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과정이 살아있는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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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13 07:41  |  수정 2017-03-13 07:41  |  발행일 2017-03-13 제15면
[행복한 교육] 과정이 살아있는 수업
이금희 <대구 동문고 수석교사>

한동안 궁금했다. 왜 고1 때 글을 못 쓰는 아이들은 고3 때도 글을 잘 못 쓰는가? 3년 동안 국어 교육을 받고, 매년 백일장이며 독후감 쓰기며 논설문 쓰기를 배우는데 글쓰기 능력은 왜 자라지 않는가? 적어도 고등학교까지 국어 수업을 받았다면 네 단락 정도의 1천자 쓰기는 할 수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 세련되게까지는 아니라도 맥락과 논리에 맞는 1천자 글 정도는 쓸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수능 탓이라 먼저 답해 본다. 수능에서도 쓰기 능력을 평가하기는 한다. 개요 짜는 방법을 긴 지문의 오지선다로 평가하고, 초고쓰기와 퇴고 과정도 오지선다로 평가한다. 직접 개요를 짜거나 문장으로 써 보는 것이 아니라 다 만들어놓은 개요와 글을 읽고 문제를 푸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런 쓰기(형) 문항은 겉으로는 쓰기 능력을 평가한다면서 실제로는 독해력과 추론능력을 평가한다는 점에서 성취기준-교수학습-평가의 기본 원칙을 위배하고 있다. 이건 참 큰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국어 교사들은 수능 때문에 글쓰기 대신 쓰기 문제 푸는 방법을 가르친다. 그러니 쓰기 문제는 만점을 받으면서도 글쓰기는 엄두도 못 내는 학생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수능을 탓하고 나니 똑같은 질문이 내 수업으로 돌아온다. 나의 쓰기 수업은 어떠했던가? 나도 나름대로 시, 소설, 독후감, 자서전, 설득하는 글 등 다양한 글쓰기를 수행평가로 해 보았다. 제법 아이들은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그러면 아이들의 글쓰기 능력은 그만큼 성장하였을까? 자신이 좀 없다. 글쓰기는 자전거 타기처럼 몸에 익히는 능력이다. 암기형 지식이 아니라 한 문장 한 문단 연습하며 길러야 하는 기능이다. 기능은 단계를 통해 업그레이드된다. 그런 관점에서 돌이켜보자. 나는 아이들의 글쓰기 과정과 단계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가르치고 평가하였던가? 혹 과정은 무시한 채 글쓰기의 결과물만 평가하지는 않았는가? 만약 그랬다면 나 또한 글 못 쓰는 아이를 만든 공범이 될 수밖에 없다. 깊이 반성한다.

그래서 올해의 책쓰기 수행 평가는 변화를 주기로 했다. 책쓰기를 완성하였는가, 주어진 내용 요소를 채웠는가 등의 결과물 중심으로 평가하던 것에서 ‘표현력과 감성력 신장’이라는 역량 중심 평가로 방향을 바꾸었다. 이렇게 역량 중심으로 목표를 정하자 가르쳐야 할 내용이 대거 수정되었다. 수업 시간마다 표현력 신장에 필요한 이론과 지식을 제공하고 그것을 아이들이 직접 익히도록 가르쳐야 한다. 이를 위해 글감 찾기, 장면으로 글감 나누기, 대화와 묘사 익히기, 강제 연결법 적용하기, 구체적으로 적기, 간결한 문장 쓰기, 문단으로 끊어 쓰기 등으로 쓰기 단계를 세분화하였다. 또한 내용적 측면에서도 감정 단어 찾기, 감정 들여다보기, 역지사지하기, 내 감정 인정하기 등의 과정을 지도해야 한다. 수업 내용이 달라지니 평가 또한 당연히 달라진다. 과정 하나하나에 대한 피드백과 최종 결과물 평가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에휴, 너무 크게 벌이는 거 아닐까. 감당할 수 있을까. 아직 발도 떼지 않은 청사진을 이렇게 공개하는 이유는 스스로 도전해보고 싶어서다. 그래, 또 한 번 해 보자. 그러면서 우리는 어떻게든 배울 것이다. 이금희 <대구 동문고 수석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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