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전영잡감) 2.0] 이수연 감독, 14년 만의 서늘한 귀환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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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24   |  발행일 2017-03-24 제43면   |  수정 2017-06-28
‘4인용 식탁’의 그녀, ‘해빙’으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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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4인용 식탁’에 이어 14년 만에 두번째 영화 ‘해빙’으로 관객과 만나는 이수연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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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칼럼에서 ‘두 번째 영화 만들기’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찾아보니 벌써 2년 전이다. 당시 오승욱 감독의 ‘무뢰한’이 개봉할 무렵이었는데, 오 감독의 데뷔작으로 ‘오승욱 덕후’가 된 나로선 그의 차기작을 무려 15년 만에 만나는 감개무량한 순간이 아닐 수 없어 그 칼럼을 썼다. 거기에 함께 온갖 풍파를 뚫고 차기작을 만드는데 성공한 감독을 몇 더 언급했다. ‘지구를 지켜라!’ 이후 ‘화이’로 10년 만에 복귀한 장준환 감독, ‘튜브’ 이후 ‘악의 연대기’로 12년 만에 복귀한 백운학 감독과 함께 ‘킬리만자로’ 이후 ‘무뢰한’으로 무려 15년 만에 복귀한 오승욱 감독까지. 당시 한정된 지면으로 많은 감독을 언급할 수 없었는데, 거기엔 빠졌지만 보고 싶었던 감독의 ‘두 번째 영화’가 얼마 전에 나왔다. 바로 이수연 감독이다. 이번엔 14년 만이다.

이수연 감독은 한국영화아카데미 13기 출신이다. 동기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가족의 탄생’ 김태용 감독, ‘내 아내의 모든 것’ 민규동 감독, ‘품행 제로’ 조근식 감독, ‘효자동 이발사’ 임찬상 감독이 있다. 데뷔작 이후 비교적 쉽게 차기작을 내놓은 동기들과는 달리 이 감독이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던 표면적인 이유는 물론 흥행 참패였겠지만(영화진흥위원회 통계자료에 따르면 겨우 71만7천494명의 관객을 동원했다고), 동기들을 포함해 다른 어느 한국영화 감독들과는 다른 결을 이 감독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이 어떤 경우엔 득이 되기도 독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유아살해 다룬 데뷔작 ‘4인용 식탁’
박신양·전지현 파격적인 연기 변신
한국 감독 첫 ‘시민케인賞’에도 불구
단순 공포물 인식돼 ‘참패’ 아쉬움

그후 14년…감독의 두번째 作 ‘해빙’
모호·혼란스러운 얘기 반전에 반전
또 한편의 치밀한 심리 스릴러 신선
18㎏ 뺀 조진웅과 신구 연기도 일품



‘4인용 식탁’은 2003년 개봉했다. 개봉 당시 배우 박신양과 전지현이 4년 만에 조우한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전지현이 배우 차태현과 함께 한 곽재용 감독의 ‘엽기적인 그녀’ 이후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감행했다는 것이다. “나 잡아봐라”며 자신의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발랄하게 웃는 전지현을 기대한 관객들은 ‘4인용 식탁’에 배신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 윤재연 감독의 ‘여고괴담 3: 여우계단’ 등과 함께 공포영화라는 장르물로 소개된 것도 흥행 실패의 원인으로 보인다. 같은 해 개봉한 ‘지구를 지켜라!’급은 아니지만 마치 ‘식스 센스’ 류의 공포영화로 마케팅한 것이 패착 아니었을까. ‘유아 살해’라는 지금 생각해도 충격적인 소재를 전면에 다룬 것도 당시 관객들로서는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도 같고(함께 다룬 기면증에 대한 이해도도 떨어졌을 것이고), 공포영화로 마케팅되긴 했지만 무언가 박신양과 전지현의 로맨스를 바랐던 관객들의 기대치를 산산이(그렇다, 정말 산산이다!) 부숴버린 것도 원인일 것이다. ‘4인용 식탁’은 아트하우스 영화로 마케팅을 했다면 지금과는 훨씬 다른 평가를 받았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만큼 이 감독의 복귀도 이리 오래 걸리진 않았을 거고.

‘4인용 식탁’은 결혼을 앞둔 인테리어 디자이너 ‘정원’이 어느 날 지하철역에서 두 아이들의 죽음을 목격한 후 자신의 신혼집에 공들여 마련한 식탁에서 그 죽은 아이들을 다시 만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그의 앞에 기면증을 앓고 있는 여자 ‘정연’이 나타나 그녀에게 지금껏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자신의 공포와 비밀을 털어놓으면서 파국으로 치닫다 베일에 싸여있던 정연의 사연을 정원이 알게 되면서 영화는 서늘한 결말로 끝난다. 영화는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제36회 시체스영화제에서 시민 케인상(Citizen Kane Award)을 수상했다. 이 상은 오손 웰즈의 영화 ‘시민 케인’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으로 신인감독에게만 수여하는 상인데, 한국 감독이 수상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해빙’은 미제 살인사건으로 유명한 경기도 북부의 신도시가 배경이다. 강남에 개업했다가 도산하고 아내와도 이혼한 의사 ‘승훈’은 신도시 선배의 병원에 페이닥터로 취직한다. 그러면서 정육식당을 운영하는 ‘성근’과 치매에 걸린 그의 아버지 ‘정노인’의 건물에 세들어 산다. 어느 날 승훈은 정노인의 수면내시경을 하던 중 그의 살인 고백을 듣게 되고, 정육식당 부자에 대한 의심을 품게 된다. 조용했던 도시에 살인사건이 다시 시작되고 자신을 찾아왔던 전처마저 실종되자 승훈은 성근과 정노인에 대한 의심과 공포로 혼란에 빠진다.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이야기는 곧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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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위해 무려 18㎏이나 감량한 배우 조진웅의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연기는 단연 돋보인다. 자신의 살인을 고백하면서 극의 분위기를 단번에 얼어붙게 만든 배우 신구를 기용한 것은 신의 한수라 할 만하다. 무엇보다 이수연 감독의 작품들은 모두 ‘심리 스릴러’라 부를 만큼 신경정신학적인 요소를 효과적으로 잘 활용한 것은 물론 관객들에게 익숙할 법한 공간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는 데도 탁월해 보인다. ‘4인용 식탁’에서 답답할 만큼 차로 가득한 도로와 빽빽하게 늘어선 아파트 복도의 기둥들을 기억하는가. ‘해빙’에서는 조진웅이 세들어 살던 그 숨막히게 비좁고 답답한 방이 ‘승훈’을 극단으로 몰아붙이는 것처럼 보인다. 한편 두 번의 경제위기(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각각 등장한 ‘4인용 식탁’과 ‘해빙’을, 골치는 아프겠지만 언제 시간을 내어 사회·경제·문화적으로 공들여 다루고 싶다.

‘해빙’으로 오랜 휴지기를 끝내고 복귀한 이수연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데뷔작으로 실컷 얻어맞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취향이 확고한 한 줌의 팬들이 두 줌으로 늘어날 때까지 노력하겠다”고 했단다. 글쎄 이제 판은 2003년과는 달라졌다. 한국 관객들은 다양한 영화를 수용할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다(고 믿고 싶다). 이 감독 같은 영화인과 ‘해빙’ 같은 영화가 한 줌 두 줌 늘어 한국영화의 폭이 더 넓어지고 깊어지기를! 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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