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응상의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이야기’] 일본 교토(京都)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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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24   |  발행일 2017-03-24 제39면   |  수정 2017-03-24
사찰마다 色다른 정원의 무한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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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길. 긴카쿠지에서 수로를 따라 난젠지까지 2㎞가량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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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카쿠지의 교코지에 비친 금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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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안지의 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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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카쿠지 정원의 은사탄과 향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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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리신사 도리이 터널.

일본의 옛 수도 교토는 일본 문화의 뿌리가 시작된 곳으로, 박물관 같은 도시다. 땅속에 많은 유물을 품고 있는 역사 깊은 도시가 대부분 그렇듯이 교토 역시 지하철보다는 지상의 버스노선이 훨씬 발달되어 있다. 특히 교토 여행은 하루 500엔으로 무제한 탑승 가능한 ‘One Day Pass’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나의 교토 여행은 북서쪽 긴카쿠지(金閣寺)에서 시작했다. 교코치(鏡湖池)를 배경으로 서있는 ‘금각(金閣)’의 첫인상은 당혹스러움이었다. 너무 번쩍거려서 ‘금’이 상징하는 세속적인 물욕을 먼저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었다. 이 금각은 1950년 정신병을 앓던 승려가 자살을 기도하면서 불타버리고 1955년에 중건된 것이니 어쩌랴. 할복 자살한 극우주의자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금각사’도 바로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것이다. 금각의 뒤편으로 이어지는 소담한 소로를 걸으며 자살도 ‘살생’이 아닐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이 밀려든다.

금각사가 ‘금’으로 명성을 얻었다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료안지(龍安寺)는 ‘돌’로 명성을 얻었다. 돌과 모래만으로 이루어진 소위 ‘가레산스이(枯山水)’인 료안지의 ‘석정(石庭)’은 일본 ‘선(禪)’ 문화를 대표한다. 장방형의 모래 바닥에 15개의 돌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5·2·3·2·3개씩 무리지어 배치했는데, 돌의 모양·크기·배치를 통해 우주를 표현했단다. 15개의 돌은 어느 곳에서 보더라도 15개가 다 보이지 않는다. 이는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이 우주 전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상징이며, 끊임없는 참선을 통해야 진리에 다가갈 수 있다는 선종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란다. 세계적인 전위예술가들이 이 석정에서 영감을 받았다 하여 이곳은 선 예술을 상징하는 전설적 장소가 되었다.

근처의 닌나지(仁和寺)와 다이가쿠지(大覺寺)를 지나 덴류지(天龍寺)로 향한다. 덴류지는 전설적인 고승 무소소세키가 만든 소겐치(曹源池)라는 정원으로 유명하다. 교토의 유명 정원들이 모두 이 절의 정원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한다. 료안지의 석정과는 달리 잘 정돈된 연못에 크고 작은 소나무가 어울린 기품 있는 모습이다. 료안지의 석정이 비어 있어 생각하게 만든다면, 소겐치는 눈을 두는 곳곳에 들어오는 풍광이 있어 편안하고 즐겁다. 소겐치 넘어 낮은 언덕길을 따라 북문으로 나오면 대나무 숲이 펼쳐진다. 아라시야마(嵐山) 죽림이다. 대숲 사이를 헤집고 들어온 바람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멀리 도월교가 나타난다. 선이 고운 산과 강변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한참을 서성이게 만든다.

연못의 금빛 사찰 ‘金閣寺’서 출발
龍安寺 석정부터 銀閣寺 은사탄까지
국보1호 廣隆寺 목조반가상 ‘만감교차’

이튿날 아침 서둘러 간 이나리 신사
영화 ‘게이샤의 추억’ 속 몽환적 길
4㎞ 붉은 도리이 터널 색다른 경험

女 예술인 전통 공연거리 기온 지나
銀閣寺서 수로 따라 南禪寺까지 2㎞
가장 교토다운 곳 꼽히는 ‘철학의 길’


일반 관광객들은 잘 가지 않는 외진 고류지(廣隆寺)를 일부러 찾아간 것은 일본 국보 1호로 지정된 목조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보기 위해서였다. 영보전(靈寶殿)의 침침한 조명과 위압적인 다른 입상들 사이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이 반가사유상은 우리나라의 국보 83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과 꼭 닮아 있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일본의 목불(木佛) 중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곰솔로 만들어져 신라에서 건너간 것이라고 보는 학자들이 많다. 일본의 불상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친근함과 익숙함, 그리고 반가움과 안쓰러움의 감정들이 교차한다.

이튿날 이나리 신사를 가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 워낙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조금만 늦어도 발 디딜 틈이 없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여우상과 붉은색 도리이(신사의 입구에 해당하는 ㅠ자 모양의 문)가 상징인 이나리 신사는 일본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신사인데, 교토의 후시미이나리대사는 전국적으로 약 3만2천개에 달하는 이나리 신사의 총본사이다. 특히 4㎞에 이르는 붉은 도리이 터널이 이곳의 명물이다. 영화 ‘게이샤의 추억’에서 어린 사유리가 뛰어가는 장면의 몽환적인 길도 바로 이 터널이다. 도리이의 붉은 주칠이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분위기는 색다른 경험이다.

