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의 에너지 충전소] 남성희 대구보건대 총장

  • 김수영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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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24   |  발행일 2017-03-24 제37면   |  수정 2017-03-24
총장실 안 茶室과 서가…“차 한 모금·詩 한 구절에 되찾는 일상의 행복”
직원과 차 함께하며 소통하는 곳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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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실에서 시집을 읽을 때가 행복하다는 남성희 총장이 시집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대구보건대 남성희 총장(62)을 만나러 가는 길. 건물 10층에 있는 총장실 앞에는 족히 100년은 넘었을 것 같은 제주도 반닫이와 그 위에 늠름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도예가 권대섭의 달항아리가 손님을 먼저 반긴다. 현대적인 건물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반닫이와 달항아리는 묘한 아우라를 만들어낸다. 뒤이어 펼쳐질 단아한 멋을 지닌 차실을 위한 전초전 무대라고나 할까. 대구의 유명한 미술 컬렉터이기도 한 남 총장의 안목을 느끼게 하는 그 풍경은 기자의 예상을 깨뜨리지 않고 남 총장의 집무실 한편에 있는 자그마하고 소박한 차실에서도 이어졌다.

그의 차실은 현대적이면서도 전통미가 살아있다. 현대적인 건물에 한국 전통의 멋이 깃든 소품으로 차실을 꾸몄기 때문이다. 그의 차실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작자미상의 민화로 된 병풍이다. 8폭짜리의 이 병풍은 100여년 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병풍 앞에는 남 총장이 쉬면서 차를 마시는 탁자와 의자가 자리하고 있다. 탁자와 의자는 그렇게 고급스럽거나 예스러운 멋이 풍기지는 않지만 차실에 설치된 여러 미술품, 자그마한 시집문고, 전통가옥의 창문을 연상시키는 격자무늬의 나무 구조물 등과 어우러져 깔끔하면서도 중후한 멋을 풍긴다.

미술작품 중에서는 영상설치작가 이이남의 2000년대 초반 작품인 ‘묵죽도’가 차실의 품격을 높여준다.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영상설치작품인데 국악선율을 배경으로 눈이 내리는 대나무 숲의 풍경을 담고 있다. 마치 차를 마시면서 눈이 내리는 창밖의 풍경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묵죽도 옆의 한 벽면은 유리창으로 마무리돼 멀리 펼쳐진 팔공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8폭 민화병풍·영상작품‘묵죽도’ 눈길
전통·현대美 조화로 공간의 품격 더해
詩集들 빼곡…시인·독서경영 면모 대변

“오전 9시 출근해 바쁜 업무에 쫓기다가
창 너머 팔공산 보며 맛보는 여유·즐거움
마치 옛 선비나 신선이 된 것처럼 행복
직원과 차 함께하며 소통하는 곳이기도”


남 총장은 “묵죽도를 보다가 그 옆으로 펼쳐진 팔공산에 시선을 두면 마치 내가 옛 선비나 신선이 된 기분”이라며 “바쁜 일상에 쫓기다가 이곳에서 차 한잔을 마시며 여유를 즐기는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별다른 일이 없으면 아침에 출근해 30분 정도, 점심 식사 후 30분~1시간 정도 차를 마시며 휴식의 시간을 갖는다. 오전에는 보이차, 오후에는 우롱차나 홍차를 즐겨 마신다. 휴식 시간이라고 하지만 남다른 부지런함을 가진 남 총장이 그 시간에 그저 차만 마실 리는 없다.

