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원모정’ 효심 기리는 정자로 밝혀져

  • 남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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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16 08:20  |  수정 2017-03-16 08:20  |  발행일 2017-03-16 제28면
개성고씨 신청군수 종중 기문 번역
임진왜란 때 팔순 아버지 업고 피신
문경 ‘원모정’ 효심 기리는 정자로 밝혀져
원모정 내 편액인 원모정기.

경치와 관계없이 마을 가운데 건립된 정자가 특이하게 효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개성고씨 신청군수 종중(회장 고정환)은 최근 문경시 산양면 송죽리 덕암마을에 소재한 문중 정자인 원모정(遠慕亭)에 대한 보수공사를 하면서 마루에 걸려 있던 편액의 기문(記文)을 번역해 이 정자가 임진왜란 당시 효자였던 조상의 기록을 남긴 것이라고 밝혔다. 이 정자의 기문인 원모정기는 1930년 정자 건립 때 진성이씨 통정대부 승정원 승지 이기호 선생이 지은 것이다.

기문에 따르면 임진왜란 당시 고응두라는 사람이 왜적이 쳐들어오자 팔순의 아버지를 업고 피란에 나섰고 왜적이 가까이 오자 등에 업힌 아버지가 자신을 내려놓고 혼자 가라고 했으나 고응두는 아버지를 동여매고 피란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귀를 물어뜯으며 내려놓을 것을 종용했지만 아들은 피를 흘리면서도 계속 가다가 왜적에게 붙잡혔고, 이 광경을 본 왜적들은 효심에 감동해 이들을 살려주었다. 고응두는 아버지 사후 3년을 시묘살이를 하고 선조가 승하했을 때는 소복을 3년간 해 조정에서 복호(復戶)를 명하고 참봉을 증직했다.

이는 창석 이준 선생이 상산읍지에 조난실기(遭亂實記)로 기록했고 청대 권상일 선생도 효행록으로 남겼다. 고응두의 10세 후손 고완은 “세대가 멀어질수록 선조의 아름다운 행적이 전해지지 않을까 염려해 여덟 칸의 정자를 세우고 원모정이라 현판을 내걸었다”고 밝혔다.

문경= 남정현기자 namu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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