다음에 들른 산주산겐도(三十三間堂)는 본당의 기둥 사이가 33칸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120m나 되는 본당 건물은 못 하나 박지 않고 지어졌으며, 3.4m 높이의 천수관음좌상을 중심으로 좌우 500구(軀)씩의 관음상이 안치돼 있다. 이 입상들은 실제 사람보다 큰 크기여서 보는 사람들을 압도하게 만든다. 얼핏 중국 시안(西安)의 병마용이 연상되기도 하는데, 그 표정이 모두 달라 그 가운데 만나고 싶은 사람의 얼굴이 반드시 있다고 한다. 산주산겐도 맞은편에는 교토국립박물관이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박물관이기도 하지만 특히 분수 앞에 설치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기존 건물을 해체하고 2013년 8월에 준공한 3층 규모의 신관은 다니구치 요시오의 작품으로 건축사들 사이에서는 명작으로 손꼽힌다.

여기서 북쪽으로 방향을 잡아 가다 보면 교토의 대표적 관광지 기요미즈지(淸水寺)를 만난다. 그곳을 오르는 언덕길은 사람의 물결로 뒤덮여 있다. 입구의 삼층탑을 지나면 이 절의 본당이 나온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위치한 본당은 못을 사용하지 않은 172개의 기둥에 의해 지탱되는데, 그 툇마루 기요미즈노부타이(淸水の舞台)는 교토 시내를 조망하는 전망대 구실을 하고 있다. 일본 사람들은 과감하게 결단 내리는 것을 ‘기요미즈의 무대로부터 뛰어내릴 생각으로’라고 말하는데, 1694년부터 1864년까지 실제 뛰어내린 사람도 234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본당 밑 오토와 폭포에는 이 물을 마시기 위해 긴 줄이 늘어서 있는데, 세 물줄기는 각각 지혜와 사랑과 장수를 상징한다고 한다.

산넨자카(三年坂)와 니넨자카(二年坂)를 따라 고다이지(高台寺)로 들어서면 조금 전의 번잡함은 거짓말처럼 사라지며 호젓한 오솔길이 숲을 향해 뻗어 있다. 다시 히가시오타니와 마루야마공원을 지나 야사카 신사에 이르면 기온 거리를 만나게 된다. 기온의 메인 거리 시조도리(四通り)는 잘 정돈된 관광거리 느낌이다. 그러나 하나미코지(花見小路)나 키야마치도리(木屋町通り) 등의 골목으로 들어서면 대나무를 엮어 만든 낮은 울타리와 붉은 벽의 전통가옥인 마치야(町家)가 늘어서 기온다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근자에는 교(京) 요리집이 많이 생겨 골목마다 관광객들이 붐빈다. 이곳의 교 요리는 가격이 만만찮지만 점심은 큰 부담 없이 즐길 만하다. 하나미코지를 따라가다 보면 교토 전통춤인 교마이(京舞)와 다도·화도·거문고·아악 등 교토의 7가지 전통 예능을 공연하는 기온 코너가 있다. 건물이 어정쩡하긴 하지만 기온이 게이샤로 대표되는 홍등가가 아니라 여성 예술인들의 전통을 이어오는 거리임을 웅변하는 극장이다. 끝에는 이 골목과 어울리지 않는 큰 사찰이 있는데 이곳이 일본 선종과 차 문화의 발상지라고 하는 겐닌지(建仁寺)다. 일본의 다조(茶祖)로 존경받는 이 절의 에이사이(榮西, 1141~1215) 선사는 중국으로부터 차 종자를 들여와 차 재배를 처음 시작했다.

이제 긴카쿠지(銀閣寺)에서 철학의 길(哲の道)을 따라 이동한다. 교토의 사찰 여행은 서로 다른 정원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다. 긴카쿠지의 정원은 흰 모래로 뒤덮인 은사탄(銀沙灘)과 그 모래를 봉수대처럼 쌓아놓은 향월대의 조화로움으로 유명하다. 자칫 모래 장난처럼 여겨질 만한 이 단순한 재료가 주변의 연못과 나무, 그리고 하늘의 달빛과 어우러져 묘한 경지를 만들어낸다. 긴카쿠지를 나오면 비와코 수로를 따라 난젠지(南禪寺)까지 2㎞가량 이어진 ‘철학의 길’이 나온다. 이 길은 일본 근대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가 즐겨 산책하던 길이라 하여 이름이 붙었다. ‘교토의 소설가’로 불리며 ‘태양의 탑’이나 ‘요이야마 만화경’ 같은 교토 배경의 판타지 소설로 유명한 모리미 도미히코는 가장 교토다운 곳을 ‘철학의 길’이라고 했다. 수로를 넘나드는 나무와 소담한 가게들이 사색에 잠기게 만든다. 아라시야마와 도월교의 강변 풍경이 거시적 고독이라면 이곳 장면은 미시적 사색이다.

틈이 나면 도시샤(同志社) 대학을 찾아가 보자. 조선의 두 천재 시인 정지용과 윤동주는 20년의 시차를 두고 이 대학 영문과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 이 대학 교정에는 정지용의 ‘압천(鴨川)’을 새긴 시비와 윤동주의 ‘서시(序詩)’를 새긴 시비가 나란히 서 있다. 대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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