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20·50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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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22   |  발행일 2017-03-22 제30면   |  수정 2017-03-22
20170322
임성수 정치부장

스물에 바뀐 ‘대통령 직선제’
쉰 살에는 ‘제왕적 대통령제’
정치적 이해따라 빌미 삼아
헌법을 바꾸는 것에 앞서
국민이 주인인 나라 만들길

대구·경북에서 80%가 넘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제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7년 3월21일 서울중앙지검 포토라인에 섰다. ‘대통령 직선제’가 재도입된 지 정확히 30년 만이다. 국민의 손으로 당선된 대통령이 탄핵(파면)에 이어 검찰조사까지 받으면서 정치권에서는 이번 기회에 대통령 직선제를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통령 직선제는 1972년 박 전 대통령의 부친인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이 평화적 통일을 추진한다는 명목으로 유신헌법에 의해 설치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을 간접 선출하면서 사라졌다. 이후 전두환 전 대통령도 대통령선거인단으로 이름만 바꿨을 뿐 대통령 간선제를 통해 당선됐다.

15년 만에 대통령 직선제를 부활시킨 것은 6·10민주항쟁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에 이어 검찰조사로까지 이어지게 한 도화선은 촛불집회다. 6·10항쟁과 촛불집회 둘 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자발적인 저항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다.

1987년과 2017년은 필자에게도 남다른 의미가 있다. 87년은 약관(弱冠)의 나이인 20세, 2017년은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인 50세이기 때문이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선배들에 이끌려 거리에서 외쳤던 ‘호헌 철폐’와 ‘독재 타도’는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6·29선언을 이끌어 냈다. 하지만 3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대통령직선제는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다른 이름으로 권력의 집중만 낳게 했다는 빌미가 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박 전 대통령이 권한을 남용했다는 이유로 탄핵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사유에 대해 최순실씨 등을 봐주느라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고 은폐하고 검찰수사도 거부해 헌법 수호자로서의 의지가 없었다고 밝혔다. 심지어 재판관들은 결정문에서 박 전 대통령이 국민 신임을 배반했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도 검찰에 출두하면서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의 검찰 출두가 이전 전두환·노태우·노무현 전 대통령 검찰조사 때와 사뭇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헌정사상 첫 탄핵 대통령이라는 점도 있겠지만,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까지하면서도 책임에 대해서는 간과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책임을 다하지 못한 박 전 대통령의 근본적 원인을 대통령 직선제에서 찾고 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국회에서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대수술해야 한다면서 분권형 대통령제인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를 들고 나왔다. 대통령이 가진 권한을 대폭 축소하고 대신 의회의 권한을 크게 확대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대통령의 권한은 외교분야로만 국한시키고, 국회에서 선출하는 국무총리에게 국방과 통일까지 포함한 내치의 전권(全權)을 주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직접 선출하겠다며 대학생은 물론 넥타이부대(회사원)에다 심지어 고등학생들까지 거리로 뛰쳐 나갔던 6·10민주항쟁이 제왕적 대통령제를 쟁취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손을 잡고 번쩍 치켜들었던 1987년 6월10일, 수백 만명이 전국 거리 곳곳에서 최루가스를 마시며 수없이 외쳤던 “대통령을 내 손으로~”라는 구호가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헌법을 바꾸는 것, 새로운 대통령을 세우는 것, 정치 제도를 바꾸는 것에 앞서 정치인이 국민을 바로 보는 제대로 된 시각과 인식이 우선이다.

대통령 직선제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한 헌법 1조2항의 민주주의 기본 원칙을 되살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었다.
임성수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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