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봄날, 꽃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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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20

최현묵 대구문화 예술회관 관장
흥하는 때가 있으면
쇠하는 때도 있는 것
꽃이 피었다 지는 것도
시간 속 무한 반복일 뿐
섣부른 환호·슬픔 경계

꽃이 좋아지면 나이가 들었음을 안다고 하였던가. 겨울 한가운데 있을 때도 남쪽 꽃소식이 그리웠다. 유난히도 추웠던 올해 겨울은 더욱 그랬다. 옅은 감기로 미열이 감도는 머리를 감싸고 먼데 산봉우리를 바라보며 얼른 이 겨울이 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긴 겨울이 지나고 오늘 꽃소식이 전해졌다. 텔레비전 화면 속 기자는 화사한 머플러를 두르고 제주도로부터 시작한 노란 개나리꽃이 이번 주말쯤이면 대구에도 화사하게 그 고운 자태를 드러낼 것이라고 하였다. 나는 왠지 모르는 안도감으로 마음이 놓였다.

사실 꽃이 별거인가. 그저 식물 생육과 번식 과정 속 하나의 결과물일 뿐 아니던가. 꽃이 피어 꽃가루를 퍼트리고, 그 결과로 열매 맺고, 또 그 열매 속 씨앗으로 새로운 세대의 식물이 번성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꽃이 피면 핀다고 좋아하고, 열매를 맺으면 맺는다고 반긴다. 또 씨앗은 어떤가. 봄날 꽃에 못지않게 새싹이 돋아나는 것에 환호한다. 여리고 여린 새싹이 거칠고 투박한 흙을 뚫고 새순을 밀어 올릴 때, 그 감동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이처럼 꽃이 핀다는 것은 꽃 핀다는 물리적 사실 외에 수많은 느낌과 감정을 자극한다. 그게 꽃과 인간이다.

그렇듯 꽃에게 남다른 감정을 느끼는 것은 단지 그 색깔이나 자태가 아름다워서만이 아니다. 생명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생명의 시작, 그 신비로운 여정의 출발을 보기 때문이다. 꽃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암시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그게 새롭게 보이는 법이다. 그저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 꽃이 피어나고, 떨어지고, 열매를 맺고, 또 그런 후 새로운 씨앗 하나를 대지로 보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며, 또 그 씨앗이 차가운 겨울의 땅 속을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꽃이 유난히 더 반가운 것이다.

그리고 꽃에서는 죽음도 느낀다. 이미 정해진 그 길이 보이기 때문이다. 꽃이 피는 것은 지는 것을 전제로 한다. 청춘시절에는 꽃이 질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한다. 알고는 있으나 절실하지 않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그 낙화(洛花)의 비장함을 견디는 슬픔을 안다. 어쩌면 루쉰이 말한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朝花夕拾)’도 그 연장선에 있으리라. 저기 떨어져 있는 꽃 한 송이도 오랜 세월을 견뎌온 무게가 있기에 충분히 존중받아야 하는 것 아닐까. 꽃이란 그렇듯 피든 지든 아름다운 의미를 가진다.

결국 꽃에서 시간을 발견하는 것이다. 순간이 아닌 거듭되는 시간의 연속성, 그 속에서 인간과 세상의 이치를 보는 것이다. 무수히 많은 변화를 도모하고 또 새롭게 태어나지만, 결국 또다시 봄날에 피어나는 저 꽃처럼 무수한 반복일 뿐이다. 그래서 섣부른 환호와 슬픔을 경계한다. 오히려 더 단단하게 마음을 먹고 겨울이면 꽃이 피기를 기다리고, 꽃이 지면 열매 맺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새롭게 돋아날 봄날의 새순을 기다린다. 그것이 희망이다.

루쉰이 말했다. “희망이란 본디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며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꽃이 핀다고 기쁜 것만이 아니듯 꽃이 진다고 반드시 슬픈 것만도 아니다. 생자필멸(生者必滅), 회자정리(會者定離)가 슬프지 않은 것은 또다시 시작하는 탄생과 만남을 꿈꾸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권력도 이와 같을 것이다. 흥할 때가 있으면 쇠할 때가 있고, 쇠할 때가 있으면 흥할 때도 있는 법. 단지 그 방법과 모습만 달리할 뿐이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흘러 희망의 시대로 간다. 마치 꽃에서 씨앗, 씨앗에서 꽃으로 거듭하듯. 봄날, 꽃을 보며 온갖 생각을 다 했다.
최현묵 대구문화 예술회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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