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분노만 있고 용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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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21

분노를 품고 국정운영하면
국민통합·화해 이룰수없어
편가르기식 적폐청산보다
용서를 먼저 말하는 것이
모두가 하나되는 덧셈정치


지난 10일 현직 대통령이 파면 당했다. 이유야 어찌 됐든 국가적으로 큰 불행이다. 탄핵 이후 걱정하던 것이 현실이 되고 있다. 대통령 병에 걸린 정치권은 국민 통합과 화해에는 관심이 없다. 내 편이 아닌 쪽은 청산해야 할 적폐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분노가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런 식이면 대선 이후가 정말 걱정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선고 후 서울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가는 데 3일이 걸렸다. 일부 언론과 정치권은 박 전 대통령이 선고 직후 청와대를 떠나지 않자 “왜 민간인 신분이 된 사람이 청와대에 머무는지 모르겠다. 이는 엄연한 불법”이라며 조속한 자택 복귀를 채근했다. 통상 방을 빼려면 주인이 세입자에게 미리 통보도 하고 다른 곳으로 옮길 최소한의 시간을 준다. 아무리 파면 당한 대통령이라도 수년간 비워둔 자택으로 돌아가려면 며칠의 여유는 필요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같은 작은 배려조차 용인하지 않았다.

탄핵 선고 다음날 저녁 서울 광화문 광장 촛불 집회는 축제 분위기로 넘쳐났다. 환호성이 울렸고 폭죽까지 터졌다. 대통령 탄핵 선고가 축제의 촉매제 역할을 한다는 것은 분명 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반면 탄핵을 반대하는 태극기 집회에서는 3명이 숨지고 여러 사람이 다쳤다. 한쪽은 승리의 축배를 들고, 다른 한쪽은 분노를 분출하고 있다. 같은 사안을 놓고 대하는 방식이 극과 극이다. 내가 속한 집단이 하는 행위는 옳고, 다른 집단이 하는 행위는 무조건 잘못으로 여긴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틀림만 고집한다. 상대방 주장을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인정해야 내 주장이 정당화된다.

차기 대통령은 분노로 가득한 국민의 마음을 치유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편가르기식 적폐 청산을 외칠 것이 아니라 용서를 먼저 말해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적폐 청산이 등장했다. 그 공약이 제대로 지켜졌다면 적폐는 오래전에 사라졌어야 했다. 적폐는 특정시기에 한꺼번에 청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쌓이는 적폐는 그때 그때 치우면 된다. 지금 정치권에서 말하는 적폐 대상에는 나쁜 관행, 부패, 비리 등의 관습적 폐단뿐만 아니라 내편이 아닌 상대편도 포함하고 있다. 이는 분노를 부를 수밖에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적폐 청산 대상이 달라지고, 분노는 쌓이게 된다. 분노가 내재된 국민 통합과 화해는 구두선에 불과하다.

손양원 목사는 여순반란 사건 당시 두 아들을 죽인 좌익 학생을 양자로 삼아 용서의 순교자로 불린다. 전 워싱턴포스터 여기자 로라 블루멘펠트는 아버지와 함께 이스라엘 여행 중 팔레스타인 테러범에게 총격을 당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테러범에게 복수를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는 이스라엘 근무를 자원했다. 이스라엘 법원 기록을 뒤져 12년 만에 25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인 범인과 그 가족을 만났다. 하지만 그녀는 물리적 복수보다는 용서가 진정한 복수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범인을 용서한다. 이같은 성자적 용서를 모두에게 요구할 수는 없다. 그래도 용서없이는 분노를 잠재울 수 없다. 시중에 이번 대선에서 특정 후보는 절대 대통령이 되면 안된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이 후보는 적폐 청산을 누구보다 강조하고 있다.

분노를 품고 국가를 운영해서는 안된다. 내편이 아닌 다른 쪽을 적폐 청산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지금과 같은 국가적 불행이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아직도 친일파와 군사정권 잔재 세력 척결을 말한다. 그들 대부분은 이미 세상을 떠났거나 은퇴했다. 과거는 그림자에 불과하다. 과거에 얽매이면 미래가 없다. 분노가 넘치면 희망이 없다. 지금 우리 상황이 더욱 그렇다.

분노의 정치는 뺄셈의 정치다. 분노를 부추기면 확실한 내편은 만들 수 있지만, 모두를 끌어안을 수는 없다. 무조건 용서는 고통을 동반할 수 있다. 그래도 용서의 정치가 모두를 한편으로 만들 수 있는 덧셈의 정치다. 김기억 (동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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