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그인
  • 회원가입
검색하기

리빙 전체기사보기

[노태맹의 철학편지] 삶은 관계이고 철학은 그 관계를 순식간에 깨닫는 직관과 ‘복합적인 현재’에서 출발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구글플러스
  • 기사내보내기
  • 인터넷뉴스팀기자
  • 2017-03-17
  •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나눗셈이 필요한 부분에서 곱셈을 행해서는 안 된다.”

17세기 근대 철학의 선구자인 데카르트의 ‘정신 지도를 위한 규칙들’ 중 스무 번째 규칙에 나오는 얘기야. 어쩌면 뜬금없을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우리 삶의 많은 곳에서 나눗셈이 필요한 부분에서 곱셈이 행해지기 때문이야. 더하고 빼는 일상의 삶을 잘못된 곱셈과 나눗셈이 엉뚱하게 부풀리거나 통째로 날려버리는 경우를 우리는 뉴스와 역사를 통해 익숙하게 봐 왔어. 폭넓은 의미에서 철학은 그 어리석음을 경계하고 올바른 인식을 갖게 하는, 데카르트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정신을 지도하는 규칙들’을 세우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

태형아, 네가 철학과에 합격했다는 얘기를 듣고 무언가를 얘기해 주어야겠다는 의무감을 피할 수 없었단다. 그러나 그것은 철학적 내용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일 수만은 없을 거야. 알듯이 나는 의사이고, 철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다녔다는 그 경력만으로 너에게 철학의 깊은 내용을 전해줄 자신은 없어. 철학의 깊은 내용은 교수님이나 훌륭한 책들을 통해 배우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될 거야. 철학과에 다닐 때 후배들이 들어오면 늘 같은 이야기를 먼저 했단다. “혼자 고민하지 마라! 네 고민은 이미 수천 년 전에 누군가가 했고 누군가가 답해 놓았다! 우선 그 역사를 읽어라!” 너도 철학의 깊은 내용을 제대로 알고 싶다면 철학의 역사를 먼저 보는 것이 필수라는 것을 명심해 두어라.

다만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아직까지 철학이라는 학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한 사람인 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 한 사람이 지나온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이기도 할 거야. 사람들이 반 농담으로 얘기하듯이 철학은 ‘철학관’에서 미래를 점치는 학문이 아니야. 철학은 여기 이곳의 현재를 해석하고 바꾸어나가려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오류가 발생하는데, 사람들은 그 현재를 우리 눈앞에 있는 객관적 대상으로만 생각한다는 거야. 다시 말해 현재란 주관과 상관없이 ‘그냥, 딱’ 주어져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

음식을 예로 들자면 ‘현재’라는 궁중떡볶이는 파, 마늘, 당근, 간장, 참기름, 설탕, 고기, 떡 등 개개 사실의 합도 아니고, 냄비에 볶인 그 전체도 아니고, 식탁에 나가기 전 접시에 놓인 ‘그것’도 아니야. 궁중떡볶이라는 현재는 사람들이 젓가락을 들고 식탁 주변에 머리를 맞대고 앉은 그 순간의 접시에 놓인,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취향과 먹는 사람의 취향의 복합을 통해 결합된 ‘그것’을 통해 완성되는 거야. 이러한 관계로서의 현재를,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이데올로기로서 설명하기도 하지. 그렇기 때문에 현재는 산술과 통계로 다 설명되지 않고 빅데이터의 연관 관계로도 파악되지 않아. 불행은 현재를 그저 투명하고 직접적인 것으로만 보려는 데서 오지.

궁중떡볶이의 정체는 파, 마늘, 당근, 간장, 참기름, 설탕, 고기, 떡이라고 밝히는 것이나 아름다운 접시의 치장에 불과하다는 논리는 저급한 환원론이나 심리학에 불과해. 데카르트가 ‘규칙’에서 말하는 것처럼 “복잡하고 모호한 명제들을 한 단계씩 순차적으로 좀 더 단순한 것들로 환원한 다음, 가장 단순한 것들에 대한 직관을 가지고 출발하여 나머지 모든 것들에 대한 지식을 향해 올라가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만, 가령 유명한 건축가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 성당’을 맨 처음 감상하기 위해선 바깥에서 그것을 쳐다보는 것이 우선 아닐까? 삶은 관계이고 또 그 관계의 관계이므로 철학의 출발은 그 관계를, 성가족 성당을 순식간에 깨닫는 직관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어.

오늘 내가 너에게 처음으로 해 주고 싶은 이야기의 요점은, 철학은 복합적인 현재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야.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칸트, 헤겔, 후설 등 개별 철학자만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지. 그러나 그들 대가의 논의의 출발도 실은 삶의 사소한 질문과 직관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안다면 그들은 네 삶에 연 작은 입구로부터 깊은 곳까지 너를 안내해주리라고 나는 생각해. 그렇게 너는 철학을 통해 너의 현재를 이해하고 개조해나가게 될 거야.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오늘은 글이 어수선하다. 다음부터는 좀 더 차분하게 이 삼촌의 철학 이야기를 해 줄게. 매번 글의 마지막은 라틴어나 한자의 경구로 끝맺어 볼까? 다음 시간까지의 숙제라고 생각하면 되겠지? 오늘은 이 경구를 들려주고 싶어. 고대 로마의 테렌티우스라는 사람이 한 말인데 삼촌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야. 우리가 어떻게,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

“나는 인간이다. 인간에 관계되는 것 가운데 나와 관계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Homo sum, humani nihil a me alienum puto).”

시인·의사

[Copyrights ⓒ 영남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12운성으로 보는 오늘의 운세

2015_suseong(40).gif


2017_dalseo(40).gif


2016_dong(40).gif


2017_airdaegu(90).jpg


2017_DIMF.jpg


2017_chilgok(1).jpg


2017_gbdc.gif


2017_kab.jpg


2017_sym(250).jpg


2017_su(250).jpg


bongdeok.jpg


2017_dgfez.gif


2015_dhc.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