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진실은 아직 인양되지 않았다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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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16   |  발행일 2017-03-16 제31면   |  수정 2017-03-16
20170316
박진관 기획취재부장 사람&뉴스전문기자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하며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우리 모두 헌재 결정에 승복함으로써 헌법준수 정신이 더욱 함양되고 절차적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중략> 탄핵에 반대했던 국민이나 찬성했던 국민 모두 마음에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이제 과거를 접고 양쪽의 상처가 조속히 아물어 진정한 국민통합이 이뤄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곧 헌법을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헌법에 대한 도전이자 체제에 대한 부정이다. 대통령이 이런 식으로 헌법에 대해 도발하고 체제를 부정한다면 나라는 근본부터 흔들리고 말 것이다.”

윗글은 2004년 5월14일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선고 기각 직후 한 발언이다. 아랫글은 같은 해 10월27일 역시 박 대표가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해 당시 노무현정부와 여당인 열린우리당에 수도이전특별법에 대한 헌재의 위헌결정을 수용하라며 촉구했던 국회연설 중 일부다.

박 전 대통령의 이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다. 다만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투자, 남이 하면 투기’라는 사고방식이 문제다. 말은 부메랑처럼 자신한테 되돌아오는 법이다. 박 전 대통령이 진정 헌재의 판결을 존중하고 국민통합을 원한다면 13년 전 한 말을 되새기고 이를 실행해야 한다.

3·10 탄핵선고 이후 닷새가 지났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여전히 가택에서 침묵하고 있다. 다만 그의 대리인이 “모든 결과를 안고 가겠다” “끝까지 진실을 밝히겠다”고 한 게 전부다.

언론과 국민은 이를 ‘불복’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갈등과 반목, 대결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고 있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박 전 대통령이 탄핵선고 와중에 사망한 지지자 3명에 대해 한마디 애도의 말도 없었다는 점이다. 야박하다. 생명보다 소중한 게 무엇이 있나. 위로의 말, 조화라도 보냈다는 소식이 없는 걸로 보아 유가족이 ‘이러려고 지지했나’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탄핵 직후 한 언론사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86%는 탄핵인용을 잘했다고 응답했다. 또 92%가 헌재의 결정에 승복해야 한다고 답했으며, 박 전 대통령을 구속수사해야 한다는 의견도 70%에 달했다. 여론이 이런데도 박 전 대통령의 동생인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이 한 종편방송에 나와 “세종대왕도 32년이나 절대군주를 했는데 탄핵은 생각도 못 했다. 부당한 판결이다”라고 한 발언은 국민과 대통령을 봉건시대 백성과 군주의 관계로 착각한 망언이나 다름없다. 그의 말대로 봉건시대라면 폐위에다 낙도에 위리안치 됐을지도 모른다. 21세기에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박 전 대통령은 독립투사도 아니며 독재에 저항하다 가택연금이라도 당한 민주투사도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은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피의자 신분이다.

이미 헌재는 탄핵심판에서 박 전 대통령이 국민을 배신했으며 헌법을 유린했다고 밝혔다. 또 탄핵심판 인용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질서 수호의 문제라고 못 박았다. 이에 야당은 물론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조차 ‘헌재의 결정을 겸허히 수용하고 헌재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했다. 하지만 친박 측근은 연일 탄핵불복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게다가 박근혜정부의 명예회복을 명분 삼아 줄줄이 대선출마를 선언하고 나섰다. 후안무치하다. 정의와 책임은 없고 의리만 외치는 그 판을 보고 오죽하면 모 정당이 ‘삼성동 십상시’ ‘삼성동 임시정부’라며 모욕을 줄까. 박 전 대통령의 주변 또한 불필요한 말로 구설에 오르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오는 21일 검찰이 박 전 대통령에게 소환통보를 했다. 박 전 대통령은 그가 뱉은 말처럼 나라를 근본부터 흔들리게 할 요량이 아니라면 검찰수사에 적극 응해야 한다. 진실은 아직 인양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진관 기획취재부장 사람&뉴스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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