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대통령과 유리천장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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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22   |  발행일 2017-03-22 제31면   |  수정 2017-03-22
[박재일 칼럼] 대통령과 유리천장

인도의 항공사 에어인디아가 지난달 조종사와 승무원 전원이 여성으로만 구성된 여객기를 띄워 뉴델리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날았다. 기장·부기장은 물론 관제탑 요원과 정비사까지 몽땅 여성이었다. 캡틴인 기장 타샤는 “남성 중심의 조종사 환경에서 여성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재미교포 프로골퍼 미셸 위는 키 183㎝에다 출중한 외모, 10대 때부터 300야드를 넘나드는 장타로 미국인들을 열광케 했다. 현지 미국인들은 한국인을 보면 미셸 위의 고향 코리아냐고 물을 정도였다. 그녀는 한때 LPGA가 아닌 PGA에서 남성 선수들과 똑같이 뛰길 고집했다. 무모하다는 비평도 있었지만 유리천장을 깨고 싶다는 그녀의 열망은 정말 가상했다. 그러고 보니 오래전 스포츠계에서 거의 진짜 성(性) 대결로 세상을 떠들썩하게한 적이 있었다. 바로 테니스의 영원한 여제(女帝)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 대(對) 테니스 황제 지미 코너스 간 세기의 대결이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1992년으로 36세의 나브라틸로바가 40세의 코너스에게 0 대 2로 졌다. 반면 현재 여자 테니스 세계 최고봉인 세리나 윌리엄스는 남자 선수인 앤디 머리와 맞붙는다면 어떨까라는 질문에 10분도 안 돼 자신이 주저앉을 것이라고 답했다. 여성과 남성의 체력적 격차가 엄연히 있다는 의미다.

스포츠계는 그렇다 치고 다른 영역을 둘러보면 또 차원이 달라진다. 올해 육사 졸업생 1·2·3등은 모두 여생도였다. 체력은 몰라도 최소한 지적 부분은 남생도를 압도했다. 하긴 신임 판·검사 임용 사진이 뉴스에 올라오는데 온통 여성 판·검사들인 것은 더이상 생경하지 않다. 팔도의 모든 관리가 남성이었던 조선시대와는 완전히 딴 세상이다.

어제 검찰에 출두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리더십 붕괴를 놓고 온갖 분석이 나오지만, 그중 여성이란 앵글에서 바라보는 논쟁은 숙지지 않는다. 그가 대통령에 올랐을 때 여성 한계의 유리천장을 뚫었다는 평가와는 정반대이면서도 한편 같은 맥락이다. ‘박근혜 파면’으로 여성이 뚫고 나가야 할 유리천장이 행여 더 높고 더 두꺼워지는 것을 염려한다.

지난 주말 리더십을 주제로 한 토론회에 참석했는데, 토론자로 나온 서영희 교수(계명대)는 다소 불편한 점이 있다는 점을 전제하면서 “진보와 보수 두 진영 논리를 떠나 이번 사건에는 여성 리더십에 대한 의심과 불신이 어느 정도 포함돼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사건의 본질을 벗어나 여성의 약점을 부각시키고 건드려 대중의 분노를 일으킨 측면이 있다는 비판이다. 하기야 무슨 피부미용 시술이나 올림머리 논쟁도 박 전 대통령 스스로 진솔한 언급을 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대통령이기 때문에 증폭된 면이 없지 않다. 탄핵정국이 한창 소용돌이칠 때쯤 유튜브인가 인터넷에‘정유라가 박근혜의 딸일 수밖에 없다’는 논지의 영상이 올랐는데 그때 벌써 180만명이 클릭했다.

대구·경북 유일의 여성 지방자치단체장인 윤순영 대구 중구청장은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바른정당에 입당하면서 밝힌 회견문에서 “박 대통령의 실패를 여성의 실패로 규정짓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한국 최초 여성 대통령은 실패했지만, 한국여성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고 했다.

‘박근혜 사건’은 여성의 취약성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교과서적으로 말해도, 뒤로는 “혼자 사는 여자가 너무 나서면 그렇다”는 식의 비아냥이 있다.

그래도 하나 분명한 사실은 남녀에 관한 한 우리의 미래는 거의 정해져 있다는 점이다. 성적 편견과 차별이 무의미한 세상이다. 여성의 관점에서 혹은 남성의 관점에서란 앵글 자체가 먼 과거 얘기가 될 것이다. 이미 박 대통령 탄핵 결정문도 여성 판사인 이정미 재판관이 읽었다.

메르켈, 테리사 메이, 힐러리, 대처, 차이잉원, 아웅산수지, 필리오나 등 이런 이름들이 여성인지 남성인지 구분하기에도 정신없는 세상이 조만간 대한민국에도 도래할 것이다. 우연히 탄 비행기의 승무원 모두가 여성이라도 이상한 상황이 아닌 날이 곧 온다.

편집국 부국장 겸 정치부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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