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반성하고 협조했으면 탄핵 면했을까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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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13   |  발행일 2017-03-13 제30면   |  수정 2017-03-13
20170313

헌법준수 위반으로 파면
진실은폐도 사유로 적시
대통령 품격 잃어버리면
파면 대상 되는 전례 남겨
‘탄핵의 일상화’ 될 수도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헌법 제69조에 규정된 대통령 취임선서문이다. ‘헌법 준수’를 국민 앞에 선서하는 것으로 임기를 시작하도록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2013년 2월25일 국회에서 열린 제18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오른손을 들어 선서를 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이 선서를 지키지 못해 임기를 시작한 지 1천530일(4년12일) 만에 파면됐다. 이정미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이 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인용 선고를 하면서 밝힌 파면 사유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대한민국 대통령이 대한민국 헌법가치를 훼손했다’였다.

이정미 대행이 21분 동안 낭독한 헌재 결정문의 큰 흐름은 이렇다. “피청구인(박 전 대통령)의 헌법과 법률위반이 재임 기간에 지속적으로 이뤄졌다”→“특히 최서원(최순실)의 이익을 위해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 권한을 남용했다”→“국회 탄핵소추 이후에도 헌법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았다”→“파면으로 얻는 헌법수호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 주목되는 대목은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고 헌재가 심리를 진행 중인 상황에서도 헌법수호 의지가 없었다’는 지적이다. 결정문은 “피청구인은 최서원의 국정개입 사실을 철저히 숨겼고, 이를 부인하며 심지어 언론의 의혹 제기를 비난했다. 이러한 (헌법위반) 사실을 은폐하고 관련자를 단속했다”고 적시했다. 또 “피청구인은 대(對)국민담화에서 진상 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했으나 검찰과 특검 조사에 응하지 않고 압수수색도 거부했다”고 덧붙였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에도 진상규명에 소극적이었고, 한 발 더 나아가 “거짓으로 쌓아올린 가공의 산으로, 오래전부터 기획된 것 같다”며 진실을 은폐하려 한 ‘대통령의 품격’도 파면 사유가 됐다는 의미다. 이를 두고 검사 출신인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불복할 수 없는 것이 사법권의 독립이다 보니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면서도 “헌재의 파면 결정문은 잡범들에게나 적용되는 괘씸죄가 주류를 이룬 감정이 섞인 여론재판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만일 박 전 대통령이 사태 초기에 앞장서서 진상규명을 지시한 뒤 스스로 검찰과 특검의 대면조사에 응하면서 청와대 압수수색을 허용하고, 헌재에도 나가 신문을 받았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홍 도지사의 표현대로 ‘괘씸죄’가 배제됐으면 탄핵이 기각되고 대통령 직무에 복귀했을까.

단언할 수는 없지만 헌재 재판관 8명 만장일치 파면 결정까지는 가지 않았을지 모른다. 아마도 재판관들의 고민이 더 컸을 거다. 결국은 대통령에게 부여된 헌법상 권한을 사사로이 남용하고, 또 그걸 덮기 위해 헌법에 보장된 권한(불체포특권 등)을 ‘악용’했다는 게 재판관들의 판단이었으니 옴짝달싹 못하고 파면선고를 받았다. 여기서 얻는 교훈은 있다. 대통령의 초헌법적 통치권 행사는 물론이고, 헌법기관을 무시하는 행위나 불성실한 태도, 거짓말을 한 정황 역시 파면 사유가 된다는 전례를 역사에 남겼다. 두 가지 측면이 있다. 무엇보다 앞으론 누가 대통령이 되든 진실한 자세로 국민을 대하고 한 치의 꼼수도 부려선 안된다는 경고다. 국가통치권자의 권한행사를 헌법규정대로 성실히 수행할 뿐만 아니라 훌륭한 인격을 갖춰야 대통령 자격이 생긴다. 다만 이를 역으로 받아들이면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대통령 파면 요건이 탄력적으로 적용된 만큼 광장이나 정치권에서 걸핏하면 ‘대통령 탄핵’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높아졌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우리 사회에 남긴 극복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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