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엔 짜장면이 없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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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24   |  발행일 2017-03-24 제34면   |  수정 2017-03-24
中 ‘자장미엔’은 800년 역사의 베이징 서민요리…돼지고기·채소 거의 들어가지 않아
인천으로 온 산둥성 간편식 자장미엔도
국수에 중국 된장 얹어 비벼먹는 스타일
캐러멜 첨가하면서 지금의 짜장면 탄생
중국엔 짜장면이 없다
한국짜장면 발상지로 불리는 공화춘은 1983년 폐업되고 현재는 짜장면박물관으로 바뀌었다.

한국의 짜장면과 중국의 ‘자장미엔(炸醬麵)’은 확연히 다른 음식이다. 자장미엔은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다. 800년 역사를 가진 베이징의 서민요리 중 하나였다. 쌀보다 밀가루가 많이 생산되는 중국 허베이(河北) 지방에선 밀가루 요리가 유난히 많았다. 지금도 베이징엔 전통 자장미엔으로 불리는 ‘라오베이징 자장미엔(老北京炸醬麵)’이 곳곳에 진을 치고 있다. 하지만 한국 것과 달리 중국 자장미엔에는 돼지고기와 채소가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인 입맛에는 안 맞다.

인천으로 넘어온 산둥성 대표 간편식도 자장미엔. 산둥식 자장미엔은 삶은 국수에 중국 된장인 첨면장을 얹어 비벼먹는 간짜장 스타일이다. 자장미엔은 인천 부두를 중심으로 급물살을 타고 퍼지기 시작했다. 인천 부두의 자장미엔은 물기가 부족해 비벼먹기가 어려웠다. 훗날 우리 입맛에 맞게 캐러멜이 첨가되면서 지금의 짜장면이 된다.

자장미엔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작(炸)은 ‘불에 튀기다’, 장(醬)은 말 그대로 된장 등의 발효식품을 말하며, 면(麵)은 ‘밀가루 국수’를 뜻한다. 중국식 된장을 기름에 볶아 국수 위에 얹어 먹는 음식이다. 첨면장은 간단히 말하면 ‘중국식 된장’. 밀가루와 소금으로 발효시킨 후 삶은 대두를 섞어 만든 것으로 ‘춘장(春醬)의 아버지’다. 첨면장이 대두를 주재료로 쓰는 것과 달리 최초로 개발된 춘장에는 대두 대신 밀가루가 들어갔다. 50년대 대량으로 미국에서 원조된 밀가루 덕분이다. 한국식 짜장면에만 들어가는 춘장은 중국에는 없다.

1948년 기념비적인 식재료 하나가 태어난다. 영화장유의 창업자 왕송산에 의해 만들어진 ‘사자표춘장’이다. 비로소 한국짜장면의 신지평이 열린다. 이 춘장은 첨면장에 단맛이 강하게 배어나오도록 캐러멜을 섞은 것이다. 국내 짜장면집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모두 사자표춘장을 사용했다.

한국짜장면의 번창은 한국 화교의 ‘몰락’과 맞물려 있다. 6·25전쟁 후 얼마 남지 않은 화교는 재산권 행사가 제약돼 큰 사업을 할 수가 없었다. 만만한 게 짜장면집이었다. 사자표춘장이 나오자 원가는 떨어지고 일은 더 쉬워졌다. 60년대 한국짜장면 맛을 획기적으로 바꿔놓는 재료가 또 등장한다. 바로 경남 창녕이 시배지로 알려진 양파다. 양파가 한반도에 들어온 것은 1906년, 대량 재배는 60년대에 이뤄진다. 정부의 분식장려도 짜장면 특수에 한몫한다.

급기야 99년 한국짜장면이 중국 베이징으로 역수출된다. 베이징에서 한국인이 많이 모여 사는 왕징(望京) 아파트 단지에 자금성(대표 박광자)이 들어온 것이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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