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칼럼] ‘3포 세대’를 위한 정책적 위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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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21   |  발행일 2017-03-21 제30면   |  수정 2017-03-21
20170321
이수희 (변호사)

사랑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불안과 절망의 ‘3포 세대’
대선 후보들 대책은 있나
어른으로서 건네는 말 말고
부디 정책으로 위로해 주길


완연한 봄이다. 아침저녁 잠시 옷 속으로 스미는 바람은 쌀쌀하지만, 화사한 햇살과 코에 닿는 산뜻한 공기가 봄을 느끼게 한다. 봄은 왠지 모르게 희망을 갖게 한다. 겨우내 죽은 듯 보였던 나무와 풀들이 푸르러지듯이 사람들의 움츠러들었던 몸과 마음도 자연스럽게 펴지는 것도 같다. 그래서인가, 봄은 사람을 싱숭생숭하게 만든다. 나무에 움이 터오는 걸 보며 만물이 소생하는 생명력을 느끼게 되고, 더불어 사랑을 꿈꾸게 한다.

이런 봄바람을 타고 홍상수 영화감독과 배우 김민희의 열애 인정이 화제다. 이혼조정신청을 했다지만 여전히 유부남인 홍상수 감독과 22세 연하인 배우 김민희의 공개적인 열애 인정은, 어떤 이들 눈에는 뻔뻔한 남녀에 불과하고, 어떤 이들에게는 일생의 사랑이라는 그들의 만남이 로망으로 비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사랑을 두고 옳고 그르냐를 따지기 전에 첫 느낌은 봄바람에 마음이 살랑거리는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두 사람을 보면서 사랑만큼 공평하지 못한 노릇이 또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법이 아니라 처지가 사랑을 못하게 막고 있는 요즘 젊은 세대의 한숨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교제를 반대하는 부모 앞에서 “우리 이대로 사랑하게 해주세요”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 앞에서 “우리도 사랑하고, 결혼하게 해주세요”라고 외쳐야 하는 그들의 현실이 아내에게 제발 이혼해달라는 그들의 상황과 대비되어 보였기 때문이다.

‘3포 세대’의 사랑과 결혼에 대통령 후보들은 어떤 복안을 갖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숨 쉬는 것조차 돈이 들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연애와 결혼은 말해 뭐하겠나. 가난한 연인의 낭만적인 사랑은 옛말이고, 벌어서 살림 장만해 가며 살면 된다고 결혼부터 하던 배짱도 모두 옛 무용담이다. 지금은 사랑도 결혼도 모두 경제적인 뒷받침이 없으면 엄두를 내기 어렵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3포 세대’다. ‘3포 세대’는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20~30대를 지칭하는 말이다. 학비 마련과 학자금 대출 갚느라 연애를 못하고, 우여곡절 끝에 결혼까지는 했다 하더라도 주거비와 교육비 때문에 출산을 포기해야 하는 젊은 세대의 고통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단어이다. 개인적인 면에서는 인간으로서 가지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조차 포기해야 하는 절망적인 세대인 것이고, 국가와 사회적인 면에서 보면 출산율 저하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일 뿐만 아니라 상대적 박탈감에 따른 사회적 갈등이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는 불안정성이 심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대학을 졸업했는데도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을 때 느끼는 불안과 절망감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깊이다. 필자는 입사 시험을 치른 뒤 합격자 명단을 확인하려 건 전화에서 “죄송합니다”로 시작하는 불합격 통지를 들었던 그 순간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나만 홀로 내팽개쳐진 듯한 아득한 느낌, 세상이 원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 건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 답답함이 얼마나 컸는지 모른다. 그래도 필자는 운이 좋아 적은 비용으로 다른 기회를 얻을 수 있었지만,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이런 기회를 얻는 데도 목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젊은 세대를 위로하는 글과 말들이 쏟아져 나왔던 것 같다. 하지만 결국 궁박한 상황을 벗어나려 애쓰고 기회를 만들어내야 하는 건 당사자 몫이란 점에서 그 말들은 순간의 위로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래도 결국 경험에서 해줄 수 있는 말은 “인생은 살아봐야 알 수 있다. 미리 겁먹지 말라”다. 그러나 정치권의 말은 달라야 한다.

5월9일로 대통령선거일이 확정되었다. 사랑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젊은 세대 앞에서 대통령 후보들은 어떤 복안을 갖고 있나. 어른으로서 건네는 위로의 말이 아니라 부디 정책으로 그들을 위로해 주길 바란다. 이수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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