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나의 성악이야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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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23   |  발행일 2017-03-23 제21면   |  수정 2017-03-23
[문화산책] 나의 성악이야기4
김동녘 <성악가>

이탈리아의 산타체칠리아 국립음악원에 입학하면 뭐든지 될 것 같았지만, 입학 후 2년 동안은 피아노만 쳤던 기억이 난다. 성악 정규과정엔 부전공으로 피아노가 필수인데, 나는 피아노는 바이엘 하권까지 쳤다. 나를 가르친 선생은 체르니로 시작해서 졸업할 땐 쇼팽 연주를 시킨다는 ‘악명’ 높은 선생이었다. 언어와 성악도 포기하며 열심히 노력했다. 덕분에 2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피아노 연습만 했고, 피아노를 배우기 위해 유학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피아노와 친해졌다. 그리고 당당하게 쇼팽의 왈츠 9번을 치면서 피아노시험을 무사히 통과했다.

그리고 틈틈이 콩쿠르 준비도 했는데 우연한 기회로 유명한 반주자(Rolando Nicolosi)의 이름을 건 국제 성악·반주 콩쿠르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로마에는 오래전부터 활동한 살아있는 전설 두 분이 특히 유명한데, 그들 중 한 사람이 바로 그였다. 두 사람은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 성악가들의 최고 전성기 시절 전속반주자였고, 수많은 성악가들을 지도했다. 운좋게 이 콩쿠르에서 3위에 입상했고, 수상기념 음악회가 이탈리아 남부에 있는 도시 살레르노에서 열리고, 초청 연주자로 참여하게 되었다. 물론 반주는 그가 맡았다.

공연을 위해 몇 번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런데 한 곡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그 노래 가사 앞부분엔 한 번씩 스타카토가 나오는데, 음반이든 실황이든 내가 노래를 들어오던 유명 성악가들 어느 누구도 스타카토를 하지 않았다. 나도 별 생각 없이 그렇게 불렀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반주를 멈추며 왜 스타카토를 하지 않고 레가토로 하냐고 호통을 친 것이다. 그는 악보를 똑바로 보라고 했다. 맙소사! 정말로 레가토가 아닌 스타카토였다.

악보를 제대로 보지 않고 성악가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공부를 했던 탓에 악보에 쓰인 것을 놓쳤던 것이다. 그가 “한국 사람들은 소리는 참 좋은데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고, 음반에 있는 유명 성악가들의 소리에만 관심이 있다. 그러다 보면 본질을 잊게 되고 지금 같은 상황이 온다. 악보의 모든 것은 내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작곡가가 너희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말했을 때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소리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악보에 쓰여 있는 것들 하나하나가 아주 중요한 부품이며 그 부품들이 조화롭게 잘 모였을 때 좋은 음악으로 탄생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연주회는 무사히 마쳤고, 나에게는 더없는 영광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스승의 가르침을 가슴 깊이 새기며 유학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김동녘 <성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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