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과 책상사이] 제대로, 정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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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13 07:49  |  수정 2017-03-13 07:49  |  발행일 2017-03-13 제18면
[밥상과 책상사이] 제대로, 정확하게

“우리 아이는 천성이 느립니다. 갑치거나 급하게 밀어붙이면 주저앉아 버립니다. 무엇이든지 확실하게 안다고 생각해야 다음으로 넘어갑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열흘밖에 안 지났는데 아이가 너무 힘들어합니다. 특히 수학 시간에 급우들은 이미 다 배우고 왔는데 혼자 모르는 것 같아 너무 힘이 든다고 합니다. 선생님도 설명을 빨리 하기 때문에 생각하며 따라갈 수가 없다고 합니다. 지금이라도 과외를 시켜 미리 진도를 나가면 좀 나아질까요?” 엄마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도와 달라고 했다. 학생이 수학을 싫어하지 않고 좋아하기 때문에 더 안타깝다고 했다. 나는 특별 과외 등으로 진도를 먼저 나갈 생각 하지 말고, 철저하게 이해하고 넘어가는 아이의 학습 태도를 칭찬해주라고 했다. 이 방식으로 공부하면 마지막에는 먼저 배운 아이들보다 더 잘할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라고 말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로는 목표 지점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최대한 단축시키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다. 도로의 이상을 구체적으로 구현해 주는 대표적 수단이 포장도로와 터널이다. 반면에 길은 직선과 곡선, 오르막과 내리막, 우회를 중시한다. 길은 직선과 내리막 구간에서는 속도를 허용하지만, 곡선과 오르막 구간에서는 천천히 음미하고 다지며 깊이 생각하는 마음의 여유를 준다. 앞이 가로막히면 뚫기보다는 무리하지 말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둘러 가게 한다. 고속도로를 쏜살같이 달려온 사람의 머리와 가슴에는 속도감이 주는 쾌감은 있을지 모르지만 주변 풍경은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국도를 천천히 지나온 운전자에게는 산과 들, 숲과 나무, 개울과 강이 주는 아름다운 풍경이 망막과 가슴에 남는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빨리 배우면 빨리 잊어버린다. 수학문제를 풀 때 잠시 생각하다가 답이 안 나온다고 해설지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가면 진도는 빨리 나갈 수 있겠지만 실력은 크게 늘지 않는다. 잠시 생각해서 풀리지 않는다고 바로 답을 보지 않는 것이 좋다. 표시를 해 두고 그 다음 날 다시 풀어보라. 신기할 정도로 해결의 실마리가 섬광처럼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 한 문제를 오래 생각하는 그 과정에서 상상력, 추리력, 지구력, 도전정신 등이 길러지는 것이다. 우리는 이 과정을 너무 무시하거나 등한시하고 있다. 과정에 충실하면 최종적으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천천히 기본기를 잘 닦은 학생이 정말 필요한 순간에 남보다 더 빨리 속도를 낼 수 있다.

상담을 진행하면서 밀란 쿤데라의 ‘느림’에 나오는 한 대목이 떠올랐다. “어찌하여 느림의 즐거움은 사라져버렸는가? 아, 어디에 있는가, 옛날의 그 한량들은? 민요들 속의 그 게으른 주인공들, 이 방앗간 저 방앗간을 어슬렁거리며 총총한 별 아래 잠자던 그 방랑객들은? 시골길, 초원, 숲 속의 빈터, 자연과 더불어 사라져버렸는가?” 느림의 가치와 효용성을 인정하지 않는 속도는 진정한 속도가 아니다. 느림을 확보하지 못한 속도는 허망하다. ‘빨리 많이 보다는 제대로 정확하게’ 공부하는 습관이 성공의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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