말이다. 압구정(狎鷗亭)에 앉은 노인은 능파를 기억했을까. 심동로는 해암정을 짓고 이렇게 노래했다. “일찍이 갈매기와 더불어 바닷가에서 늙으니/ 일생의 행적이 바람결 같구나.” 해암정이 눈앞의 사투에도 요요한 이유일 터.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대구포항고속도로 포항 나들목으로 나가 7번 국도 영덕 방향으로 간다. 영덕, 울진 지나 강원도 동해에 진입하면 곧바로 오른쪽 산업단지 쪽에 추암 이정표가 있다. 추암역 굴다리 양쪽에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추암역에는 바다열차가 선다. 정동진과 삼척역을 하루 2~3번 오간다. 운행과 시간은 홈페이지(seatrain.7788.co.kr)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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