“매일 오전 9시쯤 출근해 특별한 일이 없으면 간부들과 차를 우려 마시며 대화의 시간을 가집니다. 학교에 관한 일부터 여러가지 일상적인 이야기까지 자유롭게 나누지요. 제가 직접 차를 우려서 대접을 하는데, 처음에는 이를 부담스러워하던 직원들이 이제는 편안해합니다. 저도 직원들과 마주 앉아 정성을 다해 차를 우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좋습니다.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는 좋은 시간이지요. 남자 직원들의 경우 전날 마신 술의 숙취를 해소할 수 있어서 좋다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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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실에 있는 작은 서가에 꽂혀있는 시집들

점심식사 후의 티타임에는 혼자 차를 마시면서 학교 운영에 필요한 사업 구상을 하거나 오후 스케줄에 대한 점검의 시간도 가진다. 하지만 이런 일이 없으면 책을 읽거나 시를 외우면서 보내는 경우가 많다. 학교 일 외에도 대외 활동이 많기 때문에 축사 등을 할 일이 많은데 이럴 때 평소 외웠던 시들이 도움이 된다. 좋은 시구를 축사하는 과정에 인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차실에 있는 작은 서가에는 시집이 많이 꽂혀있다. 100권은 넘을 듯했다. 시간 나는 대로 독서를 즐기는 남 총장은 특히 시를 좋아한다. 초등학교 때 시쓰기대회에서 입상해 방송국에 출연해 자작시를 낭송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것이 시에 대한 그의 사랑을 더 깊게 해준 것 같다고 말했다.

“학교 다닐 때부터 늘 시를 쓰고 좋은 시를 외웠습니다. 젊은 시절 아나운서를 할 때 시를 쓰고 외운 것이 큰 도움이 되었지요. 상징, 함축이 강한 시가 평소 말을 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시를 쓰고 시집을 보며 좋은 시구를 외웁니다. 이것 또한 제 일상의 또 다른 행복이지요.”

시에 대한 이런 깊은 애정이 결국 그를 등단의 길로 이끌었다. 2010년 대구문학을 통해 시인이 된 것이다. 여건이 된다면 조속한 시일 내에 시집을 내고 싶다는 바람도 보였다. 그동안 습작해온 시는 상당히 많은데 시집으로 엮을 만한 시는 20~30편밖에 되지 않아 좀 더 써야 된다는 설명이다. 수준 높은 시를 보여주기 위해 시집 발간을 서두르지 않으려는 것이다.

남 총장은 독서경영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직원들에게 책을 나눠주고 독후감 등을 써보게 함으로써 직원들과 소통하고 직원 스스로의 역량을 계발하도록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2008년에는 조선일보에 연재된 ‘한국인이 좋아하는 명시 200선’에 나온 시들을 엮은 책을 직원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보통 책을 나눠주고 간단하게 독후감을 쓰라 하는데 이때는 시집이니까 시를 써보라 했지요. 의외로 좋은 시가 많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평소에 쓴 시와 직원들의 시들을 모아 ‘까치밥’이라는 시집을 엮어내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련의 일들이 결국 차실에서 비롯되었다고 남 총장은 믿고 있다. “젊은 시절에는 커피를 좋아했는데 나이가 드니 커피를 많이 마시고 나면 잠이 잘 안 왔습니다. 그러던 중에 평소 차를 즐기던 남편이 차를 마셔보라고 권해 차를 시작했습니다. 차는 커피와는 또 다른 맛과 운치를 줍니다. 커피는 마시는 순간 개운하고 머리가 맑아진다는 느낌이 들지만 차는 처음보다 뒷맛이 좋습니다. 차향, 차의 단맛 등이 입안에 오래 남아서 좋은 기분을 좀 더 길게 느낄 수 있지요.”

차에 빠지고 나니 자연스럽게 차와 다기에 관심이 가게 되었고 국내외 여행을 떠나며 차와 다기를 구경하고 구입하는 게 새로운 재미가 되었다. 차는 직접 우리는 재미도 있다는 것이 남 총장의 설명이다.

“다도를 배운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만의 방식과 저만의 레시피로 차를 우립니다. 차를 우리는 과정에 정성이 들어가고 자신만의 맛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차의 또 다른 매력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일상의 즐거움을 새롭게 찾도록 해준 것이 바로 이 차실이지요.”

남 총장이 직접 우린 보이차를 마시면서 인터뷰를 하는 기자도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차맛도 맛이지만 그 정성의 맛이 더 깊은 향기를 품어냈다.

글=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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